서울에서 만난 따뜻한 순간들

외국살이 서울살이 l 위카이(말레이시아)

등록 : 2025-05-08 14:49 수정 : 2025-05-0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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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유학 생활 중 친구들과 놀이공원, 고궁 나들이 모습.

‘외국살이 서울살이’는 서울살이를 하는 외국인들이 겪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진솔하게 터놓는 열린 발언대입니다. seoul01@hani.co.kr로 투고 환영합니다. 편집자주

많은 사람들이 다른 나라에 갈 때 관광지, 맛집, 쇼핑 등을 가장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제가 공유하고 싶은 것은 화려한 배경이 없어도 제 시선을 바꿔 놓은 일상 속의 작고 조용한 순간들입니다.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저는 이곳의 빠른 생활 리듬에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지하철역엔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저도 그 속도에 맞춰 살아가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겪은 작은 사건이 서울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 속 따뜻함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날은 말레이시아로 돌아가기 위해 밤늦은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공항 대기실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옆 벤치에는 한 노숙인이 자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그분이 갑자기 저에게 소리를 지르며 경찰에 신고까지 했습니다.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웠습니다. 평소에는 한국어로 충분히 대화할 수 있었는데, 그 순간엔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말조차 나오지 않아 막막했습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한 부부가 상황을 보고 다가와 제 이야기를 대신 전해주며, “이런 사람은 무서워할 필요 없어요”라고 따뜻하게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날 밤의 두려운 기억 속에서도 낯선 이들의 도움은 제 마음을 오랫동안 따뜻하게 해줬습니다.

그 외에도 서울에서 만난 많은 따뜻한 사람들은 제 일상 속에 작은 빛처럼 존재했습니다. 학교 안에 있는 카페 사장님은 매일 아침 학생들이 지각할까봐 먼저 커피를 준비해주셨고, 제가 자주 가던 순두부찌개집 사장님은 외국인이라고 반찬을 더 많이 주시며 늘 “많이 드세요”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특히 대학 시절 만난 한 교수님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 교수님은 외국인 학생들을 늘 세심하게 챙겨주셨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에는 외국인 학생들 자리로 직접 오셔서 “잘 듣고 있나요?” “수업 따라갈 수 있나요?”라고 따뜻하게 물어봐주셨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진심 어린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질문에 대답을 못해도 미소 지으며 “계속 이야기해보세요”라고 격려해주셨고, 과제 평가에서도 외국인 학생들에게 늘 더 관대하셨습니다. 수업 전에 간식을 나눠주시는 일도 많았고, 학기 마지막 수업 날에는 예쁜 펜을 준비해 모든 학생에게 하나하나 나눠주며 인사해주셨습니다. 이 교수님의 따뜻함은 제 마음에 더욱 깊이 남아 있습니다. 한국 문화는 단순히 드라마나 케이팝(K-pop)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미소와 친절한 말 속에 숨어 있고, 힘든 순간에 곁에 있어주는 이들의 발걸음 속에도 있습니다. 또 누군가 조용히 건네는 따뜻한 음식, 짧은 안부 인사, 정성스레 고른 펜 속에도 담겨 있습니다.


서울에서 만난 이 따뜻한 순간들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오는 이유는 좋아하는 연예인을 보기 위해서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유명한 장소를 방문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제가 서울에서 겪은 따뜻한 순간들은 한국 사람들에 대해 더 깊고 특별한 인상을 남겨줬습니다.

저는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서 한국에 왔지만, 저를 감동시키고 이곳에 머물게 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심 어린 배려와 따뜻함이었습니다. 이 모든 경험이 모여 저에게 ‘진짜 한국’을 보여줬습니다.

글·사진 위카이(말레이시아)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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