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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프라이탁’을 꿈꾸는 새활용 창업가들

컨티뉴·큐클리프·리브리스 폐차·우산천·폐자전거 새활용

등록 : 2017-10-1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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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댄자동차의 강동현 과장이 경기도 고양시의 자동차 폐기물 저장창고에서 새활용 가방을 들어보이고 있다. 모어댄자동차는 폐자동차시트 등을 새활용해 ‘컨티뉴’라는 상표로 가방 등을 만든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프라이탁’을 아시나요?

스위스의 가방 상표 프라이탁(freitag)은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지마켓, 11번가, 옥션 등에서 주문할 수 있고, 이태원과 홍대 앞, 청담동 등엔 매장도 있다. 전 세계에서 한 해에 700억원어치가 팔린다. 초콜릿, 맥가이버 칼(Army Knife), 지그(SIGG) 물병처럼 스위스를 여행할 때 꼭 사야 하는 물품으로 꼽히기도 한다.

마르쿠스 프라이탁, 다니엘 프라이탁 형제가 1993년 설립한 이 업체는 독특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형제는 비가 와도 젖지 않는 튼튼한 가방이 없을까 고민하다 낡은 트럭용 방수천막과 자동차 안전벨트 등 버려지는 소재들을 택했다. 폐품으로 만들어진 가방은 모양새가 모두 제각각이었고, ‘세상에 하나뿐인 가방’이라는 호감을 얻었다. 내구성과 디자인의 독창성으로 20~30대 소비자의 주목을 받으며 가방 하나 가격이 수십만원대에 이르는 ‘명품’ 대접을 받고 있다.

프라이탁의 성공은 다른 한편으로 ‘업사이클’의 가능성을 피부로 느끼게 했다. 버려지는 물건을 다시 쓰는 ‘재활용’(리사이클)을 넘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새활용’(업사이클)의 가치를 깨닫게 한 것이다. 친환경에다 자원 재생, 그리고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이라는 ‘1석3조’ 효과다.

우리 주위엔 ‘한국판 프라이탁’이라 할 만한 새활용 제품이 없을까?


폐차동차 부품 새활용 브랜드 ‘컨티뉴’

모어댄자동차 최이현(36) 대표는 영국에서 7년 동안 유학 생활을 하며 창업을 꿈꾸기 시작했다. 자동차 기업의 지속가능한 사회적 책임 활동을 주제로 삼아 논문을 쓰면서 구체적 방안으로 폐기물 활용에 주목했다.

최 대표는 2015년 스타트업(신생혁신기업)을 차리고 폐자동차의 시트, 안전벨트, 에어백 등을 이용한 새활용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자동차폐차업협회의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폐기되는 차량이 75만대에 이른다”며 “재활용이 어려운 15%가량의 비금속류를 제외하고 자동차의 85%는 재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폐기물 처리업체와 자동차 시트 공장 등에서 폐기물을 받아 ‘컨티뉴’(CONTINEW)라는 상표로 가방과 지갑, 신발, 가죽 액세서리 등을 만든다. 자동차 가죽은 일반 가죽보다 쉽게 오염되지 않으며 습기와 고온, 마찰에도 강하다고 한다. 컨티뉴는 ‘지속하다’(continue)와 ‘새롭다’(new)는 단어의 합성어로, 지속가능한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올들어 1~6월에 10t가량의 폐기물을 새활용했다.

모어댄은 경기 고양시에 단독 매장을 열었고, 교보문고와 카카오, 자체 쇼핑몰 등에서도 제품을 팔고 있다. 외국에서도 관심이 높아 미국 테슬라 자동차와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스트타업을 위한 미국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 ‘킥스타터’에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최 대표는 “최근 업사이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져 고맙고 힘이 난다”고 했다.

소각 직전 폐우산천 새활용 ‘큐클리프’

디자이너 우연정(31)씨는 2015년 말 아끼던 우산이 찢어졌다. 일본에 사는 지인이 선물한 것이라 그냥 버리기가 아까웠다.

우산의 천으로 파우치를 만들었더니 방수가 되고 쓸모도 많았다. 지난해 1월 동갑내기인 이윤호 대표와 ‘큐클리프’(cueclyp)라는 회사를 차리게 된 계기다.

큐클리프는 각 구청의 재활용선별장에서 소각을 앞둔 우산의 천을 분리해 제품 원단으로 쓴다. 이 원단으로 지갑, 가방, 필통, 파우치 등을 만들고 있다. 우씨는 “원단은 패턴과 색상이 다른데다, 세월의 흔적이 만들어낸 빈티지한 무늬까지 더해져 어느 하나 같은 디자인이 없다. 나만의 물건을 소유하게 되는 즐거움을 준다”고 말했다. 큐클리프는 인터넷 쇼핑몰은 물론이고 ‘숍인숍’ 형태로 홍대, 명동, 건대 등에서 제품을 팔고 있다. 대만 등 외국에도 제품이 소개됐다고 한다.

