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정도 불편없이 걸을 수 있는 동네가 좋은 도시”

등록 : 2016-03-3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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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적으로 도시설계의 화두가 되고 있는 ‘주민 건강’과 관련해 서울대 건축학과 박소현 교수가 “아이와 노인들이 걷기 좋은 동네가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이인우의 서울& ‘걷기 좋은 동네’ 한국적 틀 담은 책 펴낸 박소현 교수

세계 선진 도시들의 화두는 걷기 좋은 도시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교통난 해소가 제1과제이던 서울도 시장부터 보행친화도시를 외친다. 주말이면 북촌과 서촌은 관광객으로 넘치고, 경리단길, 연남동 등 새로운 길에 젊은이들이 몰리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우리 동네’는 어떤가? 걷기 좋은 동네인가?

박소현(55)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7~8년째 학생들과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다. 우리 실정에 맞는 ‘걸어서 좋은 동네, 걷기가 좋은 동네’의 한국적 틀을 만들어보자는 연구인데, 그 첫 결실이 최근 <동네 걷기 동네 계획>(공간서가)이란 이름의 책으로 엮여 나왔다. 위성항법장치(GPS)를 부착한 3040 전업주부들의 실제 동네 걷기 행태를 분석해 이론 구축에 필요한 ‘근거’를 도출하는 작업이었다. 전업주부를 조사 대상으로 삼은 것은 이들이 “동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고 이들이 걷기 좋은 동네가 결국 “아이들과 노인들도 살기 좋은 동네”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로부터 ‘걷기 좋은 도시 서울’에 대해 들어봤다.

“세계적 도시설계의 화두는 편리한 도시라는 개념에 더해서 건강한 도시가 어젠다가 되고 있어”

“지금 세계 도시 설계의 화두는 건강입니다. 주민이 건강해야 생산성도 오르고 출산율도 올라가지요. 그래서 아름다운 길, 편리한 도시라는 개념에 더해 지금은 걷기 좋은 길, 건강한 도시가 어젠다가 되고 있습니다. ‘(불편이나 목적을) 의식하지 않고 30분 정도 걷게 할 수 있는 동네’가 좋은 도시입니다.”

그러나 도시나 동네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역사나 문화가 다르다. 미국의 도시 환경과 우리나라가 같을 수 없다면 뉴욕과 서울의 걷기 좋은 동네 형태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서울은 주거밀도, 혼합용도, 대중교통 서비스 수준 등에서 미국의 주거-상업 분리 도시들보다 월등히 앞선다. 가회동과 상계동 주부들이 시애틀의 한국계 주부보다 하루 평균 2.65㎞(약 33분)를 더 걷는다. 그런데 도시 설계의 지식과 정보의 흐름은 여전히 외국 이론에 의존하고 있다. 박 교수는 2004년 미국에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는 내내 이 점이 불편했다고 한다. “방법론은 잔뜩 수입해 쓰는데 정작 우리 도시에 맞는 것은 없어요. 우리 실정에 맞는 ‘교과서’에 대한 갈증과 전문연구자로서의 책임감이 연구의 출발점이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국 도시의 대표적 특징인 아파트를 생각해 보자. 아파트는 미래의 동네 계획과 양립할 수 있을까?


“공동주택률이 60%가 넘는 우리 실정에서 아파트를 죄다 허물 수는 없지요. 대단지의 편리함과 소필지 동네의 역동성을 잘 섞어야 합니다. 핵심은 아파트냐 아니냐가 아니라 시민들의 경제적 능력과 선호에 맞는 선택지를 넓혀주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이게 한국적 방법론입니다. 다른 나라에선 이런 고민 안 하니까, 우리의 젊은 건축가들, 젊은 도시연구자들에게 기대를 걸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 동네 설계의 또다른 초점은 고령화 사회를 대비하는 것이다. “드라마 응팔(응답하라 1988)의 골목길 같은 온기와 현재의 도시 생활 조건을 조화시키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습니다. 혼자이지만,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가족제도가 해체된 사회에서 누군가가 ‘엄마의 희생’을 대신해야 한다면, 그것은 어떤 희생적 개인이 아니라 인간화된 시스템이 될 것이다. 각자가 따로이면서 동시에 같이 있는 공간의 설정이다. 동네가 그렇게 바뀌지 않으면 일상은 불행하고, 노년은 지옥이 된다. 다음 연구과제도 그래서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노인으로 이어진다.

“살기 좋은 동네가 되려면 어린이와 노인이 살기 좋아야 합니다. 일본에선 노인들이 가까이서 물건을 살 수 없는 ‘쇼핑 난민’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뛰어놀고, 노인이 죽기 전 5~10년을 자기 동네에서 평화롭게 생을 정리하는 도시가 절실해지고 있어요.”

걷기 좋은 도시로서 서울의 미래에 대해서는 젊은 세대의 감각과 책임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새로 대단지 짓지 않고도 서울 곳곳의 유휴지를 잘 활용하면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 유의 작업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도시 진화의 패턴을 만드는 일이니까요. 시민들과 정책 입안 및 실행자들의 안목과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토대가 만들어지면 그 위에서 도시 디자인 언어가 만들어집니다. 각 동네의 특성에 맞게 조합하여 그 동네 실정에 맞는 ‘걷기 좋은 동네, 살기 좋은 마을’을 실현하는 것, 그것이 도시 설계 차세대의 과제입니다.”

박 교수는 미국 콜로라도대 건축대학 교수로 있다가 2004년부터 서울대 건축학과에서 가르치고 있다. 도시 보존, 참여형 공동체 계획 등이 그의 주요 전공분야다.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 서울시 도시계획위 등 주요 정부 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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