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남편의 도전, 티라미수 케이크

카스텔라와 커피 한 잔, 유리병…15분이면 화이트데이 아이템용 케이크가 뚝딱!

등록 : 2017-03-09 15:34 수정 : 2017-03-09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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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섭 기자 bromide.js@gmail.com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을 영원히 반복해서 사랑하는 것이다.’ 철학자 니체의 말이다. 문제는 ‘반복해서 사랑해야 한다’는 거고 그 반복을 끝없이 확인해줘야 한다는 거다. 특히 당신이 남편이라는 지위를 이미 획득한 처지라면 더더욱 그렇다. ‘굉장한 적을 만났다. 아내다. 너 같은 적은 생전 처음이다’라는 프랑스 격언을 확인하고 싶지 않다면, 3월14일 화이트데이에 무언가를 해보자.

사실 화이트데이는 일본에서 넘어온 기념일이다. 1973년 일본의 과자회사 ‘후지야’와 ‘에이와’가 손잡고 만들었다고 한다. 맘이 불편해지고 제발 쥐도 새도 모르게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지만, 초보 남편 X인 내가 맞이해야 하는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셀프 스킵하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좋아하는 반찬 배급 횟수가 크게 줄 게 뻔하다. 더 나아가서는 인생의 한 줌 빛인 덕후질에 대한 승인·결재가 원활치 않아 나의 행복지수가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특히 아내님과 사소한 시시비비를 가릴 때마다 등짝은 아내의 스매싱 공격을 당하게 될 게 뻔하다. 그래도 아내님의 화가 안 풀린다면 남은 영혼마저 탈곡당할 수 있다는 점을 초보자 남편 X는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다.

사실 마케팅 기법이 발달하면서 일 년 열두 달 매월 14일마다 사랑하는 사이를 위한 기념일은 늘어서 있다. 4월의 블랙데이는 솔로를 위한 날이니 당연히 그냥 넘길 수 있지만, 로즈데이(5월), 키스데이(6월), 실버데이(7월)… 등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서라도 화이트데이에는 이벤트가 필수불가결하다. 3월 화이트데이를 성공한다면 사소한 기념일쯤은 안 챙겨도 멋지고 낭만적인 남편 칭호를 획득할 수 있다. 성공한다면 사소한 잘못으로 곤경에 몰렸을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방어와 회피의 아이템을 획득한 걸 의미한다.

그래서 준비한다. 가정의 평화…, 아니 나의 안식을 위하여. 노력 대비 결과는 개인차가 날 터이지만 효과는 그야말로 대단할 것이다. 이런 예측이 남자만의 판타지로 경기도 ‘오산’에 가까울 수도 있다. 늘 그래 왔듯이…. 하지만 추진한다. 다소의 귀찮음만 극복한다면 한참 동안 평온한 봄날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게다가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다.

도전할 대상은 티라미수 케이크. 연애 시절 유명 식당의 후식으로 나오는 모양 예쁜 티라미수 케이크는 그저 추억으로 남겨두자. 유리병만 준비하면, ‘홈 베이킹’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요리로 둔갑할 테니.

티라미수 케이크가 담길 유리병이 가장 중요하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하지 않나. 유리병의 시각적 효과가 천하제일이기에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래 봐야 몇 천원이다. 유리병은 가까운 마트나 인터넷 쇼핑으로 쉽게 획득할 수 있는 국민 아이템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유리병은 종류가 많아도 너무 많아 ‘무엇이 좋다’ 라고 족집게 가이드를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아내님 맘에 드는 것으로 고르되, 한 가지만 명심하자. 병이 너무 크거나 병 입구가 너무 좁은 것은 피해야 한다.

케이크 시트(빵)를 구할 수 있다면 제일 좋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카스텔라도 훌륭한 대용품이다. 빵은 가장 기본이 되는 재료지만, 어떤 빵이라도 나쁘지 않은 게 티라미수 케이크다. 빵은 얇게 썰려 유리병 안으로 들어가 달콤한 커피에 적셔질 운명이다. 크림치즈와 생크림은 마트의 유제품 판매대에서 쉽게 발견되고, 코코아 가루 역시 쉽게 살 수 있다. 다만 그동안 사먹지 않았던 것이기에 좀 낯설 뿐이다.

기본 재료들이 준비되었으면 레시피 문서들을 습득하자. 정보의 바다 인터넷엔 없는 것이 없다. 검색에 검색을 거듭하다 보면 많은 정보를 얻어 임무 수행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티라미수는 재료와 방법에 따라 다양한 풍미를 낼 수 있다. 심화학습은 알아서 하자.


생크림을 만들 때는 거품기가 있으면 참 좋은데, 거품기 사용이 서툴다면 주방을 생크림 범벅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야 한다. 맞다. 내가 그랬다. 생크림 거품 내다가 주방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본의 아니게 주방 대청소를 하고 싶지 않다면 조심하자.

맛은 어떠냐고? 크림치즈와 생크림이 갖는 본연의 부드러움과 맛있음이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 향과 어우러져 티라미수 케이크의 맛을 책임진다. 입에서 사르르 녹는 식감과 달달함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다. 내가 만든 것 맞나, 라는 의심은 접어두자. 진짜진짜 맛있다.

이후엔 전래동화 속 흔한 결말과 같다. 부드러운 티라미수 케이크를 아내와 함께 나눠 먹으며 ‘꺄르르 꺄르르’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추신: 그래도 자신 없다면 지면 아래 식신이 소개하는 식당으로 가보자. 어쨌든 화이트데이는 365일 중 하루일 뿐이니까.

티라미수 케이크 만들기

비주얼 담당: 유리병, 코코아 가루, 노끈

맛 담당: 크림치즈, 생크림, 에스프레소(없으면 인스턴트 커피), 설탕

기본 담당: 빵(케이크 시트 준비가 어려우면, 카스텔라)

만들기: ① 에스프레소 한 잔을 내려 설탕 또는 시럽을 입맛 따라 넣는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없다면 인스턴트 커피와 설탕을 써도 된다. ② 준비한 빵을 적당한 두께로 자른다. ③ 유리병 입구와 비슷한 크기의 컵으로 빵을 여러 개 찍어둔다.

④ 크림치즈를 부드러운 상태가 될 때까지 가볍게 푼다. ⑤ 차가운 생크림을 볼에 담아 빠르고 강하게 거품을 낸다. 이 과정이 아주아주 힘들다. ⑥ ④의 크림치즈와 ⑤의 생크림을 골고루 잘 섞는다.

⑦ 유리병에 빵을 넣고, 빵 윗부분에 ①에서 만든 커피를 고루 바른다.

⑧ 크림치즈와 생크림을 골고루 잘 섞은 재료를 빵 위에 적당한 두께로 바른다. ⑨ 유리병에 적당히 채워질 때까지 ⑦과 ⑧의 과정을 반복한다.

⑩ 유리병의 맨 윗부분은 크림이 오게 한 뒤 코코아 가루를 채에 걸러 예쁘게 뿌린다. ⑪ 코코아 가루를 잘 털어낸 다음 유리병에 노끈을 감아 리본을 만들어 마무리 한다.


글·사진 초보 남편 X 몬초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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