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노인을 위한 카페는 있다”…성공 요인은 ‘여유’

서울시, 은퇴 뒤에도 경험·전문성 살리는 ‘50+보람일자리’ 2천여 개 조성

등록 : 2018-12-13 15:43 수정 : 2018-12-14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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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 실버카페 어르신일자리지원단

초보 16명에게 ‘연륜 노하우’ 전수

어르신들 차 한잔 대화로 단골돼

전직 호텔리어, 지하철택배 접수

살뜰한 인사 곁들여 “감동받아”

지난 11월30일 오후 중랑구 수림대공원에 있는 실버카페 ‘장미정원’에서 서울시 어르신일자리지원단 강희숙(왼쪽부터)씨가 중랑구 실버 바리스타 김용채·이순익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 아래 카드단말기(POS) 옆에 어르신일자리지원단 박남철씨가 정리한 작동법이 붙어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새로 생긴 카페에 예쁜 아가씨는 없고, 직원들 모두 나이는 든 거 같고…. 오시는 손님들이 특이하다 생각하는 것 같아서 우리가 설명을 잘했죠. 노인이 일하는 실버카페입니다.”(어르신일자리지원단 강희숙씨)

지난 4월 중랑구 수림대공원에 카페 ‘장미정원’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중랑구가 어르신에게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운영하는 실버카페다. 2018년 11월 옹기테마공원에 생긴 1호점 ‘옹기종기’, 올해 2월 면목동에 생긴 2호점 ‘나무그늘아래’에 이은 3호점이다. 실버 바리스타 교육과정을 마친 어르신 16명이 일한다. 이들 초보 실버 바리스타 뒤에는 어르신일자리지원단의 노련한 바리스타 3명이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서울시는 영업·마케팅 등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만 50~67살인 50+세대를 어르신일자리지원단으로 뽑아 어르신일자리사업단에 파견해 지원한다.


2년 전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동주민센터 카페 등에서 봉사활동을 해온 어르신일자리지원단 강희숙(60)씨는 “실버카페에서 일하시는 분들 대부분 커피 내리는 걸 학원에서만 배웠지 실전은 처음이라 ‘재료를 어떤 식으로 써야 좋다’는 식으로 저희가 가진 노하우를 가르쳐드렸는데, 지금은 저희가 없어도 잘할 정도로 실력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카페를 직접 운영했던 어르신일자리지원단 박남철(65)씨는 “여기 아메리카노 가격이 1500원으로 저렴하지만, 원두를 좋은 걸 써서 4천~5천원짜리 커피 못지않다”고 했다.

장미정원 카페는 주변 직장인이 많이 찾아오는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어르신 손님이 대부분이다. 처음에는 좌석까지 주문받으러 오지 않고, 커피도 갖다주지 않는다며 화를 내는 어르신도 있었다. ‘왜 젊은 직원이 없냐’며 트집 잡기도 했지만, 지금은 ‘젊은이들보다 대화가 더 잘된다’며 좋아한다. 강씨는 “집에서는 대화할 상대가 없는 어르신들이 여기 오셔서 차 한잔하면서 대화를 나눈 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나가실 때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어르신 손님들을 단골로 사로잡은 데에는 연륜에서 나온 여유도 한몫했다. “에스프레소 기계로 커피를 한번 뽑으면 2샷이 나오는데, 1샷만 나가거든요. 여분은 갖고 있다가 커피가 부족하다 싶은 손님에게 더 드리는 겁니다.”(박남철씨) “오래 앉아 계셔서 차가 빈 손님께 ‘따뜻한 물 더 드릴까요’ 하면 엄청 좋아하시죠.”(강희숙씨)

수림대공원은 장미정원과 5.15㎞ 장미터널이 이어져 있어 산책이나 운동하러 오는 주민이 많다. 몸이 불편해서 전동 휠체어를 타고 산책 나온 어르신들에게는 카페 앞 산책로까지 차를 갖다 드리기도 한다. 실버 바리스타 김용채(63)씨는 “어르신들과 세상 얘기를 나누다보니 ‘친절하게 잘한다’는 소문이 나면서 단골이 많이 늘었다”며 “저희와 나눠 먹겠다고 과자나 과일을 가져오시는 단골도 있다”고 했다. 실버 바리스타 이순익(62)씨는 “‘동네에 이런 데가 없었는데 마을 사랑방 같은 카페가 생겨서 고맙다’는 주민도 많다”고 한다.

