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데이’를 농부들 힘내는 날로

11월 11일 상징하는 가래떡 2개에 조청을 더하면 쫄깃함에 아이들 마음에도 쏙

등록 : 2016-11-10 14:13 수정 : 2016-11-1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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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딸에게는 반전 매력이 있다. 끼니때는 피자나 스파게티만 찾으면서 간식은 무조건 가래떡이어야 한다. 기다랗고 말랑말랑한 가래떡을 리코더 불 듯 입에 물고 오물거릴 때 딸은 무척이나 행복해 보인다. 신기한 건 떡볶이로 주면 절대 먹지 않는다는 사실. 궁중떡볶이도 아이 앞에선 찬밥 신세다. 이토록 가래떡만 고집하는 데에는 사연이 있다.

“11월 11일은 농부들이 힘내는 날”

2013년 11월 11일, 동네 놀이터에는 열댓 명의 아이들이 모두 손에 빼빼로를 들고 놀고 있었다.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돌쟁이부터 누굴 좋아하는지 캐묻느라 야단인 초등학생들까지 정말 그랬다. 그사이를 빈손으로 의기양양하게 걸어 다니던 아이가 있었으니, 유치원 가방을 멘 우리 딸이었다.

“나는 빼빼로보다 더 맛있는 거 받았는데!” 시소에 걸터앉은 딸아이가 뽐내듯 큰소리치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딸아이는 가방을 열고 작은 선물 상자를 꺼냈다. 마치 조각케이크가 들어 있을 것 같은 예쁜 상자였다.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오늘이 무슨 날이게?” 딸아이가 묻자, 빼빼로가 아닌 다른 걸 기대했던 초등학생들은 실망한 표정이 또렷했다. 그런데 웬걸, 상자 속에는 오색 가래떡이 고운 리본과 함께 소담스럽게 담겨 있었다. 여기저기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늘은 가래떡데이야. 11을 한문으로 써서 더하면 ‘흙 토’가 되거든. 농부 아저씨들 힘내시라고 정한 날이래.” 또 한 번 탄성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올!” “대박” 같은 초등학생들의 감탄사였다. 우쭐해진 딸아이는 한껏 들뜬 표정으로 가방에서 무언가를 또 꺼냈다. 조청이 든 작은 꿀단지였다. “이거 찍어 먹으면 엄청 달콤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 손에서 저 손으로 조청이 돌았다. 조청이 딸아이에게 다시 왔을 때는 단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작은 상자도 텅 비어 있었다. 그렇지만 딸아이도 나도 조금도 서운하지 않았다. 쫄깃함에 처음 눈뜬 돌쟁이부터 찍어 먹는 재미에 푹 빠진 초등학생들까지 조금씩 나눠가며 맛있게 먹는 모습이 황홀한 포만감에 젖게 했다.


추억은 잃어도 맛에 대한 기억은 남아

아쉽게도 딸에게는 2013년 11월 11일의 기억이 거의 없다. 고 작은 입이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얼마나 야무지게 떠들었는지, 다른 엄마들에게 얼마나 칭찬을 많이 받았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날을 계기로 딸아이가 가래떡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고백하건대 그전까지는 손에 묻는 게 싫다며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니 울타리를 칠해야 하는 톰 소여처럼 머리를 썼던 모양인데, 결국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고 만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나는 딸이 기특하다. 자극적인 음식을 즐기면서도 삼삼한 가래떡과의 의리는 저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수입 쌀에 쌀값 폭락까지 농사짓기 어려운 대한민국에서 이 얼마나 가치 있는 입맛인지, 오늘도 뉴스를 보며 깨닫는다. 내일은 가래떡 한 말과 조청을 들고 아이와 함께 광화문광장으로 가야겠다.

글 문보라 블로그 ‘협동으로 랄랄라’ 운영진

사진 이지나 서울 iCOOP 조합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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