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자신의 분노 뒤에 어떤 울음이 있는지요?

아내와 소통에 어려움 겪는 결혼 10년 차 남편 “아이들마저…”

등록 : 2017-05-18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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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45살 남성입니다. 결혼한 지 10년 됐는데 결혼하고 날마다 화만 늘어납니다. 아내가 정말 제 의견을 존중해주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집이 어질러진 꼴을 보기 싫어하지만 아내는 정리정돈을 잘 안 합니다. 힘들게 일하고 퇴근했는데 집이 지저분한 걸 보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게 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집안 살림이나 아이들 교육하는 걸 봐도 답답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제가 물건 정리하는 방법이나 가계부 쓰는 법을 여러 번 알려줬는데 지키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더 엄격하게 키워야 한다고 말해도 심각하게 듣지 않습니다. 아무리 화를 내도 잘 고쳐지지가 않으니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래서 요즘은 아내 생각만 해도 속에서 불이 납니다.

그런데 아내는 저의 이런 심정을 잘 모르는지 태연한 것 같고, 반응도 잘 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제가 화내고 소리 질러서 시키는 대로 하기 싫다고 까지 당당하게 말합니다. 우리 부부는 정말 소통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저를 피합니다.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아내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아 화를 내는 건데, 솔직히 이렇게 자꾸 화내는 나도 힘든데 아이들은 제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고, 제 엄마 편인 것 같습니다. 내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얘기를 해도 아이들 반응이 썰렁합니다. 잘못을 지적하면 아무 대꾸를 안 합니다. 애들이 엄마와는 곧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제가 나오면 다들 입을 다물고 방으로 들어가버립니다. 도대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거문나무

A 아내에게 소리 지르며 화를 내는 남편이 직접 문제 해결에 대해 물어오시니 반갑습니다. 보통은 소리치는 남편을 견디다 못한 아내 쪽에서 사연을 보내는데, 그런 경우 답을 드리는 게 의미가 없어 난감하기도 했습니다. 조언을 들어야 하는 쪽은 소리 지르는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소리치고 화내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분노를 폭발시킵니다. 화내는 남편들은 아내가 자신의 화를 돋운다고 주장하지만, 여간해서는 그의 화를 피해 가기 어렵습니다. 예민한 그들은 뭘 봐도 화를 냅니다. 고치라고 요구한 것을 고쳐놓으면 또 다른 요구사항으로 상대를 몰아붙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문나무님의 분노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부정적인 감정은 주의 깊게 살펴야 하지요. 분노는 더 그렇습니다. <분노로부터의 자유>를 쓴 레 카터는 ‘분노 뒤의 울음’을 이야기합니다. 분노는 존중을 원하는 울부짖음이라는 것이지요. 상처받은 마음은 ‘나를 존중해줘, 나를 이해해줘, 내가 힘들단 말이야’ 하며 울부짖습니다. 그런데 그 울부짖음이 대부분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 특히 내가 화를 내도 참아줄 만한 사람을 상대로 분노를 표출해서 고통을 처리하고 치유받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되면 애꿎은 사람이 피해자가 될 뿐 아니라 자신의 치유도 불가능해집니다.

그러니 거문나무님, 화가 난 진짜 이유와 화낼 핑곗거리를 구분하세요. 그리고 아내에게 화를 내며 전달하는 메시지가 당신이 진정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확인해봐야 합니다. 당신이 아내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명령에 따라 청결을 유지하고, 아이들을 엄격하게 대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스트레스가 너무 큰 당신을 이해해주고 지지해주기를 바라는 건가요? 당신이 분노 뒤에서 어떤 울음을 울고 있는지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제가 정말 걱정하는 게 있는데, 소리 지르면서 화내는 방식을 고수한다면 당신은 결국 가족들에게 미움과 혐오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언성을 높이며 상대를 공격한다면 상대는 얼어붙거나, 당신과 마찬가지로 분노를 느낍니다. 심지어 폭력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리 옳은 이야기일지라도 상대는 당신의 말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자신의 힘을 과시해서 두려움의 대상으로 존경받으려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힘을 행사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선망하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의 많은 기혼 남성들은 가족에게 호통치고, 일방적으로 명령하면서 인정받고 사랑받기를 원합니다. 장담컨대 그들은 원하는 것을 결코 얻을 수 없을 겁니다. 대부분은 원망과 적의, 따돌림의 대상이 되어 소외된 채 살아가지요. 글을 읽어보니 당신의 가족도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습니다. 당신의 경우 아직 젊고, 또 이렇게 고민 상담을 하실 만큼 마음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거문나무님! 사랑받는 남편,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려면 중단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당신이 상대보다 더 옳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세요. 당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을 멈추고 아내의 말을 들어보세요. 그리고 가만히 그녀의 삶을 지켜보세요. 아이들을 키우는 아내의 편에서는 집안을 늘 깨끗하게 해놓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일 수 있습니다. 정리정돈이 잘 안 되는 성격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고요.

두 번째는 흥분해서 소리 지르는 행동을 중단해야 합니다. 자신의 고통에서 잠시 빠져나와 가족들을 바라보세요. 당신이 소리치고 화낼 때마다 그들이 얼마나 상처 입었는지, 아파하는지 살펴주세요. 당신이 자신의 방식을 강요할 때마다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차갑게 식어가는지도 느껴보세요. 그러면 화내고 소리 지르는 것이 얼마나 당신을 외톨이로 만드는지, 얼마나 무익한 방법이었는지 깨달으실 겁니다.

가족들의 처지와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나면 어떻게 자신의 요구를 전달할지 알게 됩니다. 의사소통에서 무엇을 관철하고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도 판단할 수 있구요. 화내고 소리치는 것 말고도 세상에는 참 많은 소통법이 있답니다. 평화적인 대화법에 대해 주위 사람들의 조언을 들으시고, 전문적인 프로그램에 참여하시는 것도 권합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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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라 마음칼럼니스트·<천만번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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