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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동안 자립·공생 필요한 기술 배워
각자 ‘비전화 제품’ 만들어 전시·판매
3월 졸업 앞두고 ‘작은 일자리’ 준비
“사회·동료와 함께 ‘자급자족’ 목표”
후지무라 야스유키 교수(가운데)는 한 달에 일주일씩 서울에 머물며 ‘비전화 제작자 과정’ 1기 12명에게 일본 비전화공방의 기술과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전기를 쓰지 않는 햇빛 식품건조기, 집에서 유기농 채소를 키울 수 있는 작은 온실, 빵을 굽는 이동식 돌가마…. 지난달 16일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친환경 문화장터 ‘마르쉐@’에 12가지 ‘별난 제품’이 전시·판매돼 눈길을 끌었다. 이 제품을 만든 사람들은 ‘비전화공방 서울’의 1기 제작자 12명이었다.
제작자인 홍정현씨는 도시 텃밭이나 가정에서 쓸 수 있는 ‘움직이는 생태 변기’를 만들었다. 똥을 눈 뒤 회전판을 돌리면 물 대신 흙·톱밥과 섞인다. 사람의 똥은 공기와 닿으면 미생물 운동이 활발해져 분해가 잘되고, 냄새도 안 난다. 퇴비를 만들어 쓰기도 좋다. “생태 변기는 환경에도 좋지만, 날마다 똥을 보면서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 좋아요. 거부감 들지 않게 나무로 정성 들여 예쁘게 만들었어요. 앞으로는 아기용도 만들어서 배변 훈련과 생태교육을 할 수 있는 워크숍도 계획하고 있어요.”
생태 변기
제작자 남수정씨는 ‘채소저장고’를 만들었다. 채소는 무조건 냉장고에 보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채소마다 보관 방법은 제각각이다. 따뜻한 나라에서 건너온 가지, 고구마, 감자, 토마토 등은 냉장 보관하면 신선도와 맛이 떨어진다. 서랍장처럼 생긴 채소저장고에는 걸이가 있어 채소를 주렁주렁 걸어둘 수 있다. “채소마다 다른 속도를 존중하고 싶었어요. 위생에 신경 써서 원목을 썼고, 통풍도 잘되게 만들었어요. 자연 본연의 성질에 충실하게 보관하니까 맛도 영양도 더 좋아져요. 채소 저장고와 함께 채소별 보관 방법 등 새로운 부엌 문화를 나누고 싶어요.”
채소저장고
‘비전화공방 서울’은 서울시가 지난해 2월 일본 비전화공방(非電化工房)의 설립자이자 일본 최고의 발명가로 손꼽히는 후지무라 야스유키 니혼대 교수와 업무 협약을 맺고,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 유치한 혁신기관이다. 오사카대학에서 기초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지무라 교수는 천식을 앓는 아들을 위해 공기청정기를 발명하면서 에너지와 화학물질을 지나치게 사용해서 발생한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30여 년 동안 1000여 개의 제품을 발명해 과학기술청 장관상과 발명 공로상을 받았다.
햇빛 식품건조기
2000년 설립된 일본 비전화공방이 개발·제안해온 기술은 비전화 냉장고 등 비전화 제품 30여 가지에서 비전화 주택과 바이오 화장실 등 비전화 시설까지 다양하다. 바이오 필터 등 정수 장치, 유기농법과 유기농 가공식품 제조 기술, 자연에너지와 폐유를 이용한 에너지 공급 시스템 등 여기서 개발한 기술 대부분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2007년 도치기현 나스에 마련한 비전화공방 테마파크에는 해마다 3000~4000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으며 누적 방문자 수가 5만 명을 넘었다.
비전화공방 서울이 지난해 4월 개설한 ‘비전화 제작자 과정’에는 12명이 참여하고 있다. 후지무라 교수는 한 달에 일주일씩 서울에 머물며 일본 비전화공방의 기술과 경험을 전수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제작자들이 일본 비전화공방으로 16일 동안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제작자들은 비전화공방에서 손을 쓰고 움직이며 생산하는 기쁨과 기술을 익히는 즐거움, 자연과 인간관계 등 대도시 서울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자립 기술과 공생 기술을 배우고 있다. 제작자인 박새로미씨는 “꿈꾸던 귀농·귀촌을 하려면 기술이 필요할 것 같아 제작자 과정에 참여했다. 그전에는 자급자족을 나 혼자 먹고사는 문제로 이해했다. 12가지 기술이 필요하면 내가 다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와서 12명이 서로 이어지면 된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1기 제작자들은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 친환경 공법으로 비전화 카페를 짓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제작자들은 서울혁신파크 안에 친환경 공법으로 비전화 카페를 직접 지으면서 전기와 화학물질 없이 집 짓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유기 순환농법으로 키운 곡식과 채소로 밥상을 차리고, 에너지를 만들어 쓰는 방법을 익혀 삶에 필요한 먹거리, 에너지, 주거 등을 해결한다. 비전화 카페는 4월부터 2기가 이어받아 6월쯤 완공할 예정이다.
1년 동안의 ‘비전화 제작자 과정’이 끝나면 후지무라 교수의 ‘작은 일자리(스몰 비즈니스) 모델’로 이어진다. 그는 행복을 위해 삶의 방법을 바꾸고자 한 달에 이틀만 일하고 3만엔(약 30만 원)만 버는 ‘작은 일자리’를 제안해 일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머지 날들은 행복해질 시간, 자급하기 위한 시간, 친구와 함께 웃을 시간, 일상을 풍요롭게 꾸리기 위한 시간으로 사용한다. 너무 적은 수입이라 생활이 안 될 것 같지만,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이면 가능한 시도라는 것이다. 홍 제작자는 “주변 사람(손님)에게 좋은 가치를 제공하면서 나도 즐겁고 좋아하는 일을 만드는 연습을 해왔고, 3월에 졸업하면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각자 할지, 동업할지 모르겠지만 동료가 정말 중요하다는 건 알게 됐다”고 말했다.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사진 ‘비전화공방 서울’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