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춘추전국시대

김작가가 ‘강추’하는 평양냉면 신흥 강자 3곳

등록 : 2017-08-2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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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무밥상’의 놀라운 슴슴한 맛

북한군 장군식당 주방장 출신

신흥 강자 ‘피양옥’의 안정된 맛

봉피양과 진검승부 ‘청춘구락부’

조심스럽다. 언젠가부터 평양냉면에 대해 말하기가 그렇다. 자칫 말을 꺼냈다가 고수들에게는 하수 취급을 받는다. 아직 그릇을 덜 비웠다거나 겨우 그걸 가지고 평양냉면(평냉)의 세계를 논하느냐고 비웃음을 산다. 냉면집의 젓가락 사진만 올려놓고 여기가 어디인지 맞춰보라는 이를 보면, 그리고 단박에 거기가 어디인지 집어내는 이를 보면 입을 닫고 싶어진다.

반대 진영에게도 마찬가지다. 평냉 혐오자들에게 평양냉면에 대해 조금이라도 길게 이야기했다가는 ‘면스플레인’(냉면에 대해 자꾸 가르치려 드는 자세나 마음가짐)이라 조롱당하기 십상이다. ‘평뽕을 맞았다’거나 ‘평냉부심을 부린다’라는 말이 부록처럼 딸려올 수도 있다. ‘초딩 입맛’을 자처하는 한 지인은 자신의 에스엔에스(사회관계망서비스)에 평양냉면 애호가들을 혐오하는 글을, 마치 최치원이 황소에게 격문을 보내듯 올리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입을 닫고 싶어진다.

실로 오랫동안, 먹는 사람들만 먹던 차가운 평양냉면은 왜 이토록 뜨거운 음식이 되었을까? 종교 아니면 멸시의 대상이 되었을까? 추측건대 수요보다 공급이 너무 적었다. 오랫동안 한국의 평양냉면 명가는 지극히 한정되어 있었다. 전국에 퍼져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있다.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되어 있고, 금세 모든 가게를 섭렵할 수 있다. 대중에게 퍼지기 전부터 평양냉면을 즐겨 먹던 이들에게 평양냉면집은 순례 후 맛을 논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던 셈이다. 따라서 을지로와 의정부, 장충동과 논현동 등을 누비며 평양냉면 전수조사를 마친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같은 경험을 공유한 덕에 정파와 사파를 논하고 문파를 나누며 놀고 논했던 게 아마 ‘면스플레인’의 시작이 되었으리라.


원인이 무엇이든 이제 평양냉면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났다. 유명 냉면집이라면 식사 시간마다 늘어서는 줄이 갈수록 길어진다. 한번도 안 먹어본 사람과 한번만 먹어본 사람, 그리고 인이 박인 사람으로 나뉜다. 마니아들을 기반으로 명백히 대중화가 된 것이다. 수요가 늘면 공급도 느는 법. 오래도록 ‘닫힌 시장’이었던 냉면의 무림에 평지풍파가 일어나고 있다. 각자의 철학과 노하우로 무장하고 냉면계의 얼리어답터들을 유혹하는 가게들이 생겨난다. 평양냉면과 먼 친척 관계였던 막국수마저 그저 이름만 다를 뿐, 웬만한 평양냉면 뺨을 후려치는 고품질로 사시사철 인산인해를 이루는 가게도 있다. 출신도 다양하다. 기존의 ‘문파’에서 수련을 쌓아 독립하는 곳이 있고 평양냉면 ‘원산지’인 이북 출신 인사가 본토의 맛을 시전하는 곳도 있다. 이론과 경험으로 무장한 평양냉면 마니아가 선수로 뛰어드는 경우도 있다. 냉면계의 전통적 중원이었던 중구를 벗어나 마포와 강남에 주로 신장개업 간판을 내걸었다는 것 정도가 공통점일까? 바야흐로 평냉 춘추전국시대의 전야와 같은 여름의 끝자락, 설레는 마음으로 미래의 노포를 노리는 평냉 신흥 강자들을 섭렵해봤다.

합정동 동무밥상

남북 관계가 좋았던 시절, 평양을 방문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우리가 먹는 평양냉면은 엄밀히 말하면 서울식이야. 이북에선 그렇게 안 먹더라고.” 보통 사람은 평양은커녕 금강산만 갔다 와도 으쓱했던 때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치 인터넷 이전 시대에 한국에서 구할 수 없는 ‘명반’을 상상하듯 그 맛을 그리곤 했다.

2015년 말 합정동에 문을 연 ‘동무밥상’은 그 상상을 채워줬던 곳이다. 냉면뿐만 아니라 순대, 만두, 명태식해 등의 메뉴가 우리가 익히 알고 먹던 맛과는 다르다. 심심하되 식감이 살아 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콩나물무침마저 그렇다. 자극적이지 않으나 공허하지도 않은 이 맛은 처음엔 살짝 당혹스럽다. 냉면도 그렇다. 이에 비하면 ‘슴슴한’ 맛으로 먹던 기존의 냉면들이 자극적으로 느껴진다.

