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대에 많은 ‘뜻밖 질병’ 경추질환 극복기

전유안 객원기자가 30대에 새로 걸음마를 배운 까닭

등록 : 2020-05-07 14:13 수정 : 2020-05-0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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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뒷목 ‘작은 불편함’이 시작

정형외과의 침, 고주파에도 통증 지속

“스트레스로 인해 젊은층에 확산” 확인

걸음마 훈련 등 본격 재활치료로 치유

경추질환에 시달린 뒤 걸음법을 바꿨다. 몸에 힘을 ‘빼는’ 것. 발바닥 전체가 ‘자연스레’ 대지와 만나는 것. 새로 배운 ‘30대 걸음마’의 핵심이다.

“옳지! 바로 그 걸음이에요. 지금 좋았어요!” 재활운동처방사가 옆에서 ‘짝짝짝’ 박수를 쳤다. ‘걷는 방법’을 새로 배우는 중이었다. 지난 1일, ‘경추질환’에 시달린 지 6개월 차, 본격 재활치료에 들어간 지 3주 차로, 뒷목에서 퍼져나간 전신 통증을 붙잡은 기록적인 ‘첫날’이었다.

서른 넘어 걸음마를 배울 줄이야


30대 들어서 ‘걸음마’를 다시 배울 줄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돌아보면 지난해 11월 뒷목에 문득 느낀 ‘작은 불편함’이 시작이었다. 헬스장에서 스트레칭이나 기구 운동이 과했거나, 자다가 삐끗했지 싶었다. 원인이야 많았다. 한 달이 지나도 묵직하더니, 곧이어 고개를 돌릴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집 근처 한의원과 정형외과에 갔다. ‘경추염좌’에 ‘전형적인 거북목, 일자목 증상’이라며 주사와 침, 고주파, 소염진통제와 근육이완제 처방을 받았다.

하지만 목은 낫지 않고 어깨까지 굳었다. 두통이 왔다. 3월엔 통증이 무릎과 발바닥으로 번졌다. 부정기적인 통증을 염려하다보니 잠을 설쳤다. 병원을 전전하다가 정착한 통증치료·재활전문병원에서 정수리부터 발톱까지 엑스레이를 찍었다. 모든 연골 정상, 뼈의 위치도 다분히 정상. 다만 ‘경추 6·7번 디스크 탈출 기미’와 ‘원인 불명 통증’ 진단이 나왔다. ‘전신 근육 수축’이 통증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사 소견이 뒤따랐다.

마음이 거북해도 거북목이 된다고?

“본인은 몰라도, 근육이 온통 수축됐습니다. 이런 경우를 2030세대 젊은층에서 종종 봅니다. 환자분은 거북목으로 시작한 작은 뒷목 통증이 신호였죠. 스트레스를 낮추고 자세를 바꾸면 근육이 이완되고, 회복 경과가 빠를 겁니다. 먼저 마음을 편하게 하세요.”

‘마음의 거북함’이 경추를 비롯한 척추와 관절 마디마디, 근육과 신경계에 근본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단 뜻이다. 체외충격파 치료실에 누워 소금 뿌린 새우처럼 비명을 지르며, 여기 다시 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목이 아플 땐 격한 운동보다 공원 산책 등 슬렁슬렁한 운동이 좋다.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든다. 천천히 걸음에 집중해본다.

지난 한 해가 빠르게 스쳤다. 쌓인 피로를 격한 운동으로 풀겠다고 헬스장을 출입한 하루, 종종 잠을 줄여 책상에 앉은 하루, 시간 아낀다고 배달음식에 의지한 하루,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일을 처리해온 평범한 하루가 차곡차곡 적립돼 몸이 로봇처럼 굳었다니. 조금 억울한 측면도 있었다. 모름지기 ‘부지런함’은 동서고금 미덕 아닌가.

“미덕 아니죠.”

인정사정없이 충격파를 내 몸에 쏘고 있는 치료사가 말했다.

“잠을 많이 자고, 골고루 잘 먹고, 잘 쉬고, 피로 푼다고 기구·등산·자전거 같은 격한 근육 운동은 절대 하지 말고, 슬렁슬렁 다녀야 굳은 근육도 회복할 시간을 갖죠. 힘을 빼세요.”

2030세대가 더 취약해진 경추질환

주변에 토로했더니 이런 ‘거북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실제로 젊은층 ‘경추질환’ 환자가 급격히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2017)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근골격계 질환 등에서 20대 환자 증가율이 노인층을 제외하고 가장 높다. 2016년 20대 경추질환자는 15만8천 명으로 40대의 4배다. 전체적으로 50대 이상 척추·관절 질환 환자 수를 추월한 지 꽤 됐다.

전문가들은 2030세대 경추질환 증가 원인으로 ‘관절 퇴행’이 아니라 ‘생활습관’과 ‘스트레스’를 꼽는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기기 사용 연령이 낮아졌고, 앉아 있는 시간이 늘어난 현대사회다. 오랜 학업과 취업난도 한몫한다.

다행히 ‘생활습관 교정’으로 어느 정도 회복이 가능하다. 문득 경추에 찾아온 통증이 쉬이 낫지 않는다면, 걷는 법부터 쉬는 법까지, 적어도 지난 10년 치의 인생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이는 중증 디스크로 번져 수술대에 오르는 것보다 백배 나은 일이다.

‘초기 통증’을 대수롭게 여기면 안돼

너도나도 뒷목을 잡고 사는 시대, 어느덧 급작스레 찾아온 통증은 2030세대에게 별것 아닌 거로 치부되기 쉽다. 젊어서 질병을 입에 담는 건 어쩐지 불경스럽다. 하지만 우리 목을 지탱하는 경추 부위는 ‘가벼운 통증’도 간과하지 말라는 것이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하는 얘기다.

호전도 빨랐다. 초기 증상을 간과해 한 차례 호되게 앓았다가, 척추기립근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운동법을 바꾸고 생활습관에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으로 약과 주사 없이 빠르게 호전됐다.

1주 차에는 들쑥날쑥한 수면량을 7시간으로 고정했다. 스마트폰을 공중화장실 다녀온 신발로 보며, 침대에서 치웠다.

2주 차에는 배달음식 앱과 잠시 이별했다. 카페인을 줄이고 근육 이완에 좋다는 칼슘과 마그네슘을 챙겨 먹었다.

3주 차에는 걷는 법을 배웠다. 머리를 먼저 들이밀 것이 아니라 발 먼저 나가도록 했다. 발바닥이 골고루 대지와 닿았다.

무엇보다 ‘근육과 마음 이완’에 집중했다. 오늘 일은 내일 아침의 나를 믿고 미뤘다. 이 도시가 내게 줬던 ‘심장 박동’을 떠올렸다. 슬슬 몸이 물렁물렁해졌다. 통증도 물러났다. 5개월을 고생한 것치고는 상당히 싱거운(?) 회복이었다. 오히려 ‘통증의 정체’를 알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독자 중 목이 ‘거북’한 분들에게도 권한다. 목이 ‘거북’해지면, 어깨부터 활짝 펴고 마음 어떤 부분에 거리낌이 있는지 보시라. 이는 2030 거북이들을 위한 통증 탈출의 지름길일지 모른다.

글·사진 전유안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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