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대중화 시대의 성 주류화

기고 ㅣ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등록 : 2021-03-25 16:25 수정 : 2021-03-26 15:27

크게 작게

젠더자문관의 협조결재 의무화 제도 시행으로 2019년 7~8월에 실시된 ‘한강몽땅 여름축제’에는 휠체어 존이 마련될 수 있었다.

최근 몇 년간 우리는 청년 여성들이 주도하는 ‘주류’ 정책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 불법 영상물 사이트인 소라넷 폐쇄부터 텔레그램 엔(n)번방 사건의 공론화에 이르기까지 청년 여성들은 온라인을 통한 집단행동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전 사회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후속 대책을 이끌어냈다.

모든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성착취 범죄만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가임기 여성 수를 시각화한 ‘대한민국 출산지도’, 여성 배우자의 연령만 49살 이하(가임기)로 정의한 주거실태조사의 ‘신혼부부’ 연령 기준 등 ‘의도하지 않게’ 여성의 몸을 출산의 도구로 전제해온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며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성차별적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 변화는 2010년대 중반 페미니즘 대중화 흐름 속에 자신이 경험한 ‘불편했던 일들’을 페미니즘 언어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다. 과거 페미니즘이 소수 운동가나 학자들의 관심사였다면, 최근 청년층 내에서 페미니즘은 기본값이 되었다. 2019년 필자가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20대 청년 여성 중 약 40%가 페미니즘을 지지하며, 30%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고 있었다. 권력관계에 의해 당연시되는 사회 질서와 규범에 반대하는 신념이라는 특징을 고려할 때, 그리고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대한 낙인의 부담으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포함되지 않은 점을 고려할 때, 결코 낮은 수치가 아니다.

성차별과 성불평등 문제에 민감한 페미니즘 대중화 세대의 등장은 ‘성인지 감수성’에 부합하는 정책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 일상에서 매 순간 벌어지는 성차별과 성불평등을 포착할 수 있는 ‘감각’과 이를 정책으로 구현할 수 있는 역량이 정부 기구 내에 정착돼야 하는 것이다.

2017년부터 서울시는 시정 전반에 성인지 관점 반영을 위해 전국 최초로 젠더자문관 제도를 신설·운영하고 있다. 젠더자문관 협조결재 의무화 제도를 도입해 안전, 일자리, 복지 등 주요 정책에 대한 자문을 제도화했다. 중앙정부에서는 2018년 미투 운동을 계기로 8개 부처에 양성평등정책담당관실이 설치됐다.

페미니즘 대중화 시대, 이러한 성 주류화 추진체계가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상시로 부처나 기관의 정책 전반을 모니터링하고 자문하며, 개선 권고할 수 있는 권한과 자원이 할당돼야 한다.

부처 업무와 관련하여 시민사회 내에서 제기되는 성평등 현안에 대해서는 성 주류화 전담 조직이 부처 내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여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한 선결 조건은 의사결정권자의 ‘정치적 의지’이다.


스웨덴은 2014년 ‘세계 최초의 페미니스트 정부’를 선언한 바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성평등한 국가인 스웨덴에서 말하는 ‘페미니스트 정부’란 무엇일까? 성평등을 우선순위에 놓고 국가 정책을 추진하며, 이를 위해 성 주류화를 중요한 시행 도구로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선언이나 정치적 수사가 아니다.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총리, 그리고 각 부처 장관들이 성평등을 위한 부처의 노력과 의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

년 여성 내에서 페미니즘이 대중화되었으나, 많은 정치인과 정책결정권자들은 이 흐름에 화답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저항이 적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청년층 ‘젠더 갈등’ 프레임 속에서 청년 남녀 간 대립과 갈등만 지나치게 부각되면서 미래 지향적인 변화의 구심점이 정부 기구 내에 만들어지지 못하고 있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찬반, 옳고 그름의 논쟁보다 우리가 더 주목할 것은 ‘페미니즘 대중화’ 흐름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변화이며, 앞으로 우리 사회가 실현해야 할 가치로서 성평등이다. 이에 기반하여 정책적 메시지를 분명히 제시하는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마경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