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서울&] 자유와 평화는 거저 오지 않는다

서울, 이곳 l 서대문독립공원과 안산자락길

등록 : 2026-08-13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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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열어 1987년 서울구치소가 이전할 때까지 80년 동안 독립운동가와 민주화 운동가들을 탄압한 곳이다.

서대문구에 사는 사람들에게 서대문에 살아서 좋은 점이 뭐냐고 물어보면 첫 번째로 나오는 대답이 ‘안산이 있어서 좋다’일 정도로 서대문구 주민들의 안산 사랑은 대단하다.

말안장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안산은 봉원동, 연희동, 현저동, 홍제동 일대에 펼쳐져 있는 낮고 넓은 산이다. 이 둘레를 따라 7㎞ 무장애 숲길을 조성했으니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나 아이들이라도 정상에 오르는 게 어렵지 않은 만만한 산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부분적으로 사진을 찍어놓고 보면 어디 먼 데 있는 깊은 산속에라도 온 것처럼 숲이 우거졌으니 모두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안산의 ‘자연’이 아니다. 안산자락길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의 ‘역사’로, 그 출발점은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시작된다. 서대문독립공원은 1992년 개원한 근린공원으로 탑골공원의 3·1운동기념탑을 이전해 독립문, 역사관, 독립관, 순국선열추념탑 등과 연계했다.

특히 2009년 재개장하면서 그동안 접근을 제한했던 독립문을 112년 만에 시민들에게 개방해 주목을 끌었다.

독립문 앞에 두 개의 돌기둥인 영은문 주초가 보인다.


독립문은 독립협회가 국민 모금을 통해 기금을 마련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건축물이다. 학창 시절 한국사 교과서에 실린 자료사진으로도 보았고, 이 앞을 오가며 차 안에서 수도 없이 보았지만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독립문 남측에 세워진 두 개의 돌기둥에 눈이 먼저 간다. 영은문 주초, 즉 영은문 기둥의 받침돌이라는 뜻이다.

독립문이 세워진 의주로는 서대문(돈의문)에서 시작해 평안도 의주까지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로, 중국과의 교류와 사신 왕래에 사용되던 중요한 길이었다. 이곳에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모화관이 있었는데 바로 이 모화관 앞에 세워진 문이 영은문이다. 독립협회가 이곳에 독립문을 설치한 까닭은 사대 외교의 상징이며 청에 대한 굴복을 의미하는 영은문을 철거하고, 이제는 열강으로부터 우리 주권을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전세계에 천명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그렇게 온 국민의 열망대로 자주독립을 이루고 어떠한 강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유와 평화가 이 땅에 정착됐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이 땅은 가혹하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중 가장 아프고 혹독한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독립문을 세우고 11년 뒤, 자주독립 의지를 고취하려 했던 이 자리에 일제는 교활하게도 대규모 근대 감옥을 설치해 항일 독립운동을 탄압했으니 이곳이 바로 서대문형무소다. 서대문형무소는 1908년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1987년 폐쇄될 때까지 80년 동안 감옥으로 사용됐다. 지금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87년 서울구치소가 의왕으로 이전한 뒤 그 역사적 가치를 보전하기 위해 1998년 개관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투옥됐고, 해방 후에는 독재정권과 군사 정권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가들이 투옥됐으니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서대문형무소는 피와 눈물이 서려 있는 근현대사의 생생한 현장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수감생활을 재현한 중앙사, 사형장, 순국한 이들의 시신을 몰래 내보내던 시구문, 한 줌 햇빛도 들지 않는 지하 감방과 끔찍한 고문 도구들을 둘러보며 견학 온 어린아이도, 벽안의 외국인도, 그 안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곳에서 차마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다.

3·1운동으로 시작된 만세운동을 하다 서대문형무소에 끌려온 유관순은 출소를 이틀 남겨둔 1920년 9월28일 숨을 거두었다. 유관순은 사형으로 죽지 않았다. 그 어린 소녀가 매를 맞고 발로 걷어차여 방광과 자궁이 파열되어 숨이 끊어졌다. 나였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손톱이 찔리고 발로 걷어차이면서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칠 수 있었을까.

자연과 생태, 역사가 조화를 이룬 안산은 보행 접근성이 좋고 숲의 질이 좋아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다.

서대문형무소를 나와 안산자락길로 들어섰다. 감옥에서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내 조국, 내 강산이 이렇게 형무소 바로 옆에 있는데 그분들에겐 먼발치에서 보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졸리면 잠을 자는 이토록 평범한 일상이 그분들에겐 꿈이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하나도 거저 온 게 없다. 누군가가 대신 흘린 피 때문에 내가 살고 있다. 나였으면 절대로 그렇게 살아내지 못했을 삶을 사셨던 그분들 덕분에 오늘의 내가 산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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