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의 개념을 바꾸어놓은 ‘시민청’

서울 사용설명서 3년간 500만명, 서울시 청사 지하 1·2층 찾아

등록 : 2016-03-31 10:24 수정 : 2016-03-31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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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청사 안 ‘시민청’에서는 공연, 전시, 세미나 등 다양한 행사와 모임이 열린다. 토요일인 26일 시민청을 찾은 시민들이 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의 공연을 즐기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여기 온 지 한 시간 지났는데 아직 볼 게 많이 남았어요.”

지난 13일 서울시 청사 지하 1층 시민청. ‘시민청’ 담벼락 미디어 앞 낙서장테이블에서 동생과 함께 그림을 그리던 한 초등학생의 말이다. 하루 평균 5160명이 찾는다는 시민청은 다양한 볼거리로 개관 3주년 만에 누적 방문객 수 500만명을 넘어서며 시민을 위한 대표적인 열린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지방에서 시민청을 찾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이렇듯 많은 사람이 시민청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500원을 투입하면 자신이 원하는 처방전을 받을 수 있는 ‘마음약방’은 시민청에서 가장 인기있는 공간으로 꼽힌다. 주말엔 줄이 늘어서 있고 자주 매진되기도 한다. 이이슬(28)씨는 “마음약방 때문에 왔어요. 친구들이 자기도 뽑아다 달라고 주문도 했습니다”라며 처방전을 한아름 챙겼다. 직장인 이수진(28)씨는 ‘월요병 말기 처방전이 매진인 이유는 서울시 직장인들의 월요병이 심각한 탓’이라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마음약방은 ‘꿈 소멸증’, ‘자존감바닥 증후군’, ‘사람멀미즘’ 등 서울시민들이 겪는 다양한 스트레스를 그림엽서, 증상별 추천 영화카드 등 문화로 해결할 수 있게 처방전을 제공하며 위로를 전한다.

열린 시민청

지난 12일 신촌에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강정란(56)씨는 학원 수강생, 지인 등 30여명과 함께 시민플라자의 한쪽 복도를 빌려 전시회를 열었다. 또한 즉석에서 연필화를 그리는 동시에 혁필 체험, 소망을 담은 종이비행기 날리기 등 시민과 함께 나누는 체험 행사도 벌였다. 대관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시청은 강정란씨의 신청서를 확인한 뒤 ‘넓은 공간을 사용하면 더 좋겠다’며 애초에 신청한 공간보다 더 넓은 면적을 배정해 주었다. 그 이후는 말 그대로 자유였다. 소망비행기 체험도 즉석에서 고안해 설치했다고 한다. 강씨는 “우리가 같이 어울리면서 자유롭게 만들어 갈 수 있다. 시청은 관여하지 않았다”며 시민청을 이용한 소감을 전했다.

이렇듯 시민청은 시민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다. 공연, 전시, 세미나, 모임 등의 다양한 목적으로 이용이 가능하다. 홈페이지에서 쉽게 신청할 수 있고 대관료도 시간당 110원에서 3만원 미만으로 저렴한 편이다. 마이크, 스피커, 프로젝터 등 각종 장비도 제공한다. 지난 13일에는 일본 아이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스락홀’을 빌려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그리스 신전을 연상시키는 태평홀은 ‘작은 결혼식’으로 유명하다. 시민청은 공간을 대여하고 결혼식은 시민이 직접 만들어 가면 된다. 협력업체를 소개해주기도 한다. 하객 120여명 규모의 작은 결혼식을 희망하는 시민은 누구나 매주 일요일 6만6000원에 대관할 수 있다. 평균 결혼식 비용이 700만원으로 저렴한 편이다. 태평홀의 결혼식은 지금까지 100쌍 이상의 결혼식이 열렸고 모집 공고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시민청은 공간뿐만 아니라 의견에 있어서도 열린 공간을 표방한다. 이용하는 시민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마이크와 모니터가 설치된 ‘시민 발언대’에서는 시민청은 물론 서울에 관한 칭찬과 불만, 자신의 이야기 등을 마음껏 터놓을 수 있다. 발언 장면을 녹화해 제공한다. 한 시민은 발언대에 올라 서울시와 무상급식 등에 관한 울분을 30분 넘게 토로하기도 했다. 1층 신청사 앞에 있는 1000만 서울시민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의미로 설치된 귀 모양의 조형물 ‘여보세요’에서 이런 시민청의 의지를 찾아볼 수 있다.

매일 변화하는 문화의 마당, 시민청

비움과 유연성을 주제로 기획된 시민청의 공간은 행사에 따라 길을 없애기도, 공간을 나누기도 하며 변화한다. 어제 있었던 길이 오늘은 없을 수 있고, 전시갤러리는 비움과 채움을 반복한다.

설날, 추석, 1월1일을 제외하고 362일간 끊임없이 열리는 건 공연이다. 매일 낮 12시면 ‘활짝라운지’에서 활력콘서트가, 주말에는 공연은 물론 체험 전시가 열린다. 총 67팀의 시민청 예술가가 활동해 몇 번을 가도 겹치는 일이 별로 없다. 3·6·9·12월 주말에는 다양한 공연팀을 초청해 ‘바스락콘서트’를 연다. 인기가 높아 인터넷 사전예약을 해야 하고 현장 예약도 선착순으로 이뤄진다.

시민청의 벽 곳곳에는 미술 작가의 작품과 시민들이 만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시민청 벽 전체가 거대한 갤러리가 되도록 작은 구멍을 뚫어 작품 설치를 쉽게 만들었다. 이밖에도 음악과 소리로 힐링을 할 수 있게 설치된 ‘소리갤러리’와 다양한 주제의 특별 기획 전시가 이뤄지는 ‘시민청 갤러리’ 등 정식 전시실도 있다.

시민청의 진정한 주인이 되려면

서울 시민청의 변화는 많은 지방자치단체 및 내부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서울시는 강남 대치동에 제2시민청을 건립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광주광역시도 청사 1층에 ‘시민 숲’을 개관했다. 서울의 각 구청도 문화와 공유의 마당으로 주민센터를 개방하는 추세다. 중구는 각 동 주민센터에 동의 역사와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전하는 동 역사전시관을 열어 주민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공간 활용과 전시 내용에 대해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8살짜리 아들 태효군과 함께 자주 시민청을 찾는다는 윤순목(45)씨는 “이용에 큰 불편은 없지만 체험행사가 보여주기식 행사로 느껴졌다”고 지적했다.

진정한 시민청, 또 제2, 제3의 시민청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시민의 이용과 참여뿐이다. 이번 주말에는 시민청으로 소풍을 가보자.

구슬이 인턴기자 s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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