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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 반포디에이치클래스트 아파트의 지난 8월 공사 현장. 한겨레 자료사진
‘지위 불안’이 만든 도시의 그늘
담장 안으로 숨어드는 사적 욕망
공공의 빈곤이 키운 상대적 박탈
시민 자부심 느끼는 공공이어야 알랭 드 보통은 책 ‘불안’에서 현대인을 괴롭히는 감정의 정체를 묻는다. 굶주림이 아니다. 전쟁도 아니다. 남들보다 뒤처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즉 ‘지위에 대한 불안'이다. 저자는 이 불안이 개인의 성격 탓만은 아니라고 본다. 사회가 무엇을 존중하고 무엇을 방치하느냐에 따라 불안의 크기도 달라진다. 공공의 공간이 대표적이다. 누구나 들어가 쉬고 배우고 즐기는 장소가 넉넉하고 품위 있는 사회에서는 사적 소유로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줄어든다. 반대로 공공이 초라해지면 사람들은 담장 안으로 물러난다. 더 큰 집, 더 비싼 단지, 더 배타적인 시설로 존엄을 사려 한다. 공공의 빈곤이 개인의 욕망을 키우고, 그 욕망이 다시 불안을 키운다. 서울 강남의 재건축 현장이 지금 그 장면을 보여준다.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반포디에이치클래스트'다. 시공권을 따낸 현대건설은 조합에 연면적 2만3천 평 규모의 커뮤니티 시설을 제안했다. 실내 아이스링크와 워터파크, 50m 6레인 실내수영장, 볼링장, 암벽등반장까지 스포츠시설만 13가지다. 840석 오페라하우스와 히노키 노천탕도 들어간다. 아파트가 아니라 리조트다. 아니, 담장을 두른 작은 도시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 수주 경쟁 때문이다. 조합은 단지의 미래 가치를 증명할 설계를 요구하고, 시공사는 경쟁사보다 화려한 시설로 조합원의 표를 얻으려 한다. 호텔 리조트에나 있던 인피니티 풀은 이미 하이엔드 단지의 기본 사양이 됐다. 개포자이프레지던스에서 시작한 유행이 논현, 성수, 한남으로 번졌다. 화려함은 고스란히 가격이 된다. 반포디에이치클래스트의 3.3㎡당 공사비는 548만원에서 792만원으로 약 45% 뛰었다. 일반분양가는 3.3㎡당 1억원까지 거론된다. 유지 관리도 만만치 않다. 호텔식 조식 서비스를 도입한 래미안 원베일리는 비용 인상 문제로 1년 만에 운영 업체를 바꿨다. 화려한 시설은 짓는 날보다 유지하는 날들이 더 비싸다. 더 큰 문제는 공공기여다. 공공기여는 용적률 상향 같은 특례를 받는 대가로 도로·공원·공공시설을 지역사회에 내놓는 제도다. 개발이익을 나누자는 취지다. 그런데 기부채납한 카페와 도서관을 단지 안에서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최근에는 공공기여 시설마저 호화로워지면서 사유화 논란이 커졌다. 호화로운 공공시설은 결국 초고가 단지의 자산가치를 불리는 데 쓰인다. 공공에 내놓은 몫이 다시 담장 안의 몫이 된다. 담장 밖의 풍경은 정반대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 공공건축물 21만6823동 가운데 23.2%가 지은 지 30년을 넘겼다. 서울연구원은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관리하는 준공 30년 이상 장기공공임대주택이 2만5천 호에서 2029년 6만 호로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불과 몇 년 사이 2.4배다. 단지 안에는 아이스링크가 들어서는데, 단지 밖 체육관과 도서관과 임대주택은 낡은 채로 버틴다. 격차는 숫자에서 끝나지 않고 마음으로 옮겨간다. 동네 수영장이 낡고 비좁으면 단지 안 수영장이 부러워진다. 구립 도서관이 초라하면 단지 안 라운지가 커 보인다. 결국 좋은 삶에 닿는 길은 하나만 남는다. 비싼 아파트 입주권이다. 