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된장 선생님이다” 강습 유치원생 달려들땐 최고행복

이인우의 서울& 서대문 전통발효음식 재능기부 강사 최종자·한채영씨

등록 : 2016-04-06 18:56 수정 : 2016-04-2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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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봄이면 유치원생들과 함께 장을 담그느라 바쁜 최종자(왼쪽), 한채영 강사가 지난달 30일 서대문구 신촌유치원을 찾아 아이들에게 메주를 보여주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봄을 맞아 서대문구 관내 유치원에서는 꼬마들의 장 담그기가 한창이다. 지난 3월30일 찾아간 신촌유치원(원장 최병기)에선 20명 남짓한 원아들이 강사의 지도에 따라 고사리손으로 장 담그기를 체험하고 있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간장, 된장은 장독에 담겨 올 한 해 아이들의 소중한 급식에 사용된다. 건강한 먹거리 확보와 함께 미래 세대에게 전통음식에 대한 기억의 씨앗을 심는 살아 있는 교육현장이다. 이런 뜻깊은 사업의 원동력은 서대문구청이 설치한 친환경급식지원센터와 헌신적인 ‘마을 강사’의 존재다. 동네 골목을 누비며 전통발효음식 ‘재능기부’를 하고 있는 마을 강사 최종자(57)씨와 한채영(54)씨를 만났다. 전은자 서대문구 교육지원과 친환경급식지원센터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최종자씨는 집에서 살림만 하던 전업주부였다. 평소 자연과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던 최씨는 군대 간 아들 때문에 허전해진 마음을 달래보려고 어린이집 조리사로 나섰다. “직업이란 생각은 한번도 안 해봤어요. 애들과 지내며 해마다 장 담그고 김장해서 먹이는 일이 너무 좋았어요.” 6년쯤 지나자 타성에 젖은 자신을 발견했다. 최씨가 어린이집에 나오지 않는 것을 안타까워한 원장 선생님이 장 담그기 마을 강사를 구하고 있던 전은자 센터장에게 최씨를 추천했다. “조리사가 직업이 되는 게 싫었다. 그저 아이들한테 건강한 음식을 해주는 일이 너무 행복했다”는 최씨의 말에 전 센터장은 이 사람이야말로 자기와 같이 마을 공동체를 일굴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전업주부 최씨, 발효음식 전도사로

센터장 전씨는 계약직 공무원이다. 참교육학부모회 활동을 하면서 아동급식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2012년 서대문구에서 공모한 친환경급식지원센터장에 선발됐다. 현재 서울시내 25개 구 가운데 친환경급식지원센터를 운영하는 구는 5곳, 그 가운데 민간인을 선발해 사업을 맡긴 곳은 서대문구와 성북구 2곳이다.  

전 센터장은 열성적으로 센터 활동을 시작했지만 여건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미진한 활동에 답답함을 느낄 때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장 담그기와 교육을 연결하는 사업이었다. “친환경 장을 담가 아이들에게 먹이고, 교육도 할 수 있다면….” 전 센터장의 열정적인 추진력에 관내 24개 유치원 중 12개 유치원 원장이 호응했다. 장을 직접 담가 급식으로 쓰고, 체험교육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유치원 입장에서는 일석이조로 여겨진 것이다.  

처음부터 순탄할 수는 없었다. 최씨는 ‘그만두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아이들이 내 말을 알아듣고는 있는지, 지금 내가 잘하고는 있는 건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어요.” 평생 남을 가르치는 일을 해보지 않은 최씨에겐 당연한 고민이었다. 게다가 일부 원장과 교사들은 최씨를 장 담가주러 온 아주머니 정도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어서 두 사람을 힘 빠지게 했다. “그래서 식생활 강사, 텃밭 강사 등 구와 시가 실시하는 각종 강사 양성과정에 부지런히 참여하며 지식과 자신감을 보충했습니다.”

