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해질녘 을씨년스런 골목길에 마음 따뜻해지는 힐링 조명

황학사거리 주방거리 ‘마장로 가로등편지’ 고보조명 화제

등록 : 2018-03-01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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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뒤 삭막한 황학동 주방거리에

상인들 조명 설치 아이디어 내고

동주민센터·중구청 수용해 멋진 변신

지난 2월28일 저녁 서울 황학동 주방가구거리에서 ‘마장로 가로등편지’로 알려진 고보조명이 거리를 따뜻하게 밝히고 있다.

지난 2월21일 저녁 7시 중구 황학동 주방가구거리. ‘주방용품 시장의 메카’다운 낮의 시끌벅적함과 달리, 어둠이 내린 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거리 양쪽과 골목골목에 자리한 180여 개 점포는 대부분 문을 닫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흥인사거리에서 황학사거리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성동공고 담벼락에서 빛나는 특이한 조명 글귀가 눈길을 붙잡았다. “여기는 황학동 주방가구거리입니다.” 바닥이나 벽에 빛을 쏘아 글과 그림을 만들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고보조명이다. 글귀에 그려진 솥단지 모양이 앙증맞다.

발걸음을 재촉하자 문을 닫은 점포 1층의 천막과 길바닥에서 “주방가구 사러 오셨나요? 오우~ 슈퍼울트라 그뤠잇!” “알뜰쇼핑족의 필수코스” 등 거리를 알리는 조명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도 힘들었지~? 수고했어” “미래에 대한 가치투자! 책과의 동행!” “웃는 당신이 아름답습니다” “힘내요 당신, 당신은 늘 최고예요!” 같은 재치 있고 마음 따뜻해지는 글귀도 많다. 거리에서 만난 김아무개씨는 “밤이면 어둡고, 혼자 다니는 것이 내키지 않는 곳이었는데 조명이 생겨 포근해졌다. 내용도 힐링이 되는 거라서 자꾸 보게 된다”고 했다.

지난 2월28일 저녁 서울 황학동 주방가구거리에서 ‘마장로 가로등편지’로 알려진 고보조명이 거리를 따뜻하게 밝히고 있다.


흥인사거리에서 중앙시장까지 300여m의 거리엔 이런 고보조명이 10개 설치돼 있다. 주민들은 고보조명을 ‘마장로 가로등편지’라 한다. 이 거리의 도로명이 ‘마장로’여서 붙인 이름이다. 고보조명은 주방가구거리의 상인들과 주민들이 9개월여 머리를 맞댄 끝에 지난 1월 설치를 마쳤다.

가로등편지 아이디어는 상인들에게서 나왔다. 신택상 중앙시장상인회 회장은 “오후 6시가 넘어 점포들이 영업을 중단하고 나면 말 그대로 삭막하고 활기가 없었다. 밤에도 가족들이 걷고 싶은 친근한 공간으로 바꿔보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상인회는 주민들과 함께 지난해 4월 골목협의체를 구성했고, 친근한 이미지의 고보조명을 설치해 주방거리의 밤 모습을 바꾸기로 뜻을 모았다. 조명 설치에 들어가는 예산은 황학동주민센터의 응원 아래 중구청의 마을특화사업과 ‘골목길 변신 프로젝트’ 공모에 당선돼 1800만원을 마련했다.

상인들은 조명의 위치를 물색하고 현장 시뮬레이션을 해 어울리는 조명 이미지를 찾는 등 가로등편지의 설치 과정에도 적극 참여했다. 신 회장은 “톡톡 튀는 글귀도 대부분 상인들의 머리에서 나왔다”며 “주방거리에 ‘미래에 대한 가치투자! 책과의 동행!’ 같은 조명이 내걸린 것에 사람들이 놀란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내친김에 낮 영업시간 동안 자율정비선을 지정하는 협약을 맺어 보행로에 과도하게 물건을 진열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주방가구거리에서 아직 고보조명이 설치되지 않은 중앙시장~황학사거리의 300여m 구간에도 올해 안으로 10개가량을 설치할 계획이다.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주민참여예산으로 3000만원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거리를 어둡게 만들었던 점포의 물건 가림용 천막도 산뜻하게 교체할 예정이다.

정헌욱 황학동 동장은 “보행로의 물건들이 잘 정비되고, 중앙시장~황학사거리의 나머지 구간에 고보조명이 설치되고나면 주방가구거리의 분위기가 확 달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글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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