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의 도쿄라이프

일본 내 윤동주 시인 추모 열기

등록 : 2017-02-23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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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4일, 도쿄 이케부쿠로에 있는 143년 전통의 릿쿄대학을 찾아갔다. 19일 열리는 ‘시인 윤동주와 함께’ 기념식의 리허설을 보기 위해서다.

리허설이 시작됐다. 무대는 릿쿄대학의 교회. 검은 머리카락보다 흰 머리카락이 훨씬 더 많은, 47년 경력의 배우 마쓰오카 미도리씨가 윤동주 시인의 약력과 일대기를 낭독했다. 그리고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소개하는 중간중간에 ‘공상’ ‘꿈은 깨어지고’ ‘봄’ ‘아우의 자화상’ ‘십자가’ ‘별 헤는 밤’ ‘참회록’ ‘쉽게 씌어진 시’ ‘서시’ 등 동시까지 포함해 총 13편의 시를 낭독했다.

일본어 낭독은 일본의 연극배우 니노미야 사토시가, 한국어 낭독은 릿쿄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김대원 신부가 담당했다. 시가 낭독될 때는 피아노와 첼로가 배경음악으로 연주됐다. 피아노 연주는 재일동포 피아니스트 최선애씨가, 첼로는 와카나 나오토씨가 했다.

최선애씨는 80년대 지문 거부로 박탈당한 영주권 회복을 위해 무려 19년 동안이나 법정투쟁을 해온, 재일동포 역사의 살아 있는 주인공이다. 그녀의 아버지인 고 최창화 목사도 <엔에이치케이>(NHK)를 상대로 한국인 이름을 일본식이 아닌 한국식으로 읽어달라고 요구하는 법정투쟁을 벌인 인권운동가였다. 이들 덕분에 지금은 내 이름도 ‘류자이준’이 아닌 ‘유재순’으로 읽힌다.

이 같은 역사를 지녀서였을까, 아니면 윤동주 시인의 시와 그녀의 연주에 감정이입이 되어서일까. 마치 윤동주 시인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리허설 현장 분위기는 윤동주 그 자체였다. 리허설은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했다.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당시 연희전문대의 교가도 들려주었고, 응원가도 소개했다.

최선애씨 또한 건반 위에서 춤추는 손가락 움직임이 남달랐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약력 소개 중 1945년 2월16일, 큰소리로 외마디를 뱉은 후 절명한 시점을 사회자가 소개할 때는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왈칵 쏟는 이들이 많았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리허설이 끝난 후 김 신부에게 들으니 그동안 연습을 해오면서 김 신부나 니노미야 씨도 몇 번씩이나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역시 인간의 감정은 한국인이나 일본인 모두 똑같은 것이다.

리허설을 보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왜 그리도 무겁고 부끄럽던지, 참말이지 그들의 정성 앞에, 그리고 열의 앞에 진정으로 부끄러웠다. 그런 한편으로 이 공연을 해마다 빠지지 않고 정성을 다해 준비하는 ‘시인 윤동주를 기념하는 릿쿄의 모임’의 일본인들이 한없이 고마웠다.

일제 강점기에 한글로 시를 지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어, 정체 모를 주사를 맞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젊은 나이에 절명한 윤동주 시인을 얼마만큼 기억하고 기려왔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음에 리허설을 보는 내내 진심으로 부끄러웠다.


물론 우리 한국인들도 윤동주가 순절한 2월16일, 도쿄 한국 YMCA 호텔 9층 국제홀에서 한국시인협회(회장 민윤기) 주최로 ‘윤동주 시인이 그리운 밤’을 개최했다. 도쿄돔 근처의 ‘한국 YMCA 호텔’은, 윤동주가 처음 도쿄에 와 하숙집을 구하기 전 2주 동안 묵었던 곳이기도 하다.

김재홍, 허형만, 유자효 시인 등 38명의 시인들이 이날 일본에 있는 윤동주의 흔적을 찾아 시 낭송 등 윤동주 탄생 100주년, 순절 72년을 기리는 행사를 했다. 그리고 릿쿄대학 방문을 시작으로 다카다노바바 하숙집, 윤동주의 마지막 추억이 된 교토 우지가와, 도시샤 대학 등 그의 일본 내 발자취를 더듬는다.

최근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 문제로 한일 관계가 최악의 상태인데도,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행사가 일본 전국에 걸쳐 열리고 있다. 후쿠오카에서는 이미 2월 초에 기념행사가 있었고, 11일에는 도시샤대학에서, 16일에는 도쿄 YMCA 호텔에서, 19일에는 릿쿄대학에서 기념공연이 열린다. 뿐만 아니라 지역별 연구회에서도 각각 추모회를 하는 곳이 많고, 탄생 100주년을 맞아 <생명의 시인 윤동주>(다고 기치로 저) 등 단행본 출판도 줄을 잇고 있다.

글 유재순 <제이피뉴스>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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