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엄마의 베를린살이

이웃집에서 보내온 빵 ‘크리스트슈톨렌’

등록 : 2016-12-29 20:58

크게 작게

식탁 위 노랗게 까불대는 촛불 밑에 오늘은 케이크 한 조각이 놓였다. ‘크리스트슈톨렌’(사진)이다. 크리스트슈톨렌은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때 먹는 대표적인 ‘쿠흔’이다.

한국에 떡이 있다면 독일에는 쿠흔이 있다. 쿠흔을 한국말로 번역하자니 이런저런 단어들이 떠오르지만 그중에서도 ‘케이크’ 가 가장 무난한 말이 아닌가 싶다. 물론 이마저도 외래어이지만 말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문화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쿠흔은 재료나 만드는 방법은 달라도 음식의 기능 면에서는 떡과 상당히 유사하다. 한국 문화에서 떡이 그렇듯 독일 문화에서 쿠흔은 단지 간식거리가 아니다. 의미 있는 날에 최고의 격식을 갖추는 음식일 뿐만 아니라 기쁨과 풍요의 상징이며 나눔의 매개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료도 그 시기에 나는 가장 좋은 것을 골라 듬뿍 담아서 정성스럽게 만들어낸다는 점 또한 떡과 다르지 않다.

‘슈톨렌’은 쿠흔의 한 종류로 재료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고, 꼭 크리스마스에만 먹는다고 볼 수도 없지만 그중에서 크리스트슈톨렌이란 종류는 딱 이맘때만 먹을 수 있다. 생일잔치나 다른 명절 때는 쓰이지 않다가 유독 크리스마스 때 많은 가정에서 크리스트슈톨렌을 굽기 때문이다. 크리스트슈톨렌의 모습은 아기 예수를 형상화한 것이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모른다 해도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듯한 겉모습이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리는 쿠흔이다.

안흥찐빵이나 천안의 호두과자처럼 크리스트슈톨렌 앞에는 항상 드레스덴이 붙는다. 슈톨렌이라고 하면 드레스덴을 떠올릴 정도이고 가정에서 구울 때도 대부분 드레스덴 지역의 전통 방법을 따른다. 그 방법을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만들기 하루 전에 건포도 등 말린 과일을 따뜻한 럼주에 불린다. 다음 날 미지근한 우유에 누룩을 풀어 따뜻한 곳에서 잘 발효시킨 뒤 밀가루와 버터·설탕·소금 등을 넣고 반죽한다. 20분 정도 잘 치댄 다음 준비해놓은 과일껍질절임, 견과류 등을 섞는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발효 과정을 거친다. 완성된 반죽은 형태를 잡아 180도에서 한 시간쯤 굽는다.

과연 누구나 쉽게 만들 만한 케이크는 아니다. 게다가 이것이 다가 아니다. 완성된 슈톨렌은 버터와 설탕 파우더로 표면을 마감한 후 잘 포장해 14일 이상 숙성시켜야 비로소 제맛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음식은 정성이라고 하는 말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음식을 나누며 마음을 나누나 보다. 오늘 이웃집에서 크리스트슈톨렌 몇 조각을 보내왔다. 말린 과일과 견과류가 촘촘히 들어박힌 모습이 풍요롭다. “보시다시피 우리 집은 무탈합니다. 이웃도 안녕하시죠? 메리 크리스마스!” 이런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 덕분에 우리 집 식탁 위에도 조촐한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여기 또 한 해가 저문다. 올해도 우리처럼 타향에서 새해를 맞는 많은 분들에게 슈톨렌의 이 쿰쿰한 누룩 향기를 전하고 싶다.


글 사진 이재인 재독 프리랜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