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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서 손쉽게 자원 다시 쓰고 나눠요”…서초 탄소제로샵의 효과

서초구, 2021년부터 주민·상점 잇는 자원 재사용 순환구조 만들어 운영
옷걸이·아이스팩·종이백 등 8개 품목, 주민이 모아 다시 쓸 가게에 전달

등록 : 2023-12-28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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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탄소 3만㎏ 줄여…30년생 소나무 4천여 그루 심은 셈

10개동 주민과 가게 400곳이 참여

생활쓰레기 줄고, 점주는 비용절감

‘서초코인’ 적립으로 참여동력 마련

“모든 동 확대, 매해 100곳 늘릴 것”

탄소제로샵은 서초구와 푸른서초환경실천단, 에코허브 등이 손잡고 2021년부터 3년째 추진해온 주민 주도 자원순환 네트워크 사업이다. 현재 10개 동 주민들이 재사용 8개 품목(세탁소 옷걸이, 비닐봉지, 종이백, 아이스팩, 커피트레이 등)을 직접 모아 동네 탄소제로샵 400곳에 전달하고 있다. 참여 주민과 가게는 서초코인(포인트)을 적립할 수 있고, 코인은 탄소제로샵에서 사용할 수 있다. 지난 13일 반포4동 탄소제로샵 ‘서래정육점’에서 주민 나영란씨(오른쪽)가 모아온 아이스팩을 사장 서광석씨에게 건네고 있다.

지난 13일 오후 서초구 반포4동에 사는 50대 유형숙씨는 종이 쇼핑백(종이팩) 10개를 들고 동네 양품점을 찾았다. 가게 유리문에는 ‘탄소제로샵’이란 문구와 함께 종이백 이미지와 ‘자원순환 실천가게’라고 표시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양품점 사장 최순용씨가 유씨를 반갑게 맞으며 종이백을 건네받았다.

“종이백이 집에 쌓이는데 버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어 좋네요”라고 유씨가 말했다. “지구가 아프다니까 함부로 버리지 말고 다시 쓸 수 있는 건 활용하는 게 좋죠”라고 최씨가 맞장구를 치며 “큰 비닐봉지도 가게서 옷 걸어둘 때 필요하니 생기는 대로 가져다주세요”라고 덧붙였다.


유씨는 스마트폰을 꺼내 서초코인앱에 로그인한 뒤, 가게 안에 붙여져 있는 탄소제로샵 정보무늬를 스캔했다. 해당 품목에 수량을 써넣고 사진을 찍어 올렸다. 앱 화면엔 1 ‘서초코인’이 적립되어 ‘유형숙님 21’이라고 떴다. 그동안 유씨가 모은 코인 개수다. 서초코인은 가게 주인 최씨도 똑같이 적립했다.

최씨는 “환경도 보호하고 포인트도 쌓을 수 있어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서초코인은 서초구가 탄소제로샵 참여 활성화를 위해 활용하는 보상 시스템으로 품목 10개에 1코인(100원)이 쌓인다. 코인은 탄소제로샵을 이용할 때 쓸 수 있다.

서래정육점 입구 유리문에 탄소제로샵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현재 서초구 10개 동에는 자원(옷걸이, 종이팩, 아이스팩 등)을 돌려쓰는 가게 ‘탄소제로샵’이 400여 곳 있다. 반포4동은 올해부터 참여해 60곳의 탄소제로샵이 생겼다. 탄소제로샵은 서초구와 푸른서초환경실천단, 에코허브(비영리 환경단체) 등이 손잡고 2021년부터 3년째 추진해온 주민 주도 자원순환 네트워크 사업이다. 세탁소 옷걸이, 비닐봉지, 종이백, 아이스팩, 커피트레이 등 재사용할 수 있는 8개 품목을 참여가게(세탁소, 정육점, 카페, 문구점, 중·소규모 상점 등)에 주민들이 직접 모아 전달하는 방식이다.

탄소제로샵 사업은 푸른서초환경실천단이 제안했다. 평소 지역에서 환경보호를 위한 시민 실천을 이끌어온 모임으로 현재 180명의 주민이 동별로 나눠 활동하고 있다. 김순금(73) 구단장은 “다시 쓸 수 있는 물품을 동네에서 재사용하는 활동을 그동안 단원들이 개인적으로 열심히 해왔다”며 “서초구가 시스템과 체계를 갖춰 더 많은 주민이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해 제안했다”고 말했다.

서초구에 따르면 구의 생활쓰레기 배출량은 서울시 25개 자치구 가운데 7위로 상위권이다. 인구(40만 명대)가 비슷한 다른 구에 견줘 약 2배 많은 편이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종이 박스, 아이스팩, 비닐 등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쓰레기양도 크게 늘어 생활 쓰레기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던 중이었다.

서래양품점 사장 최순용씨(오른쪽)가 주민이 가져온 종이팩을 받고 있다.

구는 실천단의 제안을 받아 적극적으로 추진에 나섰다. 물건의 사용 기한을 늘리는 재사용 전략이 쓰레기 감량, 더 나아가서는 탄소중립 실천에 효과적이라 판단했다. 이대성 서초구 자원환경과 주무관은 “다시 쓸 수 있는 자원은 주민들이 따로 모으고, 다시 쓸 수 있는 거점에 전달할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에 푸른서초환경실천단, 에코허브와 유기적으로 협력하며 함께 발 벗고 나섰다”고 했다.

서초구는 사업 총괄을 하며 탄소제로샵 인증과 동별 가게 위치와 재사용 수거 품목을 표시한 지도를 만들어 배포하며, 구청 누리집에도 올린다. 주민들에게 사업을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는 홍보 활동을 곁들인다. 푸른서초환경실천단은 참여가게를 찾아내고, 재사용 물품 실태 등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한다. 주민과 상가 등의 자원 재사용 실천에 대한 인식과 요구도 등을 사전에 파악하는 활동도 이어간다. 모니터단 활동을 위한 교육과 코디네이터 역할은 에코허브가 맡는다.

