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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공간’을 청년 작가 전시공간으로…”

예술 작가와 지역 주민 ‘다리’ 역할 하는 ‘갤러리 아미디’ 이현진 대표

등록 : 2024-05-0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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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진 갤러리 아미디 대표가 2일 인터뷰를 마친 뒤 신촌역 근처에 있는 갤러리 아미디 전시 공간에 들렀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카페 개업했다가 전시 공간 사업 시작

3년째 ‘퍼스트 스텝’ 프로젝트 진행해

청년·신인 작가 300여 명 전시회 열어

“부모·아이 손잡고 오면 너무 기분 좋아”

“전시 공간을 꾸준히 찾아내는 게 제 일이죠. 그래야 청년 작가, 신인 작가들이 창작 활동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요. 작가와 공간, 지역 주민을 잇는 ‘다리’인 셈이죠.”

‘갤러리 아미디’는 전시 기획 전문 1인 청년 기업이다. 예술 작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지역과 공간에 예술의 숨을 불어넣는, 지역 주민이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고 있다. 2일 서대문구 대현동에 있는 갤러리 아미디 커뮤니티 공간에서 만난 이현진(37) 대표는 “전시 공간을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며 “그런 뒤 네트워크를 구축해 상승효과를 만들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문화예술이나 공간에 관심이 많았어요. 자연스럽게 이쪽으로 흘러온 것 같아요.” 이 대표가 전시 공간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실패’에서 비롯됐다. 이 대표는 2019년 북아현동 한 상가에서 5평 남짓한 카페를 열었다.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전시나 해볼까 하고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꿨습니다.” 이 대표는 2020년 1월 청년과 신인 작가를 위한 첫 전시를 열었다. “주택가여서 가족이 함께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림 위주로 시작했습니다.” 이 대표는 “코로나19가 유행할 때였지만, 지역 주민들이 길을 가다 쉽게 들를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전시를 이어오던 이 대표는 2022년 8월 갤러리 아미디를 만들었다. “개인 자격으로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회사를 만들어야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 같았죠.” 이듬해인 2023년 3월 갤러리 아미디는 서대문구 ‘청년 로컬 벤처’로 선정됐다. 청년 로컬 벤처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9월 이대 상권 활성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올해 1월에는 가좌동에 있는 서대문 청년창업센터에 입주했고, 3~4월에는 ‘카페 폭포’에서 서대문구의 지원을 받아 기획 전시 ‘당신의 봄’을 열었다. 갤러리 아미디가 직접 발굴한 꼬나(권하진) 작가의 ‘안녕 그리고 안녕’ 일러스트 작품을 전시했다.

“청년 예술인에게 전시 기회를 최대한 제공하려고 합니다.” 갤러리 아미디는 주로 청년이나 신인 작가, 경력 보유 여성 작가를 위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이를 위해 2021년부터 ‘퍼스트 스텝 프로젝트’를 3년째 진행하고 있다. 말 그대로 갤러리 아미디가 작가의 첫 전시를 열어준다. 개인전 기준으로 매달 작가 1~2명을 선정해 전시회를 열고 있다. 카페 폭포에서 연 전시 ‘안녕 그리고 안녕’도 그중 하나다. 신촌역 근처에 있는 갤러리 아미디 직영 전시 공간에서도 꾸준히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4월30일부터 5월6일까지 김수린 작가의 첫 개인전 ‘몽상가의 방’ 전시를 열었다. 이 대표는 “지금까지 갤러리 아미디를 통해 첫 전시회를 연 작가가 개인전과 단체전을 합쳐 300명 정도 된다”며 “청년 중심 소규모 전시 기획자 중에서는 아마 단기간에 가장 많은 전시를 열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갤러리 아미디는 지난해까지 직영 전시장 4곳을 포함해 위탁받은 곳까지 모두 10곳을 운영했다. 지금은 인력 문제로 직영 전시장 1곳, 협업 공간 4곳 등 모두 5곳을 운영하고 있다. 전시장은 대부분 10~20평 정도의 소규모다.

갤러리 아미디는 주로 ‘유휴 공간’을 활용해 작품을 전시하는데 말 그대로 ‘놀고 있는 공간’이다. 방치된 자투리 공간도 있고 사정이 있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빈 공간도 있다. “그런 공간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찾아가서 설득해요. 주인 입장에서는 공간을 오래 방치하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죠.”

이 대표 눈에는 카페 같은 곳의 빈 벽면도 놀고 있는 공간이다. “카페에는 음료를 파는 것 외에 따로 보거나 즐길거리가 없어요. 카페 주인 입장에서는 벽면이나 내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있으면 좋죠. 그래서 우리한테 공간을 채워달라는 요청도 합니다.” 이 대표는 “저와 작가는 공간을 활용해 전시할 수 있어 좋고 카페 주인은 가게 분위기를 바꾸고 손님들도 좋아하니 일거양득”이라고 했다.

이 대표는 상권 차원에서도 빈 공간을 놀리는 것보다 활용하는 게 더 낫다고 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빈 상가가 곳곳에 있어요. 밤이 되면 불이 꺼진 곳이 많이 눈에 띄죠.” 이 대표는 “작은 공간이라도 불이 켜져 있으면 행인들에게도 안정감을 줄 수 있고 상권 이미지에도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시들해진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도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 대표는 “청년 스타트업이지만 과학기술 분야가 아니라서 외부 투자 유치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대부분 1~2년 하다 그만두는 사람이 많죠. 그래서 더욱 오래 살아남아야겠다 생각해요. 그래야 전시 공간 구하기 힘든 청년 작가, 신인 작가들에게도 좋죠.”

이 대표는 “운 좋게도 구청이나 기관을 통해 조금씩 전시 기획 제안이 들어오는데 이 단계를 넘어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우선 그때까지 한번 버텨보겠다”고 했다.

“일상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일상이 되는 순간을 꿈꾼다.” 이 대표가 이 일을 하는 신조다. “집 근처에 조그만 전시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주민들이 동네에서 편하게 들르는 예술 공간이죠. 무겁지 않고 가볍게 즐기는 공간요.” 이 대표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역 주민이 아이들 손을 잡고 전시장에 들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그런 모습을 볼 때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며 웃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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