함경북도 태생인 윤종철 사장의 할아버지는 요리사였다. 그래서 군대에서 바로 요리를 시작했다. 평양의 장군식당에서 근무했다. 맛이 없으면 장군들에게 혼쭐이 났기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며 부엌에 섰다. 1998년 탈북, 고생 끝에 2013년부터 다시 요리를 시작했다. 동무밥상의 등장은 마포 일대의 평양냉면 팬들뿐만 아니라, 진짜 북한 음식이 궁금한 이들에게 순식간에 화제가 됐다. 지난해 <수요미식회>에 나오기 전부터 이미 줄을 서야 했다. 메밀 40에 전분과 밀가루 60을 고수하는 것도 그게 바로 북한식이기 때문이다. 윤 사장의 철칙을 알고 나면 믿어도 좋을 것 같다. 그는 절대 외식을 하지 않는다. 맥줏집을 가더라도 기본으로 나오는 과자 정도에나 손을 댄다. 북한의 맛을 남한 음식으로 덮지 않기 위해서다.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평양 ‘옥류관’에 가서 그가 혀와 손에 간직해온 기억들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청담동 피양옥

신흥 중의 신흥이다. 5월 말에 문을 열었는데 벌써부터 소문이 예사롭지 않다. 흔히 평양냉면은 처음에 맛 잡기가 어렵다고들 하는데, 몇년은 면과 육수를 뽑았을 것 같은 안정감이 있다. 당연히 어느 전통의 업소 출신인가 싶다. 그렇지 않다. 지난해 냉면계를 달궜던 ‘진미 평양냉면’에 이어 강남권 냉면계에 도전장을 낸 김호찬 대표는 외식업과는 거리가 먼 일을 했다. 다만 먹고 마시는 데 남다른 재능과 노력이 있었다. 청담동에 가게를 내기 전부터 냉면집은 물론이요, 지방의 맛집들을 섭렵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피양옥’의 음식을 설계했다. 소와 돼지를 삶은 육수에서는 ‘우래옥’의 짙은 육향이 나지만, 면은 의정부 계열처럼 가늘다. 70% 함량을 기준으로 계절에 따라 편차를 달리하는 메밀은 가게 안에 있는 도정기로 날마다 빻는다. 반죽할 때도 단계에 따라 익반죽과 냉반죽을 각각 거친다.

평양냉면 전문점을 기치로 내걸지만 다른 메뉴들도 수준급이다. 대구 ‘금화식당’ 스타일로 삶아낸 제육은 지방과 살코기, 그리고 껍질의 조화가 일품이다. 육수용으로 삶은 고기를 쓰는 다른 냉면집과는 달리 생고기를 어복쟁반(놋쟁반에 쇠고기 편육과 버섯을 비롯한 채소를 넉넉히 담아 육수를 부어가며 끓여 먹는 평안도 전골 요리)에 쓴다. 당연히 고기 맛이 좋을 수밖에 없다. 녹두전 또한 단순히 돼지기름을 쓰는 걸 넘어, 반죽에 돼지비계를 짓이겨 넣는다. 그래서 식어도 고소함이 살아 있다. 만두도, 수육도 기존 명가들의 모방을 넘어선 융합과 개량의 결과다. 메뉴에는 없지만 메밀 100%로 만든 순면도 주문할 수 있다.

청춘구락부 ‘들기름메밀순면’과 ‘수육’
용강동 청춘구락부

평양냉면에 맛을 들이게 되면 고기를 먹고 후식으로 먹는 냉면에서 멀어지게 된다. 맛있는 고기를 먹었는데 달고 질긴 공장 냉면으로 입을 버려서야 되겠는가? 용강동의 양대창 전문점인 ‘청춘구락부’에서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올해부터 냉면을 시작했건만, 주 무기인 양대창의 품질에 뒤처지지 않는다. 아니, 냉면만 따로 먹으러 가도 충분히 좋을 정도다. 인근에 ‘봉피양’ 지점이 있지만, 감히 말하건대 훨씬 낫다. 오로지 메밀만으로 뽑아낸 순면에서는 기존의 냉면보다는 오히려 일본 소바에 가까울 정도의 메밀 향을 느낄 수 있다. 한우와 꿩으로 뽑아낸 육수의 향 사이로 피어오르는 메밀 향은 양대창의 느끼함을 기분 좋게 잡아준다. 배가 부른데 젓가락이 계속 가더니 국물까지 싹 비우고 말았다.

물냉면을 부담스러워한다면 들기름메밀순면을 먹어도 훌륭하다. 지리산에서 가져온 저온압착 들기름과 조선간장을 뿌려 먹는다. 막국수계를 평정하고 있는 용인 ‘고기리장원막국수’의 들기름막국수에 필적할 만하다. 식사를 마칠 무렵 만석인 홀을 둘러봤다. 고기를 먹은 후 모두 냉면 그릇을 앞에 놓고 있었다. 열외 한명 없었다.

글·사진 김작가/음악평론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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