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서울&] 성곽에 올라 백제를 마주하다

서울, 이곳 l 송파구 몽촌토성

등록 : 2026-07-02 11:36

크게 작게

올림픽공원 9경 중 제3경에 해당하는 몽촌해자 음악분수. 몽촌토성 방어용으로 구축한 해자를 재현했다.

푸른 잔디 언덕과 아름드리나무, 파란 하늘, 하얀 뭉게구름. 그림같이 멋진 풍경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외국 같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요즘처럼 서울이 국제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적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명소가 넘쳐나고, 외국인들이 앞다투어 방문하는 여행지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1970년대에 태어나고 ‘국민학교’를 다녔던 나의 경험에 비추어 잔디밭은 밟아서는 안 되는 구역이요, 푸른 잔디 언덕과 파란 하늘의 선명한 색 대비는 달력에서나 봄 직한 장면이란 인식이 머릿속에 여전히 박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경 내 눈앞에 펼쳐진 이 그림 같은 푸른 둔덕은 비할 바 없이 이국적이다. 이곳은 바로 몽촌토성이다.

몽촌토성은 풍납토성과 함께 한성백제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이 두 곳의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풍납토성은 1990년대 풍납동에 아파트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유물이 대량 나와 중요성이 재발견됐고, 몽촌토성은 그보다 먼저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됐다. 오래전부터 한성백제의 토성이라는 사실이 전해왔지만 정확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1981년 서울이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고 잠실 일대를 88서울올림픽 체육시설 건립지로 개발하면서 본격적인 조사와 발굴이 이뤄졌으니, 그런 면에서 몽촌토성은 서울올림픽의 선물로도 불린다.

사실 처음 올림픽공원을 왔을 땐 몽촌토성을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아무리 봐도 성처럼 생긴 무언가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가 흔히 성벽이라 하면 돌을 쌓아 만든 모습을 떠올리기 쉬운데, 몽촌토성은 그냥 잔디로 뒤덮인 언덕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주변에 높은 빌딩이 많아 이 정도 토성의 높이로 어떻게 수도를 방어했을지 의아할지도 모르지만, 시간을 거슬러 2천 년 전 한강 유역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얼핏 보면 잔디언덕처럼 보이지만 몽촌토성은 백제 초기 축조된 거대한 흙성으로, 둘레가 2.7km에 이른다.

토성은 왠지 석성보다 약할 것 같지만 몽촌토성은 무려 2천 년을 버텨낸 성곽이 아닌가. 백제인들은 자연의 구릉을 활용해 그 위에 진흙을 쌓아 토성을 만들었는데, 나무판 안에 흙을 층층이 다져 넣는 판축 기법을 사용해 견고하게 완성했다. 그뿐 아니다. 몽촌토성 주위로 성을 둘러싸는 물, 즉 해자(垓字)를 만들어 적의 공격에 대비했으니 백제인들의 토목 기술에 감탄했고, 한성백제가 이 정도 규모의 토목 공사를 진행할 만큼 왕권이 강력한 나라였다는 사실에 또다시 놀라게 된다.

흔히들 백제의 수도라고 하면 공주나 부여를 먼저 떠올리지만, 기원전 18년 건국해 660년 함락되기까지 백제 역사에서 가장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기는 한성백제, 바로 이곳 송파 일대에 도읍을 두었던 시기다. ‘몽촌’이란 한자를 풀이하면 꿈 몽(夢)에 마을 촌(村)으로 ‘꿈마을’이란 뜻이다. 순우리말로 ‘곰말’이라 불렀다는데, 백제가 동아시아 무역의 거점이자 문화강국으로 드높은 꿈을 펼쳤던 이곳이 2천 년이 지나 글로벌 도시 서울로 변모했다는 사실은 어쩐지 예정돼 있던 일인 것만 같다.


푸른 잔디 위에 나무 한 그루 홀로 서 있는 이국적인 풍경으로 영화나 광고 촬영지로 사랑받고 있는 ‘나홀로나무’.

몽촌토성 산책길은 토성의 구릉을 따라 가르마처럼 갈라진 산책로가 아름다워 올림픽공원 안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명소다. 어떤 각도에서 찍어도 인생 사진을 남길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나홀로나무’다. 몽촌토성에 와보지 않은 사람도 ‘나홀로나무’가 서 있는 풍경을 어디선가 한 번은 보았을 정도로 영화나 광고에서 많이 소개된 곳이기도 하며, 지금도 웨딩 촬영지로 인기가 많다.

풍납토성의 단면을 떼어 설치한 토층의 모습으로, 한성백제박물관에 조성해 놓았다.

초록 잔디, 우거진 나무. 올림픽공원의 여름은 온 세상이 초록이다. 공원이 조성된 지도 어언 40년이 넘어 수령이 오래된 나무들이 풍성한 그늘을 드리운다. 한낮엔 덥지만 그늘이 많아 쉬어갈 수 있고, 대지가 넓어 어딜 가도 한적한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몽촌토성과 그 뒤로 펼쳐진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걷는 ‘토성언덕길’ 코스는 걸어서 대략 40분이 소요되는 2.3㎞ 구간이다. 탁 트인 전망을 바라보며 오르막과 내리막을 걸을 수 있어 제법 운동이 되고, 무엇보다 2천 년 전 역사 위에 세워진 현재의 서울을 응시할 수 있어 몽촌토성에서만 느끼는 특별한 감성이 있다. 요즘 같은 날씨엔 이른 아침이나 저녁 산책을 추천하고 싶다. 지금도 이렇게 아름다운데 가을 단풍이 물들고 겨울철 흰 눈이 쌓이면 대체 얼마나 더 아름다울지, 자주 다니며 확인하고 싶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