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그맨과 공무원, 남 위하는 점 비슷”

늦깎이 공무원 된 ‘웃찾사’ 개그맨 출신 김형준 주무관

등록 : 2019-12-26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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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프로 폐지 뒤 공무원 시험 준비

준비 6개월 만에 당당히 토목직 합격

‘개그로 푸는 제설 홍보’ 등 맹활약

개그맨 때보다 수입 안정, 9월 결혼

개그맨 출신의 성동구 공무원 김형준씨가 지난 11월 관내 한 초등학교를 찾아가 개그를 섞어 제설 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성동구 제공

지난 11월18일 학생 200여 명이 가득 메운 성동구 경동초등학교 강당. 성동구청 토목과 도로관리팀 김형준(35) 주무관이 “제 집 앞 눈은 자신이 치우도록 2006년 조례로 제정됐는데 그것도 모르느냐”고 옆에 있는 개그맨 김영구씨에게 타박한다.

그러면서 눈이 와서 쌓이면 파란색 제설함 통에서 빗자루와 눈삽 등을 꺼내 염화칼슘, 소금, 모래 등 제설제를 가지고 고가차로, 응달진 곳, 상습 빙판 구역, 주택가, 언덕길 등에 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곧바로 “제설함 통에 무엇이 들어 있죠?” “제설제를 뿌려야 하는 곳은 어디죠?”라고 퀴즈를 내자 손을 들어 “저요! 저요!”를 외치는 초등학생들 목소리가 강당에 가득 울려퍼진다. 맞힌 학생들에게는 작은 선물이 쥐어진다.

김 주무관이 속한 성동구 토목과는 11월18일부터 22일까지 관내 경동초등학교를 비롯한 4개 학교에서 ‘찾아가는 어린이 제설 개그 공연, 눈이 펑펑! 웃음이 펑펑!’을 실시했다. 어린이들과 학부모들에게 겨울철 제설작업의 필요성을 쉽고 재미있게 홍보해보자는 취지에서 김 주무관이 아이디어를 냈다. 지난해 8월 34살 늦은 나이에 서울시 토목직에 합격해 구공무원이 된 김 주무관은 전직을 살려 과감하게 새로운 제설 홍보에 도전한 것이다. 김씨는 2017년 5월 <에스비에스>(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이 폐지되기 전까지 ‘애들의 세상을 키우자’(애세키) 코너에서 정치인 유치원생 아들로 나와서 웃기는 세상을 풍자하던 나름 전도 유망한 개그맨이었다. 한 달에 20만원 벌이가 고작일 때도 있는 힘든 개그맨 생활이었지만, 3년간 잘 다니던 설계사무소를 그만두고 2015년 <에스비에스> 개그맨 공채시험에 도전해 합격한 만큼 자신의 선택에 만족했다. 그러나 인생은 뜻하지 않게 바뀌었다. 웃찾사 폐지 이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토목환경공학과를 나온 전공을 살려 9급 토목직 공무원에 도전했다.


“대학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웃기는 대본을 써서 무대에 올려보는 일이 좋았어요. 그래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결국 개그맨이 된 것인데, 돌이켜보면 어떻게든 개그를 계속 밀어붙인 선배들을 보면 저는 그만큼 개그맨을 좋아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결국 올인을 못했고 그만큼 열정은 없었던 것 같아요. 여친도 개그맨 생활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요.(웃음)”

공무원시험 대비 학원가가 밀집된 노량진에 가지 않고 오전 9시부터 밤 12시까지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하루 14시간 토요일까지 시험공부에 매진했다. 시험공부 시작 반년 만인 2018년 1월 40 대 1의 경쟁을 뚫고 필기시험에 합격한 뒤 그해 4월 면접을 통과해 최종 합격했고 8월에 임용됐다.

“필기시험 뒤 카페에서 답안을 맞혀본 뒤 합격한 것 같아 카페 밖으로 나가서 여친과 함께 소리를 질렀어요. 시험 삼아서 본 것이 덜컥 합격했어요. 공무원이 되고 나니 부모님이 너무 좋아하고 여친과도 올 9월 결혼했어요. 수입 면에서도 개그맨 때에 비해서 안정적이구요.”

그러나 김 주무관은 단순히 안정적 직업을 생각했던 친구들은 막상 공무원이 되고나서 힘들어한다며 “봉사와 헌신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면접 때만 이야기한다면 정년을 채우지 못할 것”이라고 공무원이란 직업의 특수성을 강조했다.

그래도 이 늦깎이 공무원은 봉사와 헌신이라는 초심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실감하는 듯하다.

“제 부서는 도로 유지·보수 등 민원이 많은 곳인데 한정된 예산 탓에 민원인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지 못할 때, 민원인이 불만을 표시할 때, 우리도 우선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어 둘 중 하나만 할 수밖에 없을 때 공무원 일이 힘들었어요.”

그는 개그맨과 공무원이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아요. 개그맨은 관객과 시청자를 웃기기 위해서 밤샘을 마다하지 않고, 공무원도 구민을 위해 봉사와 헌신을 해야 하니까요.”

관내의 이면도로에는 취약한 곳이 많은데 보수해주면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여주고, 음식까지 바리바리 싸가지고 와서 제공하는 주민도 있어 보람을 느낀다고 이 새내기 공무원은 말했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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