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배운 기술로 일본보다 맛난 ‘대니시 빵’ 만들어”

10년 동안 밤새워 빵 만들어온 ‘황인상브레드’ 대표 황인상 파티시에

등록 : 2024-06-20 15:12 수정 : 2024-06-2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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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호주로 골프 유학 떠난 고교생

어머니 계신 일본서 ‘대니시 식빵’ 맛봐

‘쇼킹한 빵 맛’에 반해서 빵 기술 배워

명문 빵집 보로니야서 20년 근무 성‘ 장’

2015년 한국 와서 ‘대니시 바람’ 일으켜

일본업계, 야간임금 탓 엄두 못 내지만

한국선 밤새 빵 만들어 ‘신선한 맛’ 지켜

“직영 빵집 열어 좋은 빵 더 많이 알릴 것”


대니시 식빵의 달인 황인상 파티시에가 지난 14일 마포구 공덕동 ‘황인상브레드’에서 자신이 만든 대니시 식빵을 들어보이고 있다. 그는 일본인도 맛보지 못한 대니시 식빵 맛을 한국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해 지난 10년 동안 매일 밤을 새워 빵을 만들고 있다.

“반죽을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대니시(덴마크식) 식빵의 맛이 어떨지 알게 돼요. 매번 반죽을 완성할 때마다 아기가 태어나는 거랑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얘는 좀 까칠하겠네, 얘는 정말 예쁘게 잘 나왔구나….”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황인상브레드’ 대표 황인상(52) 파티시에는 매일 밤 9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6시까지 홀로 빵을 만든다. ‘밤새워 빵을 만드는 것’은 2015년 일본에서 돌아온 뒤 10년 가까이 변함없이 지켜온 황 파티시에 ‘자신과의 약속’이다. 그 약속은 ‘일본 빵보다 맛있는 빵을 한국 사람들이 맛볼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대니시 명가 ‘교토 기온 보로니야’에서 빵 기술을 배우고 30년 가까이 빵을 만들어온 그가 밤을 새우면서 만들고자 하는 ‘일본보다 맛있는 빵’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황 파티시에가 일본에서 대니시 식빵을 처음 접한 것은 1996년이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로 골프 유학을 갔던 그가 당시 어머니가 살던 일본 교토에 들렀던 때였다.

“당시 일본에서 굉장히 핫한 빵이라고 해서 먹었는데, 그 맛이 진짜 ‘쇼킹’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식빵이 싼 빵으로는 여겨지던 시절이었는데, 대니시 식빵은 빵의 결도 살아 있고 풍미도 좋았습니다.”

그 빵이 교토 기온 지역에 있는 빵집 ‘보로니야’의 대니시 식빵이었다. 황 파티시에는 “일본은 유럽 빵이 들어와 아시아로 퍼져가는 통로 구실을 했다”며 “이에 따라 오랜 역사와 빵 맛을 간직한 빵집이 많다”고 설명했다. 보로니야도 1979년 대니시 식빵을 선보인 이후 ‘전설의 빵’이라 불렸던 이 빵의 인기에 힘입어 현재 일본 전역에 200여 개의 분점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때 마침 황 파티시에의 일본 친척 중 한 명이 보로니야와 한국 진출 사업 계획을 추진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온 황 파티시에에게 보로니야에서 빵 기술을 배울 것을 권했다. 황 파티시에는 보로니야의 한국 진출 때 한국으로 돌아오고픈 욕심과 함께 대니시 식빵의 성공 가능성을 믿고 골프 유학을 정리한 뒤 그 제안에 응했다.

“1년 동안 빵 만드는 법을 배웠는데 처음 얼마 동안은 하루에 거의 2시간 정도밖에 자지 못했습니다. 일본 파티시에들이 빵 만드는 것을 지켜보려 하면, ‘저기 가서 저것 좀 해놔’ 등 계속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예상되는 지시사항을 모두 끝낸 뒤 밤늦게 퇴근하는 모습을 계속 보이자 그제야 빵 만드는 기술을 제대로 전수해주기 시작했습니다.”

황 파티시에는 또 이 기간 거의 매일 대니시 식빵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날 반죽 상황과 빵 맛을 비교하기 위해서다. “빵 맛을 보기 위해 완성 단계의 빵을 일부러 손으로 눌러서 판매하기 어렵게 만든 뒤 그 빵을 먹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후 1997~2015년 ‘일본 나고야 지역 보로니야 총괄 파티시에’ ‘교토 기온 보로니야 파티시에’로 활동하는 등 일본에서 대니시 식빵 전문가로 성장해나갔다. 하지만 일본 생활 기간에 황 파티시에가 늘 아쉬워했던 것이 하나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숙성된 대니시 식빵 맛’만을 즐길 뿐 ‘신선한 대니시 식빵 맛’은 모른다는 점이었다. 황 파티시에에 따르면, 대니시 식빵은 만든 지 2시간 정도에 가장 신선한 맛을 낸다. 식빵 내에 많은 수분이 빵의 촉촉함을 더한다. 그러나 하루 정도가 지나면 빵에 들어간 고메 버터(발효 버터) 등에 의해 숙성된 맛을 보이게 된다.

