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은 붉은 단풍, 떠나는 이의 멋스러움 일깨운다

손관승의 공감재생 골목여행 ㉒ 비움의 시간 맞은 대학로

등록 : 2020-11-1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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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포스터 옆 ‘코로나 긴급지원’ 소식

‘전염병 피해 가장 큰 곳’ 다시금 느껴져


샘터·난다랑 등 사라진 건물의 향수

모든 것은 떠난 뒤 더 아름다운 것일까

지는 낙엽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채움의 시간이 있다면 비움의 시간도 있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3번 2악장 아다지오를 프랑스 여성 피아니스트 엘렌 그리모의 연주로 듣는다. 프랑스문화원이 아직 경복궁 건춘문 앞에 있을 때 종종 들러서 보았던 영화의 이국적인 장면처럼 음악은 흐른다.


대학로의 은행잎들을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혜화역에서 내렸다. 만추(晩秋)를 떠나보내기 전 나만의 작별의식이다. 출구로 나가다 보니 구내 한쪽 벽은 뮤지컬과 소극장 공연 소식으로 가득하다. 또 다른 한쪽 벽에는 공연예술 전반에 대한 코로나19 ‘긴급지원사업’을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는 곳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1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그 길의 이름이 동숭길, 대학 실용음악과 건물과 뮤지컬과 연극 소극장 등 공연장들이 가득하다. 대학로 양방향으로 혜화동까지 방사선처럼 골목골목 소극장이 숨어 있다. 대학로 공식자료에 따르면 크고 작은 공연장이 모두 160여 개 몰려 있다고 하니, 명실공히 한국 공연의 메카다.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 영국 런던의 웨스트엔드처럼 공연거리를 지향한다는 취지에 일단 수치상으로는 걸맞은 규모다.

하지만 썰렁한 날씨에다 코로나19 장기 사태로 이전의 활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동숭길을 따라가다 대학로12길을 만나는 점에서 미술과 건축 전문으로 유명한 북카페 ‘타셴’에 들렀다. 건물 공사의 어수선함 때문인지 역시 한산했다. 대학로 주택가 쪽으로 크게 도는 동숭길과 그 안쪽의 대학로8가길을 주축으로 둥그렇게 ‘마로니에길’로 지정돼 주말과 일요일에는 차 없는 거리가 되어 보행자 천국으로 변하는 동네다.

미술 전문 북카페 타셴

누가 뭐래도 대학로 중심은 마로니에공원이다. 이곳은 색(色)의 광장이다. 공기는 차갑지만, 다행히 가을은 멀리 떠나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황금빛 물결로 나를 환대해주었다. 공원 한가운데 서 있는 마로니에 나무와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진한 노란색 잎사귀들은 주변의 붉은색 벽돌 건물과 어울려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냈다. 여기에는 건축가 김수근의 아이디어가 큰 역할을 했다. 서울대학교 문리대가 1975년 관악캠퍼스로 이전한 뒤 그 자리를 공원으로 조성한 것으로, 김수근은 공원 주변에 붉은 벽돌로 지어진 미술관과 공연장을 짓자는 제안을 했고, 1981년부터 건물들이 들어서게 된다. 이후 2010년 재정비 사업을 거쳐 아르코 예술극장과 아르코 미술관을 주축으로 한 현재의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됐다. 공원 한편에 기념비와 함께 구서울대학교 본관이 서 있는데 이곳이 서울대 동숭동 캠퍼스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며 대학로라는 이름이 시작된 근거이기도 하다. 현재는 예술가의집으로 쓰인다.

예술가의집으로 변한 옛 서울대 본관

마로니에공원과 아르코 극장

마로니에공원 옆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건물이며 정문 출입구 우측으로 유럽식 건물이 보인다. 이 건물은 대한제국 시절인 1906년에 지어졌고, 이후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청사로 쓰였다. 빗물이 흘러내리기 쉽게 건물 벽을 독일식 비늘판으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대한제국 시절 건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목조 건물답게 실내 복도와 계단 역시 나무로 지어졌다. 현재는 방통대 본부로 쓰인다.

조선총독부 중앙시험소 청사로 1906년에 지어진 건물.

이곳을 돌아 나와 혜화역 2번 출구 방향으로 가면 대형 창문이 인상적인 붉은색 벽돌 건물이 있다. 최근까지 샘터사 건물로 쓰이던 곳으로 역시 김수근의 작품이다. 그곳에는 한국 커피 체인점 1호인 ‘난다랑’이 있었다. 다방이 아닌 현대화된 커피문화를 보급한 주역이다. 나는 난다랑 2층에서 필기시험을 치르고 샘터사에 입사했으며, 그 커피숍에서 시인 김형영, 동화작가 정채봉, 훗날 한겨레신문 편집국장과 경향신문 사장이 되는 고영재 같은 쟁쟁한 이름들과 함께 열린 편집회의에 참석하곤 했다. 그곳은 또 법정 스님, 작가 최인호와 김승옥, 이해인 수녀 같은 당대의 유명 작가들과 차 한잔 나누던 곳이기도 하였으니 지성인들의 사랑방이라 해도 무방하다.

옛 샘터사

하루하루 불안감과 열등감을 꾹꾹 누르고 기다림의 간절한 시간을 보냈던 곳도 바로 그곳이었다. 짧은 시간 근무했지만 샘터 건물은 내게 미래를 위한 정거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 난다랑 자리에 현재는 스타벅스가 자리잡고 있다. 로컬의 고유함과 문화의 향기 대신 글로벌과 자본이 대체한 것이다. 작가 최인호가 김재순 샘터사 이사장과 함께 점심식사 하러 다니던 우동집 ‘기조암’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일본 사누키 지방에서 제조법을 배워와 수타우동으로 유명했던 곳인데, 전화를 걸었더니 ‘없는 번호’라는 메시지만 흘러나온다. 샘터사 건물 대각선 건너편으로 보이는 약국건물 2층에 ‘학림’이라는 이름이 나무계단과 함께 남아 있을 뿐이다. 전통과 지속 가능함은 우리에게 여전히 사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일까? 다시 대학로 거리로 나서는데 바람이 불고 어느덧 석양이 지려고 한다. 동물원 노래 ‘거리에서’가 떠오르는 시간이다.

“거리에 짙은 어둠이 낙엽처럼 쌓이고/ 차가운 바람만이 나의 곁을 스치면/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옷깃을 세워 걸으며 웃음 지려 하여도/ 떠나가던 그대의 모습 보일 것 같아/ 다시 돌아보며 눈물 흘려요”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가을을 가리켜 ‘모든 잎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이라고 했다. 봄은 물론 아름답지만, 가을의 아름다움도 못지않다. 떠나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더 깨닫게 되는 것이 가을이란 존재다. 낙엽이 떠나고 나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영어로 나를 ‘me’라 쓰지만 동시에 미(美)와 발음이 같다. 나만의 색, 나만의 아름다움을 만나야 한다는 뜻일까? 그것은 곧 인문학적 질문이며 나이 들수록 인문학과 예술이 좋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별인사는 쉽지 않다. 안녕이라는 말에 서투르지 않으려면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야 하는 걸까.

흥사단 앞의 도산 안창호 동상

글·사진 손관승 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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