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다육식물 키우며 이웃 만들고 기부도 해요”

금천구 시흥2동 식물키우기모임 ‘탑골두레박’의 최옥석씨

등록 : 2018-05-2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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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지적 장애 50~60대 자조모임

동주민센터 복지플래너의 제안

인조화단 가꾸며 사회적 관계망 키워

물 주며 하루 시작 “다육이, 나의 가족”

지난 18일, 금천구 시흥2동 금천종합복지타운 안 시흥2동주민센터 앞 화단에서 중·장년 독거남 자조모임 ‘탑골두레박‘ 회원 최옥석씨가 다육식물을 뽑아 보여주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금천구 시흥2동에는 선진형 복지타운이 자리잡고 있다. 약 4천㎡(약 1200평) 넓이의 금천종합복지타운 안에는 주민센터(시흥2동), 도서관, 요양원, 어린이집이 있다. 주민 쉼터도 있다. 주민센터와 도서관 앞 작은 광장의 인조화단 3개엔 알록달록 앙증맞은 다육식물 60여 포기가 있다. 다육식물은 건조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잎이나 줄기, 뿌리 등에 물과 영양분을 담고 있다.

비가 많이 온 다음 날인 지난 18일 중년 남성 3명이 다육식물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시흥2동 자조모임 ‘탑골두레박’ 회원들이다. 먼지 제거기(더스트 블로우)로 다육식물에 묻은 빗물을 없애고 색이 변한 잎은 핀셋으로 살짝 떼낸다. 마치 갓난아기를 다루듯 손길은 조심스럽다. 식물을 보는 눈길이 부드럽다. “얘는 웅동자인데 곰 발바닥같이 생겨 별명이 ‘곰 발바닥’이에요. 다육이(다육식물)는 잎이 예쁘고 몸 자체가 꽃이죠. 전 탐스럽고 예쁘게 생긴 이 아메치스를 가장 좋아해요.” 최옥석(59)씨가 회원들과 함께 심은 다육식물 자랑부터 한다.

탑골두레박 모임은 지난해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의 복지플래너가 제안해 시작됐다. 지체장애나 지적장애를 갖고 홀로 사는 지역의 50~60대들이 이웃과 사회적 관계를 맺도록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시흥2동의 옛 지명인 ‘탑골’과 서로 돕는 공동체조직인 ‘두레’를 붙여 이름을 지었다. 함께할 수 있는 활동거리로 최씨가 몇 년 전부터 키우고 있는 다육식물을 심어보는 데 의견을 모았다. 주민들이 오가는 동주민센터 앞에 인조화단을 만들어 활동하기로 했다.


태어날 때부터 하지 장애로 왼쪽 다리를 조금 절었던 최씨는 교통사고 뒤 후유증으로 양쪽 다리를 모두 절게 되었다.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며 가족들은 그의 곁을 떠나버렸다. 2007년 금천구 시흥2동 임대주택으로 터전을 옮겼다. 2011년 고향에 계신 노모마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버려 더 외롭고 쓸쓸했다. 아픈 몸으로 고철과 폐지를 주워 힘겹게 살던 그는 우연히 다육식물과 인연을 맺었다. 2013년 무렵이었다. 인터넷서 본 다육식물 모습에 쏙 빨려들어갔다고 한다. “눈이 확 뜨이고, 예쁜 모습에 기분이 좋아져 다육이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어요.”

최씨는 하루를 다육식물과 인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집 베란다엔 다육식물 80포기가 자라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다육식물 돌보는 일로 오전을 보낸다. “다육이와 얘기하며 손으로 어루만져줘요. 관심을 가져주면 생기가 돌고 잎도 파릇파릇하니 잘 자라죠. 이파리를 눈으로 살펴, 물 달라고 하는지도 살펴요. 나에게는 가족이죠.”

처음 7명으로 시작한 자조모임 회원은 지금 4명이 되었다. 몸이 너무 불편하거나 식물 키우기가 맞지 않은 회원들은 나오지 않는다. 공식적으로 격주에 한 번씩 모이지만 수시로 만나 작업한다. 모종을 심고, 잎을 따주고, 세균이 생기지 않게 물기를 없애준다. 지난해엔 한여름 땡볕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을 했단다. “생명이 커가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져 힘든 것도 잊어요.” 회원 마경진(54)씨와 김종덕(60)씨가 최옥석씨 곁에서 말을 거든다. 다육식물 얘기를 하자 그늘진 표정이 걷히고 옅은 웃음이 번졌다.

자조모임 활동을 지원하는 전경아·홍은희 주무관도 그간의 변화를 전한다. “처음엔 인조화단 하나로 시작했는데 오가는 주민들의 반응이 좋아 3개까지 늘렸어요. 자조모임 회원들이 작업하고 있으면 주민들이 말을 걸어요. 회원들의 사회관계망이 넓어진 것 같아요.”

회원들은 지난겨울을 앞두고 다육식물을 어떻게 보관할지 의논했다. 화분에 담아 지역 장터에서 팔기로 뜻을 모았다. 두 번의 장터에서 회원들은 다육식물 설명해주기, 포장하기, 손님 응대하기로 역할을 나눠 손발을 맞췄다. 장터 판매에서 생긴 수익금 26만원을 어려운 이웃돕기에 성금으로 전했다. 최옥석씨는 늘 도움만 받다가 다른 사람을 도와주어서 뿌듯했다고 한다. 얼마 전엔 홀몸 어르신 두 분과 말기 암 환자 한 분의 집을 찾아 화분을 선물했다. 최씨는 “다음 어버이날엔 동네 어르신들에게 다육이 화분을 꼭 선물해주고 싶다”며 웃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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