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의 LP 이야기

대역으로 스타덤, 신중현 사단 여가수들

김추자·김정미 (상)

등록 : 2018-08-02 14:43 수정 : 2018-08-0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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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자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 유행어 낳아

패티김 ‘펑크’ 놓치지 않고 기회 잡아

육감적인 춤사위와 창법은

‘솔 사이키 가요’라는 신조어 탄생시켜

김정미

한국 사이키델릭의 여제로 불려

71년 김추자 소주병 난자 사건으로


무대 못 오르자 대타 출연해 스타 돼

신중현의 실험적 음악의 구현자

김정미(왼쪽) 김추자 데뷔 시절 사진.

1970년대부터 신중현의 이름 석 자가 적힌 음반은 대중가요 엘피(LP)의 꽃이자 화두로서 굳건한 브랜드 파워를 지닌다. 수많은 명곡을 발표하며 한 시대를 풍미한 신중현, 박춘석, 길옥윤 같은 작곡가들은 ‘사단’급으로 스타 가수들을 ‘거느렸다’. 그중 ‘신중현 사단’은 하나의 관용어가 될 정도로 대표적이다.

오늘은 ‘신중현이 사랑했던 여가수들’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준비했다. 신중현에게 발탁돼 스타덤에 올랐던 가수는 수없이 많다. 신중현 사단의 전설적인 여가수인 김추자와 김정미의 다른 점과 공통점을 찾는 평행이론으로 첫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때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는 유행어가 돌았던 김추자는 신중현 사단 최고의 스타 가수라 해도 좋다. ‘제2의 김추자’라 불렸던 김정미는 뒤늦게 ‘한국 사이키델릭의 여제’로 재평가받았다. 대중가요사상 최고의 섹시 여가수로 평가된 김추자와 대중가요사상 가장 섹시한 음색의 여가수로 인정받은 김정미의 음반들은 가요 음반 수집가들에겐 하나같이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타고난 예체능 재능과 끼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활달한 성격의 김추자는 어릴 적부터 운동과 노래에 재능을 보였다. 춘천여고를 다니던 시절에는 강원도 기계체조 대표선수와 응원단장을 맡을 정도로 끼가 넘쳤다. 수학여행 때는 단독 리사이틀 무대가 마련될 만큼 노래 잘하기로 학교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춘천 향토제에 출전해 ‘수심가’를 불러 3위에 입상했던 그는 팝송은 물론이고 우리 가락에도 범상치 않은 재능을 보여주었다.

김추자보다 2년 늦게 서울에서 태어난 김정미도 춤과 노래에 타고난 재능을 보이며 주변의 귀염을 독차지했다. 활발한 성격의 장난꾸러기였던 김정미는 서울 정신여고에 입학하면서 한국 고전무용과 모던발레를 공부하며 예술대학 진학을 꿈꿨다. 그의 음악 취향은 독특했다. 또래 여고생의 인기를 끌었던 달콤한 포크송보다 외국의 진보적인 록밴드 음악을 즐겨 들었다.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넋을 잃었다고 한다.

서로 다른 신중현 사단 입단 과정

김추자, 김정미가 신중현 사단의 일원이 된 과정은 완전히 다르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신입생 김추자는 학교의 노래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은 뒤, 가수의 꿈을 품고 직접 신중현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당시 펄시스터즈의 빅 히트로 인기 작곡가로 떠오른 신중현의 사무실에는 가수 데뷔를 꿈꾸는 지망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거기 끼어 있던 김추자는 신중현에게 눈길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창을 소화할 만큼 탁월한 가창력을 지닌 김추자는 데뷔 음반에서, 신중현이 꿈꿨던 사이키델릭에 우리 가락을 접목한 실험적 사운드를 시도했고 대성공을 거뒀다.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스스로 찾아간 김추자와 달리, 김정미는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재능을 높이 샀던 친구들이 신중현 사무실로 이끌고 가 그 문턱을 넘었다. 여고 졸업반이었던 1971년 어느 날, 친구들은 ‘김정미 가수 만들기 작전’을 세운다. 본인에게는 비밀로 하고 신중현에게 연락해 오디션 약속을 대신 잡아냈다. 엉겁결에 친구들을 따라나선 김정미는 단 한 번에 신중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패티김 대역으로 스타덤에 오른 김추자

김추자의 초기 희귀 음반들.

1969년 민요 창법을 가미한 신중현의 창작곡들로 데뷔한 김추자는 육감적인 춤사위와 창법으로 ‘솔(soul) 사이키 가요’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화제를 모았다. 한 음반에서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나뭇잎이 떨어져서’ 이 3곡을 동시에 히트시키며 신인가수 김추자는 단숨에 가요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김추자가 스타덤에 확실히 오른 것은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69년 11월 동양방송(TBC) 새 주말드라마의 주제가 ‘님은 먼 곳에'(유호 작사·신중현 작곡)를 부르기로 예정되어 있던 패티김이 별안간 나타나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신중현은 유망주 김추자에게 대타로 노래할 기회를 준다. 이 노래는 빅 히트를 기록하며 김추자에게 이듬해 ‘MBC 10대 가수 청백전’ 신인가수상까지 안겨주었다.

김추자 대역으로 데뷔한 김정미

김정미의 초기 희귀 음반들.

육감적인 몸매와 섹시한 창법, 독특한 춤사위로 주목받은 김정미도 대타로 무대에 올라 한순간에 주목을 받았다는 점에서는 김추자와 닮은꼴이다. 1971년 서울시민회관에서 컴백 리사이틀을 앞둔 김추자는 저 유명했던 ‘소주병 난자 사건’으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긴박한 순간에 신중현은 다시 한번 임기응변의 능력을 발휘했다. 데뷔를 준비 중이었던 신인 가수 김정미를 과감하게 김추자 대역으로 무대에 올렸던 것.

창법과 춤사위가 김추자와 닮았던 김정미는 단숨에 ‘제2의 김추자’로 각종 주간지의 뜨거운 주목을 받았다. 탄력을 받은 김정미는 데뷔 음반 발표를 앞당기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신중현 사운드 2집으로 발매된 김정미의 데뷔 음반은 상태가 민트급이면 수백만원에 거래되는 희귀 음반이다.

여러모로 공통점 많은 김추자, 김정미

이처럼 김추자, 김정미는 우연하게 찾아온 대타 또는 대역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타덤에 오른 공통점이 있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선후배 사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1971년 발매된 김정미의 데뷔 음반은 2007년 박스 LP로 재발매됐다. 엄청난 반응을 얻었던 김추자의 데뷔 음반은 여러 곡을 히트시키는 상업적 성공으로 재발매를 거듭해, 다양한 버전의 LP가 있다. 그 음반은 2002년 CD에 이어 발매 50년 만에 오리지널 게이트 폴드 재킷으로 제작돼 관심을 끈다.

김추자와 김정미 데뷔 음반의 재발매는 시대를 선도했던 신중현의 실험적 음악성과 더불어 지금도 상업성까지 여전함을 증명하고 있다. (2부로 계속)

글·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ㅣ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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