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치매 어르신 마음 읽기 10년, 자매의 남다른 봉사

자원봉사 보건복지부 장관 우수상·성동구 금상 받은 박흥임·오임 자매

등록 : 2017-06-01 15:47

크게 작게

지난달 25일 오후 성동구 치매지원센터에서 치매파트너 박흥임(왼쪽)·오임 자매가 어르신들에게 몸 푸는 율동을 가르치고 있다. 성동구 제공
지난해 11월 ‘2016 국가 치매관리 워크숍'에서 성동구 치매지원센터의 치매파트너(치매전문 자원봉사자) 박흥임(66)씨가 보건복지부 장관상 우수상을 받았다. 한달 뒤에는 동생 오임(59)씨가 같은 활동으로 성동구 우수자원봉사자 금상을 받았다. 집안의 경사라고 잔치를 벌일 법도 한데, 가족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자매는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일 뿐 자랑할 만큼 대단한 게 아니라서 말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10년 전 치매에 대해 잘 모르면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치매라는 병이 간단한 게 아니더라고요. 증세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요. 노란색 딱풀을 바나나로 착각해 깨물거나, 빨간 물감 푼 물을 토마토주스인 줄 알고 벌컥벌컥 마시는 분도 있어요. 그분들께 실질적인 도움을 드리려면 제가 전문 지식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어요.”(박흥임)

자매는 치매예방지킴이 교육을 받은 뒤 2010년 초부터 치매파트너 활동을 시작했는데, 지금도 활동에 도움이 될 만한 강의를 계속 듣고 있다. 실버레크리에이션 1급, 노인체육지도자, 시니어 요가댄스 3급, 재활레크리에이션 1급 등 자격증도 여러개 땄다.

“자격증 과정 하나가 보통 6개월 정도 걸려요. 자격증을 딴 뒤에도 주기적으로 보수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자격증이 많아 한달에 서너번은 가는 것 같아요. 한번 배우고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내용으로 업그레이드해서 적용해야 하니까요.”(박오임)

오임씨의 시어머니도 10년 전 치매를 앓다 돌아가셨다. 3~4년 동안 시어머니를 간병했던 오임씨는 “뇌경색과 치매가 같이 온 시어머니를 간병하기만 바빴지, 마음을 읽을 줄 몰랐다”며 “교육을 받은 뒤에야 내가 미숙했다는 것을 깨닫고 많이 후회했다”고 말했다.

자매는 거동이 불편해 센터까지 나올 수 없는 치매 어르신들을 매주 방문하고 있다. 2인 1조로 율동도 가르치고, 말벗도 해드리고, 약도 챙겨드린다.

어르신 대부분이 햇볕이 잘 들지 않고, 바람도 통하지 않는 지하방에 산다. 하늘을 볼 수 없는 집에서 외로이 살다 보면 마음도 닫히기 마련이다. 두뇌 활동을 돕기 위해 박수 치기나 그림 그리기를 하자고 하면 처음에는 무조건 “안 해” “못 해”라는 반응이 나온다.

“때리러 온 줄 알고 겁을 내기도 하고, 자신의 물건을 훔쳐갔다고 하거나, 다시 오지 말라고 험한 소리를 하며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분도 계세요. 이런 분들도 계속 방문하면 차츰 달라져요. 사람을 몰라보던 분들이 한달 정도 지나면 문 앞에 앉아 ‘올 시간이 됐는데 왜 안 오느냐’며 우리를 기다리세요. 날짜와 요일은 몰라도 몸이 그 시간을 기억하는 겁니다.”(박흥임)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어르신도 많다. 한 할머니는 체육대학에 다니는 손자만 바라보고 산다. 장남이 일찌감치 이혼을 하는 바람에 젖먹이 때부터 키운 손자다. 둘째 아들은 자동차에서 잠을 자다 불이 나 숨졌다.

“할머니는 지금도 그 사고와 관련된 환청을 자꾸 들으세요. 아들을 그렇게 보냈으니 가슴에 한이 맺힌 거죠. 누가 알까봐 마음에만 묻어뒀던 이야기를 우리한테 털어놓으시는 거예요. 하루는 사진 액자 뒤에 있는 상자를 꺼내달라고 하셨어요. 손자가 체육대회에서 받은 트로피며 메달들을 누가 훔쳐갈까 봐 그렇게 숨겨두셨더라고요. ‘아무한테도 안 보여줬는데 처음 보여주는 거’라며 자랑하시는데, 우리를 믿고 마음을 여신 것 같아 큰 보람을 느꼈어요.”(박흥임)

자매는 지난해 10월부터 ‘치매극복 선도학교’로 지정된 성수중학교와 광희중학교에 가서 기억친구 교육을 했다. 학생들이 치매에 대해 바로 알고, 치매 환자를 이해하고 돕자는 취지다. 이 교육을 받은 학생과 교직원 수백명은 기억친구로 등록했다.

자매는 자칫 길을 잃기 쉬운 치매 어르신들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치매 어르신들은 길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지하철을 탔는데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갑자기 잊는 거죠. 얼마 전 뚝섬역 아래에서 왔다 갔다 하는 어르신을 보고 어디 가시느냐고 물었더니 성수동 아파트를 가리키면서 ‘용답동 집에 가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시는 거예요. 자세히 보니 치매지원센터에서 뵈었던 분이라 가족에게 인계할 수 있었어요.”

혹시 같은 자리에서 배회하는 어르신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도와주라는 것. 오임씨는 “어르신들의 뒤쪽에서 갑자기 나타나면 깜짝 놀라니 정면에서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며 “자치구 치매지원센터마다 비상연락처를 적은 인식표를 팔찌나 명찰, 목걸이 형태로 치매 어르신께 달아드리니까 꼭 살펴봐달라”고 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