모두가 같은 문 앞에 줄을 선다. 집값이 오르고,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의 불안도 함께 오른다. 보통이 말한 지위 불안이 아파트 단지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다. 담장 안이라고 평온하지도 않다. 아이스링크를 갖춘 단지가 들어서면 다음 단지는 더 큰 무언가를 내건다. 오늘의 최고급은 내일의 기본 사양이 된다. 인피니티 풀이 그랬다. 비교의 사다리에는 끝이 없다. 반포 입주민도 언젠가 더 새롭고 더 화려한 단지를 올려다보게 된다. 보통이 짚었듯 지위 불안은 남과의 비교에서 자란다. 사적 소유로 불안을 달래려는 시도가 늘 실패하는 이유다. 불안을 줄이는 힘은 더 높은 담장이 아니라, 담장 없이도 함께 누리는 공공에서 나온다. 물론 입주민이 자기 돈으로 좋은 시설을 누리겠다는 선택을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방향이다. 사회의 돈과 관심이 담장 안으로만 흐르고, 공공이 기댈 몫까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해법이 담장 밖에 있는 이유다. 첫째, 공공기여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기부채납 시설은 주민 누구나 실제로 이용하도록 운영 기준을 정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둘째, 재건축 개발이익 일부가 단지 밖 낡은 체육관과 도서관, 공공임대주택을 고치는 데 쓰이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 셋째, 공공시설의 수준 자체를 높여야 한다. 공공은 최소한의 복지가 아니라 시민의 자부심이어야 한다. 좋은 공공은 사람을 덜 불안하게 만든다. 아이스링크를 가진 아파트가 아니라 누구나 스케이트를 타는 도시가 필요하다. 서울은 불안에 싸여 있다. 사람들은 더 큰 욕망을 키우고 있다.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궁전 같은 아파트가 아니라, 궁전 같은 공공이 필요한 이유다.
담장 안으로 숨어드는 사적 욕망
공공의 빈곤이 키운 상대적 박탈
시민 자부심 느끼는 공공이어야 알랭 드 보통은 책 ‘불안’에서 현대인을 괴롭히는 감정의 정체를 묻는다. 굶주림이 아니다. 전쟁도 아니다. 남들보다 뒤처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즉 ‘지위에 대한 불안'이다. 저자는 이 불안이 개인의 성격 탓만은 아니라고 본다. 사회가 무엇을 존중하고 무엇을 방치하느냐에 따라 불안의 크기도 달라진다. 공공의 공간이 대표적이다. 누구나 들어가 쉬고 배우고 즐기는 장소가 넉넉하고 품위 있는 사회에서는 사적 소유로 자신을 증명할 필요가 줄어든다. 반대로 공공이 초라해지면 사람들은 담장 안으로 물러난다. 더 큰 집, 더 비싼 단지, 더 배타적인 시설로 존엄을 사려 한다. 공공의 빈곤이 개인의 욕망을 키우고, 그 욕망이 다시 불안을 키운다. 서울 강남의 재건축 현장이 지금 그 장면을 보여준다.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반포디에이치클래스트'다. 시공권을 따낸 현대건설은 조합에 연면적 2만3천 평 규모의 커뮤니티 시설을 제안했다. 실내 아이스링크와 워터파크, 50m 6레인 실내수영장, 볼링장, 암벽등반장까지 스포츠시설만 13가지다. 840석 오페라하우스와 히노키 노천탕도 들어간다. 아파트가 아니라 리조트다. 아니, 담장을 두른 작은 도시다. 왜 이렇게까지 할까? 수주 경쟁 때문이다. 조합은 단지의 미래 가치를 증명할 설계를 요구하고, 시공사는 경쟁사보다 화려한 시설로 조합원의 표를 얻으려 한다. 호텔 리조트에나 있던 인피니티 풀은 이미 하이엔드 단지의 기본 사양이 됐다. 개포자이프레지던스에서 시작한 유행이 논현, 성수, 한남으로 번졌다. 화려함은 고스란히 가격이 된다. 반포디에이치클래스트의 3.3㎡당 공사비는 548만원에서 792만원으로 약 45% 뛰었다. 