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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후반전, 인생학교에서 준비하는 사람들

시 50+ 캠퍼스 참여형 교육 인기 중장년층에게 대안학교 노릇 톡톡

등록 : 2017-04-2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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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수명 100살 시대를 맞아 중장년층의 50 이후의 삶이 개인 문제를 넘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서울시는 지난해 50플러스 세대의 제2인생을 돕는 50플러스재단을 만들고 캠퍼스와 센터를 잇따라 열고 있다. 사진은 4일 마포구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인생 재설계 학부 입문 과정인 ‘인생학교’ 입학식에 참여한 신입생들과 선배들이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바보처럼 살아왔던 것 같아 인생을 다시 배우고 싶어 지원했다.”

“내가 뭘 좋아하고 뭘 잘하는지 알아내고, 여럿이 같이 행복해지고 싶다.”

“지난달 갑작스레 퇴직한 뒤 막막했는데, ‘인생학교’ 플래카드를 보고 눈앞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50을 코앞에 두고 보니 나와 내 가족을 넘어 이웃과 사회를 위해 사는 방법을 찾고 싶어졌다.”

“정년퇴직 뒤 더 늦기 전에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인생학교 문을 두드렸다. 나이는 먹는 게 아니고 익어가는 것이 아닐까?”

지난 4일 오후 마포구 백범로 서울시 50플러스 중부캠퍼스 4층 ‘모두의 강당’에서 50플러스 인생학교 입학식이 열렸다. 입학식 행사로 치러진 ‘마음 열기 워크숍’에서 40대 후반~60대 초반의 신입생 49명은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교사, 공무원, 음악가, 비영리 활동가, 사회적기업가, 주부 등 다양한 이력만큼이나 인생학교를 찾은 이유도 각양각색이었다.

50플러스 인생학교는 삶을 바꾸는 제2의 배움학교다. 3개월간 주 1회 교육에 참가비는 10만원이다. 마음준비서와 신청서를 내면 학교가 다양한 경험자들을 섞어 선발한다. 인생학교는 50플러스캠퍼스의 인생 재설계 학부의 입문 과정으로, 새로운 체험과 새로운 관계 맺기를 지향한다. 강의식의 기존 노후 대비 교육과는 달리 참여형 활동으로 이뤄진다. 연극 <나무꾼과 선녀> 역할놀이, 영화 <건축학 개론>을 본 뒤 생각 나누기 등 프로그램 내용을 살짝만 들춰봐도 인생학교의 특징이 드러난다.

“새로운 일을 하든, 재취업을 하든, 여가를 즐기든, 앞으로 무엇을 하든 용기를 더하고 열정을 살릴 수 있도록 학교는 톡톡 쳐주는 일을 한다”고 정광필 학장은 말한다. 정 학장은 도심형 대안학교 이우학교 교장을 지낸 교육운동가이다. 교육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함께 찾아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인생학교 수강생들이 빼고 더해야 할 것을 조언했다. “인생 전반전의 틀과 형식은 걷어내고 서로 빈구석을 보여주며 앞으로 하고 싶은 걸 함께 할 동료들을 찾자.”


현재 서울 시민 5명 중 1명은 청년과 노인 사이의 중장년(50~64살), 50플러스 세대다.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띄우고, 50플러스 세대 종합지원정책을 발표했다. 평균수명 100살 시대를 맞아 인생 후반전 50 이후 삶을 어떻게 살 것인지는 서울시에도 큰 고민거리다. 그래서 ‘갈 곳이 없다, 불안하다, 일하고 싶다’ 막막해하는 이들의 제2 인생 설계를 지원하기 위해 서울시가 팔 걷어붙이고 나섰다. 서울시 전역에 50플러스캠퍼스와 센터를 잇달아 열어 교육과 상담, 일자리, 커뮤니티 활동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캠퍼스는 2곳(은평구 서부캠퍼스, 마포구 중부캠퍼스), 센터는 4곳(노원, 도심권, 동작, 영등포)이 운영되고 있다.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50플러스캠퍼스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지난해 5월 문을 연 은평구 서부캠퍼스에서는 6만여명이 교육과 상담, 사회참여 지원 서비스를 받았다. 서부와 중부캠퍼스의 올해 1학기 교육 수강생 모집은 3000명 정원이 열흘 만에 거의 다 찼다.

50플러스 인생학교는 지난해 서부캠퍼스에서 시작해 올해 중부캠퍼스에서도 시작되었다. 이날 입학식을 맞아 서부캠퍼스 인생학교 1기 수료생들이 환영행사를 마련했다. 입학식 행사를 끝내고 1층 로비로 내려오는 신입 후배들을 선배들이 힘찬 박수로 환영했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라며 몇몇은 하이파이브를 청하기도 했다.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저녁 식사와 공연을 직접 준비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파란 나비넥타이와 분홍 리본 머리띠도 했다. 1기 수료생들의 각종 커뮤니티 모임을 소개하고 노래와 악기 연주, 탱고 춤 공연을 이어갔다.

환영행사 준비를 이끈 최경용(57) 자치회장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하는 고민보다는, 마음껏 즐기며 새로운 희망을 갖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조언했다. 최 회장은 1년 전 인생학교 문을 두드릴 때와 지금의 자신은 참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기업체에서 33년간 근무하면서 자신이 인생의 주인공이었던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인생학교에서 ‘진짜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보겠다’라는 마음을 먹게 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맞다 틀리다, 옳다 그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60명의 인생 스승을 만난 것 같았다”며 최 회장은 여럿이 같이 해내는 것의 가치도 깨달았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인생에서 더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용기, 열정, 자신감을 다시 끄집어낼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변화라고 덧붙였다.

어둠이 내린 중부캠퍼스를 나가는 후배들을 최 회장과 1기 선배들은 일일이 배웅했다. “인생학교에서 얻은 가장 큰 결실은 뭐든지 같이하면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과, 든든한 친구들을 얻은 것”이라고 말하는 최 회장의 얼굴에 50 이후의 삶에서 무엇을 더하고 빼고 나눠야 하는지를 깨달은 듯한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이현숙 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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