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과 대동강의 스카이라인, ‘자본’과 ‘통치’의 경관화

홍민의 서울-평양 마주 보기 ② 사회 작동 방식 차이가 만든 한강과 대동강변 풍경의 상이함

등록 : 2020-04-02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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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워커힐 위한 도로’ 건설 뒤 일상과 괴리

자본 상징 아파트들 즐비하게 건설돼

대동강

‘공원 속 평양’ 통치 이념 아래 적극 관리

부벽루·옥류관 등 기념 건물들 줄 이어

서울시 한강변

1년 중 한강변을 거니는 일이 몇 번이나 될까. 근처에 살지 않는 이상 한 번도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음먹고 나서도 강변북로, 올림픽대로와 같은 자동차 전용도로에 막혀 엄두가 잘 나지 않는다. 옆으론 고층 아파트와 건물들이 마치 거대한 장벽처럼 서 있다. 잘 갖춰진 한강 공원시설이 있지만, 이들 장벽 때문에 일상으로부터의 거리감, 단절감이 크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한강은 서울 시민 누구나 쉽게 누릴 수 있는 자연 휴식공간이었다. 여름이면 강변 백사장에서 일광욕, 물놀이, 뱃놀이, 겨울이면 얼음낚시, 썰매·스케이트 타기로 계절을 만끽하던 장소였다. 그런데 1966년 도로가 강변을 따라 건설되기 시작했다. 강변제방도로를 따라 아파트들도 우후죽순 들어섰고 한강은 일상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서울시 한강변

한강변 스카이라인은 획일적이고 단조로운 높이와 색깔, 일련번호를 단 아파트들이 늘어선 경관 일색이다. 그 밑으로 횡단보도 없는 8~10차선 자동차 전용도로가 강변을 포위하고 있다. 강변 공원들은 도로와 아파트 장벽을 뒤로하고 닫힌 풍경 안에 놓여 ‘개방감’을 느끼기 힘들다. 도심에서 강변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보행 흐름도 부족하다. 한강 연접 지역의 85%가 주거지역이고 그중 아파트단지가 40%를 차지한다. 한강 풍경은 고가의 강변 아파트 거주자들의 특권처럼 보인다. 한강은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 ‘강변 프리미엄’에 묻힌 경관이다.

강변도로 건설의 시작은 ‘워커힐호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호텔은 미군 장병을 위한 위락시설로 광진구 아차산 기슭에 카지노·바·나이트클럽·쇼무대·풀장의 시설을 갖추고 1963년 개관했다. 미군들의 달러를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적자가 계속됐다. 접근이 어려운 게 원인의 하나였다. 강변도로는 워커힐까지 가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기획됐다. 1968년 ‘한강개발계획’은 한강 양안을 제방 고속도로화했다. 워커힐이 미친 파급효과는 컸다. 강변도로는 계속 확장됐고 다리가 늘어나며 서울 시내 전역까지 건설이 파급됐다.

평양시 대동강변

평양의 대동강은 어떨까. 일단 강 접근을 막는 거대한 도로나 아파트 건물 장벽은 없다. 물론 최근 창전거리, 미래과학자거리처럼 일부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긴 했으나, 도심에서 강변까지의 보행 흐름을 막지 않는다. 강변 뒤편 도로는 대체로 4차선 정도에 곳곳에 횡단보도가 강변을 연결한다. 접근성이 좋아 강변에는 산책, 데이트, 낚시를 하는 사람이 늘 가득하다. 최근엔 강변 호프집에서 대동강맥주를 마시며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인기다. 강 접근권 측면에서는 주민 친화적으로 보인다.

북한은 1950년대부터 대동강변의 녹화와 공원화를 전개했다. 물론 기념비적 건축물 건설도 있지만, ‘공원 속의 도시, 평양’이란 슬로건 아래 대동강변을 적극 관리했다. 그 흔적은 강변 스카이라인에서 나타난다. 대동강 서안 라인만 보면, 부벽루, 해방탑, 청년공원, 모란봉공원, 옥류관, 연광정, 대동문, 대동문공원, 김일성광장, 경림아동공원, 평양호텔, 평양대극장, 김책공대, 중구시장, 은하수아파트, 진달래식당, 미래과학자거리 등이 있다. 그 뒤 블록 라인 역시 백화점, 학교, 영화관, 기념관, 과학원, 서점, 박물관, 인민대학습당, 촬영소, 식당, 호텔 등 높지 않은 건축물이 차지하고 있다.