일반분양가는 3.3㎡당 1억원까지 거론된다. 유지 관리도 만만치 않다. 호텔식 조식 서비스를 도입한 래미안 원베일리는 비용 인상 문제로 1년 만에 운영 업체를 바꿨다. 화려한 시설은 짓는 날보다 유지하는 날들이 더 비싸다. 더 큰 문제는 공공기여다. 공공기여는 용적률 상향 같은 특례를 받는 대가로 도로·공원·공공시설을 지역사회에 내놓는 제도다. 개발이익을 나누자는 취지다. 그런데 기부채납한 카페와 도서관을 단지 안에서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최근에는 공공기여 시설마저 호화로워지면서 사유화 논란이 커졌다. 호화로운 공공시설은 결국 초고가 단지의 자산가치를 불리는 데 쓰인다. 공공에 내놓은 몫이 다시 담장 안의 몫이 된다. 담장 밖의 풍경은 정반대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국 공공건축물 21만6823동 가운데 23.2%가 지은 지 30년을 넘겼다. 서울연구원은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관리하는 준공 30년 이상 장기공공임대주택이 2만5천 호에서 2029년 6만 호로 늘어난다고 전망했다. 불과 몇 년 사이 2.4배다. 단지 안에는 아이스링크가 들어서는데, 단지 밖 체육관과 도서관과 임대주택은 낡은 채로 버틴다. 격차는 숫자에서 끝나지 않고 마음으로 옮겨간다. 동네 수영장이 낡고 비좁으면 단지 안 수영장이 부러워진다. 구립 도서관이 초라하면 단지 안 라운지가 커 보인다. 결국 좋은 삶에 닿는 길은 하나만 남는다. 비싼 아파트 입주권이다. 모두가 같은 문 앞에 줄을 선다. 집값이 오르고,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의 불안도 함께 오른다. 보통이 말한 지위 불안이 아파트 단지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섰다. 담장 안이라고 평온하지도 않다. 아이스링크를 갖춘 단지가 들어서면 다음 단지는 더 큰 무언가를 내건다. 오늘의 최고급은 내일의 기본 사양이 된다. 인피니티 풀이 그랬다. 비교의 사다리에는 끝이 없다. 반포 입주민도 언젠가 더 새롭고 더 화려한 단지를 올려다보게 된다. 보통이 짚었듯 지위 불안은 남과의 비교에서 자란다. 사적 소유로 불안을 달래려는 시도가 늘 실패하는 이유다. 불안을 줄이는 힘은 더 높은 담장이 아니라, 담장 없이도 함께 누리는 공공에서 나온다. 물론 입주민이 자기 돈으로 좋은 시설을 누리겠다는 선택을 탓할 일은 아니다. 문제는 방향이다. 사회의 돈과 관심이 담장 안으로만 흐르고, 공공이 기댈 몫까지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해법이 담장 밖에 있는 이유다. 첫째, 공공기여의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기부채납 시설은 주민 누구나 실제로 이용하도록 운영 기준을 정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둘째, 재건축 개발이익 일부가 단지 밖 낡은 체육관과 도서관, 공공임대주택을 고치는 데 쓰이도록 제도를 손봐야 한다. 셋째, 공공시설의 수준 자체를 높여야 한다. 공공은 최소한의 복지가 아니라 시민의 자부심이어야 한다. 좋은 공공은 사람을 덜 불안하게 만든다. 아이스링크를 가진 아파트가 아니라 누구나 스케이트를 타는 도시가 필요하다. 서울은 불안에 싸여 있다. 사람들은 더 큰 욕망을 키우고 있다.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궁전 같은 아파트가 아니라, 궁전 같은 공공이 필요한 이유다.
이광수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 저자·투자분석가
이광수 ‘진보를 위한 주식투자’ 저자·투자분석가 korea.analyst@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