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벗어나며 주거 희망 생겼어요”

국토부·서울시·자치구 협력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사업 1년 성과

등록 : 2021-01-2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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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기준 서울시 비주택자 7만 명

지난해 461명이 공공임대주택에 입주

주택 물색부터 계약·정착까지 도와줘

“대상자가 포기 않게 집중 지원한 효과”

국토교통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해 지난해부터 고시원·쪽방 등 비주택과 반지하 거주자들의 주거상향 지원에 나섰다. 사업 수행을 맡은 지역주거복지센터는 이주 희망자를 찾아 주택 물색부터 신청·이주·정착을 돕는다. 사진은 6년 동안 고시원(왼쪽)에서 산 박정숙(가명)씨가 지난해 9월 주거상향 지원을 받아 옮긴 LH 전세임대 원룸의 거실 겸 침실과 부엌 모습.

“그저 하루하루 연명한다는 느낌으로 살아갔는데, 이제 일도 하고 저축도 해요.”

박정숙(가명·55)씨는 지난해 비주택 거주자 주거상향 지원을 받았다. 8월 고시원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세임대주택으로 이사한 뒤 그의 삶이 바뀌었다. 새 보금자리는 10평가량의 깔끔한 원룸으로 부엌과 화장실을 갖췄다. 그는 “원하는 시간에 식사하고 커피도 마실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비혼인 박씨는 6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 가해 차량이 책임보험만 가입한 탓에 신체적 후유증과 함께 치료비가 많이 들어가 경제적으로도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고시원에 살면서 건강은 더 나빠지고 공황장애와 우울증도 생겼다. 삶에 희망이 없었다.


지역자활센터에서 홀몸노인 방문 돌보미 일을 시작하면서 고시원에서 벗어나려 해봤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강남주거복지센터의 도움으로 집을 구하고 자부담 보증금과 이사비를 지원받아 고시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서울에는 2016년 기준으로 7만여 명이 고시원·쪽방·여인숙 등 비주택에 살고 있다. 정부가 2008년부터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을 해왔지만, ‘지원 정보를 알지 못해’ ‘신청 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 ‘자부담비용을 마련할 수 없어’ 등의 이유로 포기하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양극화 심화와 집값 상승 등으로 서울에선 주거취약계층이 늘어나고 있다.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사업은 비주택 거주자들에게 지원 정보를 알리고 이주 과정 전반과 정착까지 돕는다. 주거복지재단의 2019년 주거취약계층 설문조사 결과를 활용해 지역 중심의 주거문제 해결 계기를 마련하고자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시작했다. 지원 임대주택 유형을 매입임대, 전세 임대뿐만 아니라 국민임대, 영구임대, 민간주택으로 넓혔다. LH가 공급하는 전세임대주택의 경우, 지원금 9천만원에 자부담금 50만원도 지원받는다. 여기에 이사비(20만원), 생필품비(20만원) 등은 실비를 받는다.

국토부와 지방정부의 매칭 예산으로 지난해 서울의 7개 자치구에서 시행했다. 광역관리형 5곳(국토부·서울시 매칭으로 진행한 용산·관악·구로·동작·중구), 기초관리형 2곳(국토부·서울시·자치구 매칭으로 진행한 강남·양천구)이다. 지원 대상은 비주택과 반지하에서 3개월 이상 산 거주자로 도시근로자 월평균 50% 이하 소득 가구다.

주거상향 지원사업의 실행은 지역 주거복지센터가 맡고 있다. 현재 서울 25개 자치구엔 주거복지센터가 있다. 지난해 7개 자치구의 주거복지센터는 비주택 거주자 가운데 이주를 희망하는 이들을 찾아 주택 물색, 지원금 신청, 이사 과정, 이사 뒤 정착을 도왔다.

코로나19로 대면 활동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첫해 사업은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 서울에서는 1만2천여 명이 상담받아, 이 가운데 461명이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마쳤다. 780명은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지역 주거복지센터를 통해 비주택 거주자들에게 집중적으로 상담이 이뤄져 효과가 있었다고 현장에서는 평가한다. 성동훈 동작주거복지센터 팀장은 “행정 지원, 주택 물색 등 주거 마련을 위한 동행 서비스와 임대 보증금, 이사비 지원이 있어 이주에 성공하는 사례가 늘었다”며 “대상자들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원 과정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도 나왔다. 비주택의 범위가 법령 어디에도 정확히 나와 있지 않아 신청 때 동 주민센터 담당자에 따라 적용 기준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불법 방 쪼개기로 이뤄진 미니 원룸, 다중주택(일명 벌집주택) 등의 포함 여부도 현장에선 논란이 있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침수 피해가 있거나 최저주거기준 미달인 반지하도 비주택으로 인정됐다.

적정한 주택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어려운 점이다. 김송희 구로주거복지센터장은 “보증금이 적다거나 세입자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임대인들이 꺼려 전세임대 대상 주택을 찾는 게 힘들다”고 했다. 서울에서지원금 9천만원으로는 전세임대를 구하기 어려운데, LH 매입임대주택은 공급물량이턱없이 부족하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반지하로 이주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권 LH공공임대 공급물량 확충과 전세 지원금 현실화’ 목소리에 국토부는 올해 전세지원금을 1억1천만원으로 올렸다.

자치구와의 유기적인 협력 체계가 사업 실효성을 높였다. 고시원 주인들은 대체로 손님을 빼앗길까봐 주거상향 사업 홍보에 협조적이지 않다. 정도선 강남주거복지센터장은 “구청에서 방역 물품을 지원해주는 서비스를 활용해 고시원에 들어가 홍보물을 나눠줄 수 있었다”고 했다. 또 “공공임대를 신청했다가 떨어진 고시원 거주자 현황에 대한 구청 자료가 큰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강남주거복지센터는 67명을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주시킨 공로로 지난해 연말 국토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올해 서울의 주거상향 지원사업은 자치구 4곳이 더해져 모두 11곳에서 진행된다. 광역관리형 9곳(구로·관악·동작·용산·중·성북·광진·금천·노원구)과 기초관리형 2곳(강남·양천구)이다. 주거상향 지원 대상 예상 규모는 591명(입주 완료 기준)이다. 김윤지 서울시 중앙주거복지센터 차장은 “올해 주거상향 사업이 잘되기 위해서는 공공임대주택 확보와 지난해 대비 33% 줄어든 광역관리형(기존 자치구 기준) 예산 추가 확보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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