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칼갈이, 주민들 만족도 높아”

용산구, 오는 10월27일까지 ‘찾아가는 칼갈이·우산수리센터’ 운영

등록 : 2023-08-1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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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남(왼쪽 첫째)·박종민(왼쪽 둘째)씨가 3일 용산구 이태원2동 주민센터 1층에서 칼과 가위를 갈고 있다. 한 주민이 신문지로 싼 칼을 ‘갈아달라’며 내밀고 있다.

3일 오전 10시20분께 이태원2동 주민센터 1층에 들어서자 ‘윙~’ 하는 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열심히 우산을 수리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업하다가 장사가 안돼서 쉬었죠. 구청에서 칼갈이와 우산 수리 직원을 모집한다길래 지원하게 됐습니다.” 박종민(60)씨는 2019년 경기가 좋지 않아 전자제품 수리 일을 그만뒀다. 여기저기서 아르바이트하던 그는 전자제품을 수리하던 손재주가 있어 용산구가 시작한 칼갈이·우산수리센터 직원 모집에 지원해 5월부터 칼갈이 일을 시작했다.

윙~ 소리가 날 때마다 전동 숫돌에 쇠붙이가 갈려 떨어져 나갔다. “숫돌을 다이아몬드로 만들었어요.” 쇠가 갈릴 정도이니 숫돌이 얼마나 강한지 짐작됐다. 얼핏 신경을 딴 데 두면 다칠 위험도 있어 보였다. “칼 하나 가는 데 평균 10분 정도 걸려요.“ 박씨는 “칼 종류도 천차만별이라서 가는 시간도 모두 다르다”며 “지금 가는 칼은 쇠가 강해서 좀 오래 갈아야 한다”고 했다. “손님들 접대하는 게 힘들죠. 어르신이 많이 오시는데 바라는 게 많아요.” 박씨는 “크게 힘든 것은 없지만 막무가내로 빨리 해달라는 주문이 많다”고 했다.

박씨는 ‘칼갈이 창업’은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칼 하나 갈고 하나에 오천원, 만원 정도 받으면 될 듯하지만, 돈 내고는 칼을 갈지 않을 것 같아요.” 박씨는 “장사하는 사람들이나 칼을 갈지 일반 가정에서는 간이 숫돌에 갈면 되는데 굳이 이렇게 나와서 돈 주고 갈까 싶다”며 의문을 표했다. 돈 주고 칼을 가는 사람이 없는데 창업이 쉽겠냐는 생각이다.

박씨 옆에서 함께 칼을 가는 손재남(53)씨는 이번에 새로 시작한 ‘수습사원’이다. 칼갈이 물량이 많아지자 7월부터 박씨와 함께 칼갈이를 한다. 카메라 판매점을 운영했던 손씨는 “열심히 칼을 갈다보면 앞으로 좋은 기회가 올 것으로 본다”고 했다.

10시40분께 정문옥(84)씨가 칼을 찾으러 왔다. 정씨는 지난번에 칼을 갈러 왔다가 헛걸음했다. 접수 물량이 많아 칼을 갈 수 있는 한도를 넘어 더는 접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날은 아침 일찍 나와 줄을 서 ‘1번’으로 칼 세 개를 맡겼다. 정씨는 “오늘 처음 칼을 갈았는데, 너무 좋다”며 칼을 받아 돌아갔다.

우산을 수리하는 장영기(65)씨는 살이 부러진 우산을 열심히 고치고 있었다. “4월에 다른 구청에 현장 견학을 가서 배웠죠.” 우산 수리량은 칼에 비해 많지 않다. “천이 찢어졌거나 우산대가 휜 것, 자동 우산인데 작동이 안 되는 것은 수리하기 힘들죠.” 장씨는 “나이 드신 분들이 수리할 수 없는데도 억지스러운 요구를 할 때가 많이 있다”며 “아무리 설명해도 잘 알아듣지 못해 난감할 때가 많다”고 했다.


우산을 수리하는 장영기씨가 한 주민이 맡긴 우산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다.

“2만원 벌었네요. 돈 벌기 쉬워요. 감사합니다.” 수리한 우산을 받아든 최광연(74)씨는 ‘돈 벌었다’며 무척 기뻐했다. 다행히 우산이 크게 망가진 게 아니라 우산 살대를 연결하는 부속을 제대로 꽂아 고정하면 됐다. “2만원 주고 샀는데, 10년 정도 썼어요. 망가지거나 잃어버리지 않으면 계속 쓰잖아요. 굉장히 가벼워서 여행 다닐 때 사용하기 좋아요.” 최씨는 “새 우산을 사러 가야 하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다”며 “단순히 우산값 2만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했다. 최씨는 이날 주민센터에서 칼 세 개를 갈고 우산 한 개를 수리했다.

용산구는 지역 주민을 위해 지난 5월8일부터 10월27일까지 찾아가는 칼갈이·우산수리센터를 운영한다. 칼갈이·우산수리센터는 무딘 칼이나 가위, 고장 난 우산 등을 무료로 수리한다. 더는 사용하지 않는 고장 난 우산은 기부도 받는데, 다른 우산을 수리할 때 부품으로 재활용한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용산구 내 동 주민센터 16곳을 돌며 운영하는데, 동마다 연 6회 방문 운영할 계획이다. 이태원2동 주민센터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지난번에는 야외에서 칼갈이와 우산 수리를 했으나 최근 폭염으로 장소를 실내로 옮겼다.

칼갈이·우산수리센터는 지난 6월까지 구 내 모든 동 주민센터를 한 바퀴 돌았다. 이용 주민은 1325명, 칼이나 가위 3101개를 갈았고, 우산은 329개 수리했다. 1일 평균으로 따지면 이용 인원은 42명, 칼이나 가위는 100개, 우산은 10개를 수리한 것이다.

칼갈이·우산수리센터에는 칼갈이에 두 명, 우산 수리에 한 명이 근무한다. 칼갈이는 접수 물량이 많아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어 지난 7월3일부터 한 명을 더 충원했다. 업무 시간은 평일 오전 9시30분~오후 3시30분으로 하루 5시간 근무한다. 임금은 2023년 용산구 생활임금 1만1157원을 적용했는데 점심값과 주차·연차 수당을 받고, 4대 보험도 가입한다.

용산구는 칼갈이와 우산 수리로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과 주민 편의를 함께 제공한다. 생활밀착형 주민 서비스로 주민의 구정 만족도를 높이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한 자원을 재활용해 자원 절약과 환경 보호에도 도움을 준다. 김유정 일자리정책담당관 일자리정책팀 주무관은 “저소득층에 직접 일자리를 제공해 생계와 고용 안정을 도모하고, 칼갈이나 우산 수리 참여자가 기술을 습득해 자립할 수 있는 기반 만들기를 지원한다”며 “일자리 창출과 주민 편의를 동시에 만족하는 일석이조 사업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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