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고립과 연대의 아슬아슬한 균형, 그게 인생의 묘미

가끔 혼자이고 싶은 중년 여성의 외로움에 대하여

등록 : 2017-04-0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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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성공한 남자들의 외로움을 다룬 칼럼이 나간 직후 많은 분들의 의견과 사연이 답지했습니다. 폭발적이었습니다. 경쟁 사회에서 조명받지 못한 중년 남자들의 외로움에 공감하는 내용이 많았지만, “남성만 외로운 줄 아느냐? 여성들도 얼마나 외로운데, 마치 성공한 남성들만 외로운 척하는 것은 보기 불편하다”는 의견도 제법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찌 남성들만 외로울까요? 다만 사회적으로는 성공한 듯 보였지만 내 삶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데는 실패한, 성공의 패러독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고해드린 대로, 이번에는 여성들의 외로움을 함께 고민해볼 차례입니다.

#장면 1 며칠 전 중년 남성 한 분으로부터 흥미로운 사연을 받았습니다. 부인이 얼마 동안 여행 다녀오겠다며 훌쩍 떠났는데, 항상 가족들을 동반하거나 부부 여행이었기에 걱정도 되고 영문도 몰라 너무 답답하다는 하소연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안전도 걱정이 되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어 며칠 동안 잠 못 이뤘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딱 한 마디, 부인의 ‘외롭다’는 말이었습니다.

#장면 2 그녀는 40대 초의 직장 여성입니다. 집에서 살림을 잘하고 직장에서 성과가 탁월하기에 슈퍼우먼으로 통합니다. 남의 일도 잘 도와주는 까닭에 인기가 좋아 그녀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로 넘쳐납니다. 동료의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기에 자타 공히 직장 내에서 소통의 허브 구실을 톡톡히 합니다. 흔히 ‘오피스 맘’이라 표현되는 사람이지요.

며칠 전 그녀는 외근을 나갔다가 마침 시간이 비어 호젓한 커피숍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었는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고 하였습니다. 그 눈물이 남들에게는 40대 아줌마의 주책이라고 여겨질지 모르겠지만, 도대체 혼자 있어본 때가 언제였는지, 그리고 그 시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했는지 모른다고 수줍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녀도 외롭다고 하였습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홀로 있을 시간이 없어서 외롭다는 겁니다. 풍요로운 사회관계의 역설이지요. 집에서 눈을 뜨면 아이의 엄마와 아내로서, 그리고 출근하면 동료들에 둘러싸여 하루에 단 10분도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내’가 낯설어진 것이지요.

#장면 3 그녀는 만나자마자 허탈하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십수 년을 오로지 자식과 가족만을 위해 살아왔는데, 이제 되돌아보니 자기 뜻대로 된 것은 단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학교 문제, 남편의 직장 뒷바라지 모두 열심히 했지만 대부분 기대 이하의 결과였다는 얘기였습니다. 그것들을 위해 시간과 돈, 열정, 이 모든 것을 희생했는데, 인생 헛산 것 같다며 후회의 말을 반복했습니다.

요즘 남편과 대화하다 보면 모두 아이들 걱정, 그리고 직장의 미래에 관한 불안감, 정치 얘기만 할 뿐 정작 두 사람의 관계와 자신과 관련된 얘기는 쑥 빠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제 가족들에게 저라는 존재는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단지 뒤치다꺼리해주는 도구로서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면 가끔 우울해요.”

이 세 가지 장면의 공통점은 뭘까요? 모두 속수무책으로 나이가 들어가는 여성들의 미묘한 심적인 변화입니다. 어디인지 그 근원을 알기 어려운 곳에서 거세게 일어나는 심리적인 울렁거림입니다. 영어권에서 말하는 ‘미들 에이지 크라이시스’, 즉 중년의 위기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저 일에 미쳐서, 혹은 가족들을 위해 살아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나’라는 자의식과 만나게 된 것이지요. 엄마로서의 나, 부인으로서의 나, 그리고 직장인으로서의 나 사이의 극심한 불일치 현상입니다.

열심히 달려오기만 했던 어느 날 문득, ‘내가 누군가?’ 하는 자각이 든 것입니다. 주위를 돌아보니 남들의 눈에 비친 나의 페르소나(지혜와 자유의사를 가진 독립된 인격적 실체)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수식하기 위한 존재, 목적을 위한 도구로 혹시 전락해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자의식, 두 발로 애써 꾹꾹 눌러놓았던 자의식이 떠오른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습니다. 물론 고통스러운 순간입니다.

저는 그 외로움을 꼭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은 웅덩이 같습니다. 웅덩이가 있어야 빗물이 고이는 것처럼, 혼자 있어 보아야 생각이 고이고 마음이 고이고 사랑도 고입니다. 한편으로 사회관계와 단절되어 고통스러운 것도 문제이지만, 정반대로 홀로 있을 시간이 없어 외로운 것도 문제입니다.

가끔은 고립되어야 합니다. 외로워보아야 진정한 사랑이 다시 생깁니다. 함께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도 되살아납니다. 무엇보다 ‘내’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없을 경우 자꾸만 주변을 구속하려 듭니다. 소유하려 듭니다. 자녀를 사사건건 간섭하고 남편을 지배하려 듭니다. 진정한 자신감의 결여 때문이겠죠.

고립과 연대의 아슬아슬한 균형, 그것이 인생의 묘미 아닐까요? 외로운 시간과 함께 있는 시간 사이의 이중주, 그 연주를 잘하는 사람이 인생이란 장르의 멋진 예술가가 아닌가 합니다.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자신의 결점을 장점으로 만들어내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가끔은 외로운 것, 두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인생을 재설정하는 창조적 시간이니까요.

글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 저서 <투아레그 직장인 학교> 등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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