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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압사 앞에서 호암늘솔길이 시작된다.
꽃이 진 자리에 연연한 잎이 돋아 싱그럽더니 어느새 녹음이 짙어지고 있다. 여름 산은 산모기의 공격이 두렵긴 하지만 대신 그 어느 때보다 가장 왕성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나뭇잎이 무성해지고 초록이 진해지는 계절. 나무가 내뿜는 향도 여름에 가장 풍성하다.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도 여름. 그래서 산림욕을 즐기기엔 여름 산이 최고다.
호암산은 금천구민들 사이에선 익히 알려진 곳이지만, 대중적으로는 비교적 덜 알려진 숨은 명소다. 호암(虎巖)이라는 한자에서도 느껴지듯 산세가 호랑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네 뒷산처럼 접근성이 좋지만 의외로 숲이 깊고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꽤 가팔라 난이도가 중급 정도인 산이다.
호암산 자락은 관악산에서 뻗어 안양에 이르는 서울 둘레길 12코스에 해당하는 총길이 7.3㎞ 구간인데, 그 안에 폭포, 기암괴석, 산림욕장, 심지어 역사유적까지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다채롭게 경험할 수 있는 매력적인 코스다. 호암산 전체 구간 중 내가 다녀온 곳은 호압사(虎壓寺)에서 시작해 ‘호암산 폭포’에 이르는 대략 1㎞의 호암늘솔길 구간이다. 비교적 짧은 구간이지만 그 안에 산림욕장도 있고 폭포도 있으니 초보 등산객에게는 최소한의 수고로 최대치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가성비 넘치는 구간이다.
수개월 전 다리를 다친 후로 운동을 못하다보니 근육량이 몰라보게 줄었다. 무리한 운동은 할 수 없어 다니던 헬스장도 남은 기간을 딸에게 양도한 뒤 적당한 운동 거리를 찾아 고심하던 중 호암늘솔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호암산 전체 코스로 보면 경사가 가파른 구간도 있지만 호암늘솔길 구간은 평탄한 무장애 숲길로 조성돼 몸이 불편한 사람도 쉽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잣나무임을 증명하듯 나무 아래에 잣방울이 떨어져 있다.
무엇보다 이 코스의 가장 큰 매력은 잣나무 산림욕장이다. 서울 하늘 아래 잣나무숲이라니.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호암늘솔길의 시작은 호압사부터다. 호압사와 관련해서는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조선의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궁궐 공사를 하는데 자꾸만 건물이 무너지고 공사가 진행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풍수지리에 능한 무학대사는 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이 한양을 향해 뻗어 있어 이를 누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고, 그렇게 해서 지은 절이 바로 호압사다. 어디 호암산의 풍수가 문제였겠는가. 그렇게 많은 피를 보고 개성을 떠나 한양에 입성했으니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태조 이성계의 마음이 이 작은 사찰에라도 기대어 의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호암늘솔길의 시작은 호압사부터다. 호압사와 관련해서는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조선의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궁궐 공사를 하는데 자꾸만 건물이 무너지고 공사가 진행되지 않더라는 것이다. 풍수지리에 능한 무학대사는 호암산의 호랑이 기운이 한양을 향해 뻗어 있어 이를 누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고, 그렇게 해서 지은 절이 바로 호압사다. 어디 호암산의 풍수가 문제였겠는가. 그렇게 많은 피를 보고 개성을 떠나 한양에 입성했으니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태조 이성계의 마음이 이 작은 사찰에라도 기대어 의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산림욕장에 나무 사이로 평상이 마련돼 있어 여유롭게 산림욕을 즐길 수 있다.
호압사에서 출발해 무장애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디선가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가 바람을 타고 실려 온다. 바로 호암산의 하이라이트 잣나무숲이다. 잣나무는 편백나무, 소나무와 함께 피톤치드가 많이 나오는 대표적인 수종이다. 편백나무 향기가 다소 진하고 묵직하다면 잣나무에서는 그 열매만큼이나 부드럽고 달콤한 침엽수 향이 난다.
피톤치드는 나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내뿜는 천연의 휘발성 유기화합물인데, 그 쌉싸름한 향기를 맡기만 해도 기분이 상쾌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호암산 잣나무 산림욕장은 산책하기도 좋지만 잣나무 사이사이에 평상을 만들어놓아 숲에 드러누워 여유롭게 산림욕을 즐길 수 있다.
무장애길 옆으로 흙길도 조성해 산책의 묘미를 더했다.
전에 엄마가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고 의학적으로 더 이상 기대할 게 없었을 때 유일하게 몸과 마음을 의탁할 곳이 숲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가까운 곳에 이렇게 좋은 숲이 있다는 걸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 엄마처럼 숲의 치유력이라도 붙잡아야 할 절박한 사람들이 쉽게 다가와 자연의 호사를 마음껏 누렸으면 좋겠다.
호암산 폭포를 지나 조금 더 가파른 길을 따라 정상까지 오르면 삼국시대 유적지인 호암산성과 한우물을 볼 수 있고 탁 트인 시내 전망도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건강이 회복되고 나면 다음엔 나도 꼭 정상까지 올라가보고 싶다. 흔히들 좋은 여행지를 말할 때 “한 번도 못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 나에게 호암산이 어떻냐고 물어본다면 아마 나도 그렇게 말할 것 같다. 호암산을 한 번도 못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은 없을 거라고.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