사업 첫해엔 지역 거버넌스와 함께하는 환경생태계 조성사업으로 ‘자원순환가게’라는 명칭으로 추진했다. 서울시 환경 공모사업으로 진행됐다. 3개(서초4, 방배, 양재2)동에서 재사용 품목 4가지(옷걸이, 아이스팩, 종이백, 비닐봉지)로 참여 가게를 모았다. 시범 동의 실천단원들이 적극적으로 뛰어 5개월 만에 가게 100곳의 참여를 끌어냈다. 구는 주민 모니터단을 모집해 교육하고, 이들은 가게마다 재사용 물품 실태 모니터링을 했다.

세탁소 ‘매직크린' 앞에서 참여 주민들이 재사용품(아이스팩, 종이팩, 옷걸이)을 보여주고 있다. 왼쪽부터 유형숙·나영란·김순금씨.

두 번째 해인 2022년부터는 서초구 자체 사업으로 이어왔다. ‘탄소제로샵’으로 명칭도 바꿨다. 기존 동에 4개(서초1, 반포1, 방배본, 양재1) 동을 추가해 7곳에서 진행했다. 9월에 300호점이 나왔다. 테이크아웃용 종이박스(트레이)가 재사용 품목으로 추가됐다.

올해는 3개(서초2, 서초3, 반포4) 동이 추가로 참여해 모두 10개 동에서 진행했다. 18개 전체 동의 60%가 참여한 셈이다. 7월에 서초구가 보상 시스템으로 ‘서초코인’을 연결하면서 사업에 속도가 더해졌다. 4개월 만에 100호가 추가되어 11월엔 인증 가게가 400호에 이르렀다. 재사용 품목으로 보냉백, 종이 충전재, 비닐 포장재(뽁뽁이)도 더해져 8개로 늘었다. 배달, 택배 이용이 많아지면서 집집마다 쌓이는 품목들이다.

탄소제로샵 사업 2년 동안 탄소배출을 줄인 게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서초구에 따르면 탄소 3만㎏을 줄였다. 30년생 소나무 4천여 그루를 심은 효과다. 수거량은 약 30만개에 이른다. 품목별 수거량은 옷걸이, 종이백, 아이스팩 등의 순서로 많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효과는 옷걸이, 아이스팩, 종이백 등의 순서로 컸다. 수거량이 많지는 않지만 아이스팩이 탄소 절감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 유형숙씨가 서래양품점에 있는 정보무늬를 스캔하고 있다.

참여 가게의 물품 구매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었다. 반포4동 아파트 상가에 있는 세탁소 ‘매직크린’의 사장 강봉길씨는 “옷걸이를 사려면 개당 120원인데 회수된 만큼 비용을 아낄 수 있다”며 “20% 정도를 다시 쓸 수 있게 주민들이 되돌려준다”고 말했다. 매직크린은 지난 11월 탄소제로샵 400호점으로 인증받았다.

서래마을 맞은편에 있는 ‘서래정육점’의 사장 서광석씨도 “(가게 운영에) 직접적인 도움은 아니지만, 아이스팩 구입에 드는 비용은 아낄 수 있다”고 했다. 아이스팩은 개당 200~300원으로, 수요가 많은 여름철엔 재사용품으로 2만원 정도 절약된다고 한다. 서씨는 “주민들이 (아이스팩을) 가져오면 펼쳐서 다시 얼려 창고에 쌓아두고 필요할 때 꺼내 쓴다”며 “작은 변화라도 동참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참여 주민들은 재사용 물품을 주저하지 않고 가져다줄 수 있는 동네 가게가 생겨 좋다는 반응이다. 반포4동의 푸른서초환경실천단 동단장인 나영란(58)씨는 “이전엔 재사용 물품들을 동네 가게가 필요로 할까 망설이기도 했다”며 “탄소제로샵이 생기면서 자신 있게 활동할 수 있어 좋다고들 한다”고 전했다. 나씨는 “개인적으로는 버리기 전에 다시 쓸 수 있는 물건이 있는지 살펴보는 습관도 생겼다”며 “우리 집 분리수거량이나 종량제 봉투 사용량도 30% 정도 준 것 같다”고 했다.

11월16일 서초구 반포4동 주민들과 전성수 서초구청장 등이 세탁소 ‘매직크린’ 앞에서 탄소제로샵 400호점 달성을 기념하며 재사용 옷걸이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첫째 줄 왼쪽부터) 세탁소 사장 강봉길씨, 전성수 서초구청장, 반포4동 주민들. 서초구 제공

재사용 물품에 대한 인식 개선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나영란씨는 “반포4동의 경우 가게 80곳을 발굴했는데 이 가운데 20여곳이 참여를 망설였다”며 “비용절감 효과가 작아 필요 없다거나 손님이 꺼릴 수 있다며 부담스러워하는 사장님도 있었다”고 전했다. 김지현 기후환경과 주무관은 “(재사용품을) 쓰는 사람이 있어야 자원순환이 이뤄질 수 있다”며 “재사용품 활용에 대한 주민, 상인들의 인식을 개선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초구는 18개 전체 동이 탄소제로샵 사업에 참여하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탄소제로샵 가게도 해마다 100곳 정도 늘릴 예정이다. 전성수 구청장은 “지난해 세계 4대 국제환경상(그린애플어워즈)을 받을 정도로 탄소제로샵 사업이 국내외에서 의미 있게 평가받고 있다”며 “앞으로도 주민과 상점을 잇는 촘촘한 자원순환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탄소중립 서초를 실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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