이윤호 대표는 “우산천 외에도 버려지는 가죽, 펼침막, 차양막 등으로 제품을 생산한다”며 “폐자원을 소생시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상표 이름 큐클리프도 업사이클(upcycle)의 단어를 재조합해 만들었다”고 밝혔다.

‘큐클리프’의 디자이너가 버려진 우산으로 기능성 파우치를 만들고 있다.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각 사 제공

폐자전거부품 새활용 ‘리브리스’

전구에 자전거 체인링(뒷바퀴에 체인을 통해 구동력을 전달해주는 부품)이 둘둘 감겨 있는 조명기구, 스프로킷(사슬 바퀴, 체인을 걸어서 동력을 전달하는 기어)에 분침과 시침이 달린 시계.

독특한 모양새를 가진 ‘리브리스’의 제품들이다. 폐자전거 부품을 활용해 만든 이 제품들은 2014년 말부터 장민수(30) 대표의 손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자전거를 좋아했던 장 대표는 주변에서 낡은 자전거가 많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폐자전거를 이용한디자인 소품 생산에 뛰어들었다. 리브리스(REBRIS)라는 이름도 영어 단어 ‘Re’(다시)와 ‘Debris’(쓰레기)를 합쳐서 만들었다. 쓰레기를 재탄생시킨다는 뜻이다.

장 대표는 폐자전거를 수거해 수리·재판매하는 사회적기업 ‘두 바퀴 희망자전거’로부터 폐부품을 조달받는다. 체인링과 스프로킷 등을 세척한 뒤 녹을 방지하는 작업을 하고 색깔도 입힌다. 이렇게 재탄생한 소재들을 이용해 시계, 조명, 거치대 등을 생산한다. 장 대표는 “올해 서울시가 방치 자전거 수거 목표를 2만대로 잡을 만큼 많은 자전거가 버려지고 있다”며 “기능적 소비보다는 가치를 중시하는 소비에 관심을 갖는 고객들이 늘고 있어 산업적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유팩 가공처리한 ‘밀키프로젝트’

일반 가정에서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쓰레기 가운데 하나인 우유팩. 김수민(36) 밀키프로젝트 대표는 동주민센터, 지역 유통업체 등에서 분리수거된 우유팩을 모아 카드지갑, 목걸이 형태의 카드 홀더 등으로 재탄생시킨다. 우유팩의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특수가공 필름으로 표면을 재가공한 뒤 100% 수작업으로 지갑 등을 만든다.

특이하게 밀키프로젝트는 2015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출발했다. 국내에서 시각디자인을 배우고 일본으로 건너가 대학원에서 마케팅을 전공한 뒤 신재생에너지 벤처기업에서 근무하던 김 대표의 눈에 마트의 우유팩이 들어온 것이다. “색상도 화려하고 종류도 다양해 지갑으로 만드니 인기가 좋았다.” 밀키프로젝트는 후쿠오카 인증기업이 됐고,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생산·판매를 시작했다. 호기심과 디자인의 신선함 때문인지 일본 우유팩 제품은 국내에서, 반대로 국내 우유팩 제품은 일본에서 잘 팔린다고 한다.

김 대표에겐 바람이 하나 있다. 일본에서처럼 장애인 시설과 협업해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는 “장애인들을 교육하고 생산 물량을 늘려 사회적 약자의 고용과 자립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밀키프로젝트’가 우유팩을 변신시킨 파우치와 동전지갑으로 조형물을 만들어 서울새활용플라자 1층 전시실에서 전시하고 있다.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각 사 제공

새활용플라자에 둥지

‘글라스본’은 유리병을 녹여 꽃병과 조형물 등 실생활에 쓸 수 있는 소품과 작품을 만든다. 김경래 기자 kkim@hani.co.kr, 각 사 제공

새활용 세계에 먼저 눈을 떴지만, 이들에게도 고민은 많다. 새활용이라는 가치만으로 소비자가 선뜻 지갑을 열까, 쓰레기를 소재로 바꾸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원 낭비가 생기지 않을까, 제품을 제대로 알리기도 전에 문을 닫게 되진 않을까, 수작업에 기초한 소량생산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까….

그래서 컨티뉴, 큐클리프, 리브리스, 밀키프로젝트는 한울타리에 모였다. 이들은 지난달 5일 문을 연 서울새활용플라자에 각각 둥지를 틀었다. 서울새활용플라자는 새활용의 ‘허브’를 만들기 위해 서울시가 세운 공간이다. 다른 새활용 업체와 예비창업자 28곳도 함께한다. 이곳에서 젊은이들은 고민을 나누고 해법을 찾아나갈 예정이다.

강병길 서울새활용플라자 총감독(숙명여대 산업디자인과 교수)은 “우리나라는 새활용 시장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어 시장 규모를 연간 100억원이라고 추산만 할 정도로 초기 단계에 있다”며 “새활용플라자를 통해 새활용에 대한 인식과 관련 산업의 수준이 한 차원 높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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