처음에는 월요일마다 카페 문을 닫았지만 손님들의 요구로 날마다 운영한다. 문을 열기 전부터 기다리는 손님들이 보기 안쓰러워 직원들이 스스로 20분 일찍 나와서 문을 연다. 서울장미축제가 열린 지난 5월18~20일 3일 동안은 하루 매출이 330만원까지 올랐다. 이씨는 “1500원짜리 커피를 그렇게 팔려면 얼마나 바빴겠냐. 정신없는 우리 뒤에서 어르신일자리지원단 분들이 부족한 재료를 채워주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다 해줘서 가능했다”고 한다. 이제 커피나 차를 만드는 건 익숙해졌지만 카드단말기(POS·포스) 조작은 여전히 숙제다. 특히 ‘OO페이’ 등 새로운 결제 수단을 내는 손님이 있으면 어르신일자리지원단의 도움이 필요하다. 강씨는 “포스 교육을 오래 했지만, 날마다 근무해도 잊어버릴 나이의 16분이 번갈아 일하다보니까 아직도 실수가 나온다”고 한다. 박씨는 “아침에 시작할 때와 밤에 마감할 때가 다른데 그걸 자꾸 잊어버려서 포스 작동법을 정리한 종이를 단말기 옆에 붙여놨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지금도 주문을 변경하거나 새로운 결제 수단을 내는 손님이 있으면 한번씩 실수하기 때문에 전담해서 알려드린다.”

서울시는 50+세대가 은퇴 뒤에도 사회적 경험과 전문성을 살릴 수 있도록 학교, 마을, 복지시설 등에서 사회공헌 활동을 하도록 어르신일자리지원단과 같은 ‘50+보람일자리’를 운영하고 있다. 올 한 해 동안 사회 서비스형, 마을 지원형, 세대 통합형, 50+ 당사자 지원형, 사회적 경제 지원형 등 5가지 유형의 31개 사업에 걸쳐 2236개의 50+보람일자리를 지원했다. 2015년 6개 사업 442명으로 시작해 2016년 13개 사업 719명, 지난해 23개 사업 2022명 등 해마다 사업 종류와 일자리 수를 크게 늘리고 있다. 어르신일자리지원단을 운영하는 서울시50플러스재단 김영대 대표이사는 “풍부한 경험과 역량을 갖춘 50+세대가 앙코르 커리어와 사회공헌 활동으로 더욱 활발히 사회공유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어르신일자리지원단 방선숙(67)씨는 국내 5성급 호텔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한 전직 호텔리어다. 1973년 초부터 7년 동안 케이티(KT)의 모체인 한국통신 국제전신전화국에서 국제전화 연결 업무를 하다 1979년 신라호텔이 현재의 건물을 개관할 때 입사해 줄곧 예약 업무를 담당했다. 지금은 마포시니어클럽이 운영하는 지하철택배 ‘젠틀맨택배’에서 전화로 주문받고 어르신 택배 기사에게 업무를 나누는 일을 한다.

“남자 어르신들은 꽃바구니보다 서류 배달을 선호하시죠. 가끔 자기가 졸업한 대학에는 배정하지 말아달라는 분이 계신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배정하면서 ‘오래간만에 교정 잔디밭에서 하늘 한번 보세요’라는 문자를 드렸더니 ‘방 선생님 덕분에 좋은 시간 보냈다’는 감사 인사를 받았어요.” 배달 장소를 알려줄 때는 지하철역에서 버스를 환승하는 경로까지 표시한 지도도 함께 보내준다.

폭염이 극심했던 지난여름에는 가로수가 무성한 길을 표시한 위성지도(스카이뷰)까지 지도 2장과 함께 ‘100m 더 돌더라도 시원한 그늘 밑으로 가세요’라고 적어보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오늘은 미세먼지가 많으니까 마스크 꼭 쓰세요’처럼 그날 날씨에 맞는 인사도 함께 보내드리면 어르신들이 ‘감동받았다’며 나중에 제가 실수할 때 양해해주세요.”

50+보람일자리 참여자는 서울시 생활임금 시간당 9211원을 적용해 매달 57시간 기준 월 52만5천원의 활동비를 받는다. 어르신일자리지원단 강희숙씨에게 50+보람일자리는 평생 첫 직장이다. “10년 넘게 봉사만 하다가 일자리가 생기니까 정말 좋아요. 남들에겐 얼마 안되는 돈이겠지만 매달 통장에 딱딱 들어오니까 신나게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진 재능도 기부하면서 큰 행복을 느낍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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