두 사람에게 새로운 조력자가 생긴 건 이즈음이었다. 전통 식문화 강의와 실행에는 보조강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알게 된 것. 센터가 예산을 확보해 재능기부 형식으로 ‘채용’한 사람이 한채영씨였다. 한씨는 초등학교 돌봄교실 조리사로 취약아동을 돌본 경력을 갖고 있었다. 어린 딸 때문에 시작한 일을 통해 어린이 먹거리의 중요성을 실감한 한씨는 서대문구 친환경급식지원센터에 텃밭 가꾸기와 식생활 강사 양성과정이 있다는 걸 알고 찾아와 수강생이 되었다. 전 센터장은 수강생 중에 특히 열성적인 한씨를 금세 알아보았고, 한씨는 보조강사 역할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평소 가까이에서 본 최종자 선생님을 좋아했고, 저도 이 기회에 전통 장 음식을 배워 이를 널리 퍼뜨리는 대열에 서보고 싶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응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 팀이 되었다. 신촌유치원의 장 담그는 현장을 보면 두 사람의 호흡이 점차 환상적이 되어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최씨의 지도에 따라 된장, 간장에 대한 설명을 듣고 직접 장에 들어가는 재료를 살펴본다. 한씨의 도움 아래 띄운 콩을 먹어보고, 곰팡이를 살펴보고, 메주의 생김새를 눈으로 확인하고 코로 냄새를 맡아본다. 소금물과 보통 물이 어떻게 다른지 달걀을 물에 넣어보고 직접 저어서 소금물을 녹여도 본다. 끝으로 메주를 넣은 장독 안에 숯과 붉은 고추까지 고사리손으로 넣고 마무리한다. 한 꼬마가 신나서 외친다. “우리가 직접 만들어서 더 맛있을 거 같아요!”  

“이건 머릿속에 씨앗을 심는 것과 같아요. 이런 교육을 어려서 받은 아이들 중에 커서 직접 장을 담그고, 손으로 음식을 만들 줄 아는 엄마, 아빠가 나올 거예요. 교육의 힘을 확신합니다.” 전 센터장이 아이들을 데리고 장 담그기 체험에 열중인 최씨와 한씨를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


미래세대와 마음으로 연결  

이런 활동에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노력도 중요하다. 최씨를 비롯한 서대문구 식생활 강사 6명이 모여 ‘집밥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말 그대로 자녀, 학생,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집밥을 먹여보자는 ‘운동’이다.  “센터 입장에서 ‘집밥’ 같은 협동조합의 존재는 매우 큰 힘과 정신적 의지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런 교육활동이 관내 24개 유치원, 180개 어린이집, 39개 초중고에 퍼져나가길 바란다. 손재주 있고, 음식에 재능 있는 주민들을 네트워크로 엮어 젊은 세대와 미래 세대에게 우리 먹거리의 전통을 이어주게 되기를 바란다. 아파트 단지에 공동 장독대를 만들어 주민들이 함께 장을 담가 일년 내내 나눠 먹는 문화를 서대문구가 중심이 돼 전국에 퍼뜨리고 싶은 야심 아닌 야심도 있다. “최, 한 두 선생님같이 경험과 지식이 있는 5060세대의 재능기부가 많아진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지요.”  

서대문구 친환경급식지원센터에는 두 사람 말고도 8명의 마을 강사가 11개 초등학교 텃밭 가꾸기를 지원하고 있다. 그밖의 학교 식생활 강사도 3명이 활동 중이다.  

최씨는 마을 강사를 하면서 조금씩 미래 세대와 마음으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낯선 어른과 아이들이 마음으로 이어지는 경험은 우리 공동체가 미래를 위해 뿌리는 중요한 ‘씨앗’이다.  

“장 담그기를 배운 유치원 아이가 골목길에서 우연히 저를 알아보고 ‘와, 된장 선생님이다’라며 제 품에 뛰어듭니다. 그 아이를 꼭 안고 있을 때 저도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낍니다.”

<서울&> 콘텐츠디렉터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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