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속도감 있는 도시, 매너가 필요한 도시

서울은 어떤 도시인가’ 외국인 38명에게 물었더니

등록 : 2017-05-11 16:22

크게 작게

조계사 연등회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종로 거리에서 축제를 즐기고 있다. 체험 행사는 한 해 전에 예약이 꽉 찬다.
서울을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을까. 서울에 산 지 3년 이상 된 외국인들, 그리고 명동과 동대문 관광사무소를 찾은 외국인 서른여덟명에게 물었다. “라이블리!”(lively, 생생하게 살아 있는, 박진감 있는)라는 단어가 주저 없이 나왔다. ‘미래적인, 빠른, 24시간 불꽃 튀는’ 등등도 이어졌다. 속도에 관한 말이 많았다.

서울에서는 언제나 속도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건물과 길이 해마다 바뀌고, 버스를 탈 때마다 뛰어야 하고, 콘서트 티켓 예약마저 손이 빨라야 성공한다고 했다. 큐브라(터키 출신)는 “서울은 잠을 자지 않는 도시예요. 늘 깨어 있고, 모두 길에서 달리고 있는 기분이에요. ‘빨리빨리’ 움직일 수 있어야 진짜 ‘서울사람’이 되는데, 적응하는 데 오랜 연습이 필요했어요”라고 말했다. 팀(캐나다 출신)도 공감했다. “제가 체감하는 서울은 뉴욕보다 화려하고, 도쿄와 런던보다도 빨라요.”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수는 1700만명. 그중 1350만명이 서울을 찾았다. 역대 최고치다. 세계관광기구(UNWTO)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까지 전 세계 국제관광객 수는 전년보다 4% 늘었는데, 그중 한국은 무려 36%의 성장률을 기록해 눈에 띄었다.

여행 전문잡지 <론리 플래닛>은 2017년 꼭 가야 할 10대 관광도시로 ‘서울’을 꼽았다. 서울연구원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15년을 기준으로 서울의 등록외국인은 27만명이다. 지난 15년간 5.4배가 늘었다. 400여년 전 하멜이 표류한 ‘코레 왕국’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다.

하지만 비율을 보면 중국인 관광객이 많다. 지난해 한국을 찾았던 외국인 관광객의 48%가 중국인이며, 서울의 등록외국인 중 절반이 중국인과 한국계 중국인이다. 사드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보복 조처로, 올해 들어 외국인 관광객이 급격히 줄어들며 국내 여행산업이 휘청거린 이유다. 업계에서는 여행산업 전반의 질적인 성장과 체질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란 분석이 나온다. 외국인 관광객 다변화를 위한 대책을 지자체마다 마련 중이지만 아직 미미한 수준에 그친다.

외국인 관광객들을 대하는 ‘매너’ 문제는 ‘서울 여행’의 단점으로 자주 꼽힌다. 인터뷰에 응한 외국인들은 ‘서울의 지하철 시스템은 최고지만, 서로 밀치고 움켜잡는 등의 행동이 적응되지 않는다’고 했다.

푸에르토리코에서 온 패트리샤(27)와 말레이시아에서 온 레아(36), 인도에서 온 가족여행객 6명은 한목소리로 ‘사람들의 시선’을 서울 여행의 유일한 단점으로 꼽았다. 서울에 산 지 3년째인 패트리샤는 “뚫어지게 쳐다보며 수군거리는 어른들이 많아요. 처음에는 자괴감이 생기고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 싶어 그때마다 화장실에 가서 얼굴과 옷을 확인했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저 조금 다르게 생겨서’였어요” 하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리는 명동과 동대문, 그 밖의 화장품 가게에서는 ‘테스터 제품 공유’에 대해 문화충격을 받았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의외로 많았다. 미국과 독일에서 온 20대 초반의 관광객들은 “케이(K)뷰티가 유명해서 선물을 사가려고 하는데, 테스터용으로 남이 써본 립스틱, 크림, 아이섀도 등을 공유하는 문화가 신기했어요. 서양에서는 질병이 옮는다는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거든요.” 했다. 비슷한 의견도 있었다. “서울역 화장실이나 공용 화장실에 가면 젖은 공용비누를 나눠 쓰는 곳이 있어요. 서울에 오래 살아도 적응이 힘든 문화예요.”


영어 병기가 없는 음식점 메뉴판과 대중교통 환승표지판의 불편함에 대해서도 여러 사람이 언급했다. 10년째 한국 식당을 찾아다니는 제니(영국 출신)는 “한국은 시장 먹거리가 맛있어 좋아하는데, 여전히 메뉴판이 없어 주문하기 어렵고, 가격도 늘 달라요. 한국 친구를 불러 같이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어요. 유명 한식당에 가도 한국어 메뉴판만 있어 결국 다른 외국인들이 먼저 가봤다는 식당만 리뷰를 보고 골라 가게 돼요”라고 했다.

모든 단점을 감수하고서라도 ‘서울사람’을 꿈꾸는 21세기 하멜들의 얘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은 만족하는데, 오히려 그 가족들이 걱정을 많이 해요. 분단국가라 위험하지 않으냐고. 그러면 답해요. 북한보다 미세먼지가 더 걱정이라고.” 팀의 말이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