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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더라도 작은 성취 맛보게 도와요”

개관 1주년 맞은 ‘서울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의 이교봉 센터장

등록 : 2023-08-1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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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봉 서울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장이 지난 2일 중구 센터의 활동공간 ‘어울마당’에 걸린 펼침 막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펼침막에는 시간과 노력을 보통보다 3배 더 들여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경계선지능 인 16명의 이름과 응원 문구가 담겨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20년 청소년활동 지원 경력 전문가

지능지수 70~84인 경계선지능인의

특성·욕구 맞춰 프로그램·상담 운영

부모·교사 교육, 인식개선 넓혀나가

“개척자로서 두렵지만 성취감도 느껴”

‘넌 역시 최고야! 다음 도전 가즈아~’

서울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센터(밈센터)의 활동공간 ‘어울마당’에 걸린 펼침막 문구다. 아래에는 스페셜티커피협회(SCA) 바리스타 스킬 합격자 16명의 이름이 적혀 있다. 맞은 편엔 얼마 전 개관 1주년 기념행사 때 만든 풍선이 꽂혀 있었다.


“작은 성취도 크게 칭찬해 우리 친구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높여주고 싶었어요.”

2일 중구 서울시의회 인근에 있는 밈센터에서 만난 이교봉(63) 센터장은 펼침막을 건 이유를 설명했다. 센터는 8회로 구성된 바리스타 교육과정을 경계선지능인의 특성에 맞춰 25회에 걸쳐 운영했고, 참여자들은 모두 합격했다. 3배 이상의 시간과 노력이 든 셈이다. 그는 “(경계선지능인의) 눈높이와 속도에 맞춰 교육하면 이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경계선지능인’은 지능지수가 지적장애 기준보다는 높지만, 평균보다는 낮은 70~84의 인지능력을 가진 이들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경계선지능인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지표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지능지수 정규분포 등을 고려해 전체 인구의 13.6%가 여기에 속한다고 본다. 인구 7명 중 1명, 학생 수가 25명인 학급에선 3~4명 정도가 경계선지능인으로 추정된다. 법적으로 장애인이 아니어서 교육과 복지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다. 친구가 없어 외롭고 놀림이나 따돌림으로 상처받는 이가 적잖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나와서 적응하기도 녹록지 않다.

밈센터는 2020년 서울시의회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정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 조례에 따라 지난해 6월 문을 열었다. 이들의 꿈을 밀어주고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인식을 확산해나간다는 중의적 뜻을 담아 밈센터로 이름 지었다. 서울시교육청 위탁형 경계선지능인 대안학교의 사단법인 ‘DTS 행복들고나’가 위탁운영을 맡았다. 10명의 직원이 경계선지능인을 위한 프로그램과 상담 등을 진행한다. 현재 등록 회원은 300여 명이다. 절반이 청소년이고, 40%가 20~30대이며, 나머지는 40대 이상이다.

이교봉 센터장은 청소년 활동 관련 전문가다. 1999년부터 20년 동안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 청소년지도자연수센터장, 청소년활동안전센터장, 활동진흥본부장 등을 거쳐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장으로 퇴임했다. DTS 행복들고나의 지우영 이사장을 통해 경계선지능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지원 필요성을 느껴 주저 없이 센터장직을 맡았다. 이 센터장은 “그간 새롭게 시작하는 기관을 운영한 경험이 많다”며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 하는 두려움과 불안도 있지만, 개척자로서의 성취감도 컸다”고 했다. “이전 경험을 살려 밈센터의 운영 기반을 만드는 데 발자국을 남긴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년 동안 밈센터는 경계선지능인의 심리적·정서적 안정에 힘을 기울였다. 친구를 사귈 수 있게 자조 모임을 운영하고 숲 힐링 등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읽고 쓰고 이해하는 능력과 데이터 라벨링 과정 등 직업역량을 키우는 수업도 했다. 일부 프로그램은 자치구나 복지관 등과 연계해 이뤄졌다. 이 센터장은 “프로그램은 이들의 특성에 맞게 진행되며, 참여자들이 ‘누군가 나를 지지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센터는 부모 대상 교육과 자조 모임을 운영하고 내년에는 교사 교육도 할 계획이다. 지난해 연말 지하철 3·6호선 전동차 안에 공익광고도 하며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일으키기 위한 첫걸음도 내디뎠다.

경계선지능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들을 둘러싼 환경 개선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다름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도와주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당사자들의 노력만으로 부족하며 집, 학교, 사회도 같이 변해야 한다”고 했다.

이 센터장은 센터를 이용한 당사자와 보호자들의 긍정적 반응도 전했다. ‘또래 친구가 생겨 좋다’ ‘덕분에 자신감이 생겨 취업이나 다른 것들도 도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걱정했는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도 뭔가를 할 수 있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등의 반응이 있었다. 아이가 학교 졸업 뒤 은둔형 외톨이처럼 지내 걱정이 많았던 한 어머니는 ‘집 밖에 나올 기회가 생겨 감사하다’고 했다.

센터에 대한 외부 기관의 관심은 높다. 매주 목요일 기관 방문 프로그램을 운영할 정도로 전국의 지자체, 복지관 등의 방문이 많다. 서울시 조례 제정 뒤 전국에 경계선지능인 조례가 만들어진 지자체가 3년 만에 39곳으로 늘었다. 지자체에서 제도적 틀을 만들고 있으나 재원 부족의 벽은 넘지 못하고 있다. 센터의 올해 예산은 인건비, 운영비, 사업비 모두 합쳐 12억9천만원으로 전액 시비다. 이 센터장은 “지자체 조례와 예산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상위법이 생겨 국가 차원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센터는 하반기에 경계선지능인 인식개선 거리 캠페인과 프로그램 경진 대회를 열 계획이다. 서울시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 3개년 종합계획에 따라 내년부터 센터는 자치구가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과 전문가도 이어줄 예정이다. 이 센터장은 “센터의 비전은 경계선지능인의 행복한 삶을 지원하는 평생의 동반자이다”라며 “비전에 맞춰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이 되도록 노력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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