문제는 대니시 식빵을 만드는 데 10시간 정도가 걸린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오전 9시에 파티시에가 출근해서 빵을 만들면 퇴근 무렵에야 완성된다. 판매는 자연히 다음날에 이루어진다. 일본 사람들이 ‘신선한 대니시 식빵’을 못 먹는 이유다.

물론 밤을 새워 빵을 만들면 문제는 해결된다. 이렇게 하면 아침에는 ‘신선한 식빵’을, 오후에는 ‘숙성된 식빵’을 팔 수 있다. 하지만 야간 근무에 따른 높은 인건비가 문제였다. 일본의 대니시 식빵집들은 높은 비용 때문에 밤을 새워 빵을 만드는 것을 그 누구도 감히 시행하지 못했다.

황 파티시에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꼭 ‘신선한 식빵’과 ‘숙성한 식빵’을 모두 선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다가, 드디어 2015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귀국과 함께 국내에 ‘대니시 식빵’ 열풍을 몰고 왔다. 2015년에는 식빵으로 유명한 서초구 서래마을의 ‘오뗄두스’에 고급 대니시 식빵인 깁펠식빵을 론칭하고, 2016년에는 용산구 이촌동에 있는 빵집 ‘교토마블’에도 대니시 식빵을 론칭했다. 그사이 <에스비에스>(SBS) ‘생활의 달인’ 519회(2016년 4월 방영)와 541회(2016년 9월 방영)에 ‘대니시 식빵 달인’으로 두 차례나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황 파티시에는 2018년 공덕역 근처에 현재의 ‘황인상브레드’를 오픈했다.

“30년 가까이 대니시 식빵 하나만을 만들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빵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기계에서 찍어내는 게 아니니까 계절마다 조금씩 그 맛의 차이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매일 먹어봄으로써 최대한 좋은 맛을 찾으려 했는데, 이제는 손맛으로 식빵의 맛을 미리 짐작해봅니다.”

이에 따라 그는 반죽 과정에서 조금 ‘까칠한 녀석’은 버터와 밀가루 양을 다시 조절하거나 숙성을 더 시키면서 그 까칠함을 없애주는 등 가장 맛있는 빵 맛을 찾기 위해 여전히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매일매일을 보내면서 빵의 고향이라는 일본에서도 먹어보지 못한 빵 맛을 한국인에게 선사하기 위해 시작한 황 파티시에의 야간작업이 어느새 10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맛난 빵을 고객에게 선사하겠다는 뜻은 좋지만 계속된 야간작업에 몸은 괜찮을까?

“사실 빵 만드는 게 엄청난 ‘노가다’예요. 저희 빵 하나가 1㎏인데, 빵 8개에 빵틀과 철판 받침 등까지 고려하면 보통 20㎏이 넘습니다. 그렇지만 30년을 빵을 만들면서 힘을 많이 써야 할 부분과 조금 덜 써도 되는 부분을 몸이 알아서 반응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은 건강 걱정 없이 맛있는 빵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다 잠든 긴 밤 동안 빵 맛만을 생각하는 그의 마음이 어쩌면 황인상브레드의 빵을 맛있게 만드는 가장 좋은 재료일지도 모른다.

황 파티시에는 “앞으로 직영 빵집을 열어 신선한 대니시 식빵 맛을 더 많은 한국 사람이 알게 하고 싶다”며 밝게 웃었다.

황인상 대표가 ‘황인상브레드’ 실내에 앉아 있다. 황 대표의 옆에는 일본 교토 기온 보로니야 론칭 등 그의 파티시에 경력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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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겹 대니시 식빵

반죽에서 완성까지

① 반죽과 저온숙성: 세 종류의 밀가루와 고메 버터 등을 반죽기로 잘 반죽한 뒤 소분해 영하 20도의 저온 숙성기(사진 뒤쪽)에 1시간 정도 넣는다. 얼지는 않았지만 딱딱해진 반죽을 롤링머신(사진 앞쪽)에 넣고 여러 차례 누른다.

② 64겹 브레드: 황인상브레드에서 자랑하는 ‘프리미엄 64겹 대니시 브레드’는 여러 차례 차곡차곡 반죽을 누르는 성실한 마음에서 시작한다

③ 성형: 64겹으로 만든 반죽은 이제 빵의 모양을 갖추게 된다. 황인상 파티시에는 세 겹으로 된 반죽을 이용해 꽉 찬 식빵을 만든다.

④ 빵틀: 성형을 마친 반죽은 빵틀에 들어간다. 틀에 들어간 반죽은 2시간 정도 숙성을 거치면서 오븐에 들어갈 시간을 기다린다.

⑤ 오븐: 황인상브레드에 있는 4개의 오븐에는 각각 16개의 빵틀이 들어간다. 빵틀이 다 들어가면 약 1시간 동안 120도의 온도로 빵을 굽는다.

⑥ 갓 나온 빵: 오븐에서 갓 나온 빵은 마치 젤과 같이 말랑말랑하다. 이후 겉은 바삭하게 되지만 식빵 안은 여전히 수분으로 촉촉하다.

⑦ 건조: 황인상 파티시에가 대니시 식빵이 잘 건조되도록 건조대 위에 식빵을 올려놓고 있다.

⑧ 완성: 대니시 식빵이 일정한 온도까지 내려가면 길쭉한 빵을 둘로 나누어 포장용기에 담는다.


글 김보근 선임기자

사진 정용일 선임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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