‘자본’을 중시하는 남한과 ‘통치’를 중시하는 북한의 차이는 한강변과 대동강변 모습도 서로 다르게 만들었다. 고층아파트가 빼곡한 한강변은 강변북로 등으로 막혀 시민의 일상과 괴리돼 있지만, 대동강변은 옥류관·부벽루 등 기념 건물들을 우선 배치해 시민의 접근성을 높였다. <한겨레> 자료사진, 연합뉴스, 노동신문, LH 제공

동안 라인 역시 마찬가지다. 문수놀이장, 청류롤러스케이트장, 능라시장, 김일성·김정일화전시장, 길게 이어지는 강변공원, 선교강안거리, 대동강유원지 등이다. 뒤편 블록은 동평양대극장, 주체사상탑, 청년중앙회관, 볼링장, 운동관, 김일성고급당학교, 식당, 영화연구소, 평양상점, 선교각, 대학, 병원 등 공공성이 강한 낮은 저층 건물들이 차지하고 있다. 강 양안 맨 앞의 공원 녹지, 저층 건물들, 기념비적 건물, 멀리 고층 건물이 나름 입체적으로 전개된다. 시야 차단 없는 개방감이 느껴진다.

3월18일 북한 <노동신문>은 평양종합병원 착공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매우 이례적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첫 삽을 뜨고 착공 연설도 했다. 김 위원장은 계획된 많은 건설사업을 뒤로 미루고 이 병원을 당 창건 75돌을 맞는 10월10일까지 우선 완공시킬 것을 강조했다. 근위영웅여단과 8건설국 등 최정예 공병대 투입도 언급했다.

전세계가 코로나19 위기를 겪는 상황에 대규모 착공식을 거행하는 것이 의아하지만, 주목할 부분은 병원이 들어설 위치다. 당창건기념탑에서 대동강변까지 550여m의 부지다. 당창건기념탑은 1995년 당 창건 50돌을 맞아 제막됐고 노동자, 농민, 지식인을 상징하는 망치, 낫, 붓을 형상화한 높이 50m의 평양의 정치적 도시 랜드마크다. 그 상징성 때문에 탑 정면에서 강변까지 일부러 시야를 트여놓았다. 병원이 들어서면 탑의 시야를 가릴 것이 분명한데 건설 터로 내놓은 것이다.

김 위원장도 연설에서 이곳이 “평양시 안에서도 명당자리”임을 강조했다. 다른 건설을 뒤로 미루며 명당자리를 병원 터로 내놓는 배경은 코로나 국면에서 인민 중심의 통치 코드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 당 창건 50주년과 75주년을 각각 기념하는 건설물을 나란히 놓는 것, 당창건기념탑 뒤로 본래 류경안과종합병원, 류경치과병원, 고려의학과학원, 남산병원, 평양산원, 옥류아동병원, 김만유병원 등 일종의 병원단지가 조성돼 있다는 것도 이곳이 낙점된 배경일 수 있다.

그 의도가 어떻든 대동강은 ‘도시정치’의 중심에 있다. 도시 건설과 경관의 조형을 둘러싼 정치다. 김정은 시대 들어서는 ‘대동강 르네상스’라 불릴 만큼 강 주변으로 고층 살림집, 테마파크, 스포츠센터, 호텔, 식당들이 들어서고 있다. 표면적으론 인민을 위한 것이지만, 통치 차원의 전시적 위락시설 성격이 짙다. 북한의 대동강이 ‘통치의 경관화’라면 한강은 ‘자본의 경관화’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강은 공공재다. 쉽게 접근하고 다채로운 일상 경험이 가능한 모두의 ‘강’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한 모두 진정한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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