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지난 5일 회의를 마치고 둥지카페에 모인 도봉구 방학1동 마을활력소 학둥지 운영위원들. 학둥지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마을 공동체 플랫폼으로 키워나갈 꿈을 갖고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어르신들이 봉지 커피를 많이 찾습니다.” “뜨거운 물은 어떻게 하죠?” “청년들 스트레스 제로 행사를 위해 샌드백을 설치하려 합니다.” “어르신들은 정서상 불편해할 텐데요.”
지난 5일 도봉구 방학1동 주민센터 2층 ‘마을활력소, 학둥지’. 얼핏 한가해 보였지만 유리벽 넘어 회의실 분위기는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 회의실과 연결된 카페에서는 회의실의 열기에는 아랑곳없이 한 초등학생이 공부하고 있었다. 운영위원인 엄마와 함께 왔다고 했다. “좋아요. 시원하잖아요. 어제는 친구와 왔고요, 오늘은 엄마 따라 왔어요. 자주 올 것 같아요.”
‘학둥지’는 지난 7월20일 문을 열었다. 아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조용했다. 오후쯤 되면 마을 어르신들이 마실을 많이 나온다고 한다. 학둥지의 한 축을 담당하는 방학1동 공립 작은도서관 자원봉사자들은 책을 옮기느라 분주하다. 도서관은 학둥지가 만들어지면서 2층으로 올라갔다. 주민들의 편의와 비좁은 건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열람실이 조금 좁아졌지만 공간 전체는 좋아졌어요. 카페 공간을 이용하면 독서토론 모임을 하기에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학원에 안 가고 책 읽는 모습을 꿈꿨는데…. 도서관이 책 대출만 하는 곳은 아니잖아요.”
30여분이 지났지만 회의실 분위기는 좀처럼 식지 않는다. 모여 앉은 20여명은 학둥지 운영위원들이다. 애초 회의는 18일 열리는 무료영화 상영의 홍보와 계획된 7080 라이브 공연의 규모와 시기를 결정하는 게 목적이었다. 안건은 일찌감치 마무리됐다. 회의가 계속되는 건, 학둥지 운영과 관련해 주민들이 기대가 큰 만큼 많은 요구를 쏟아냈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을 위한 봉지 커피 제공 문제만 해도 커피뿐 아니라 안전과 위생, 비용 등등 논의해야 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었다. 운영위원들의 의견은 같은 듯하면서도 미묘하게 달랐다. 홍원식 위원장(73)은 “직권으로 결정하세요”라는 권유에도 “또 다른 분 의견은요?”라며 다른 운영위원들의 발언을 청했다. 학둥지가 주민 누구나 발언하고 의견을 모으는 민주주의 실험과 훈련의 장이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발언이 오가면서 운영위원들 사이에는 수긍의 고갯짓이 늘었고 의견 차이는 좁혀졌다.
“마을활력소는 만나고 소통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마을활동을 촉진하는 거점이니까요. 그러려면 모두의 의견이 소중하죠.” 홍 위원장은 어느 한쪽의 의견에 치우치면 마을활력소가 제대로 운영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아직 이름이 낯선 ‘마을활력소’는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이하 찾동) 사업의 하나로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하고 강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주민과 주민, 주민과 공공이 만나고 소통하는 공동체 공간이 마을활력소다. 이를 통해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면 복지 사각지대가 없는 복지생태계가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렸다. 2016년 1월 금천구 독산4동에 1호 마을활력소가 마련됐고, 방학1동은 일곱번째로 문을 열었다. 지금 만들고 있는 동까지 합하면 마을활력소는 올해 안에 12개로 늘어난다.
학둥지는 작은도서관과 둥지 회의실, 다용도커뮤니티 공간인 둥지 카페, 야외 테라스 등으로 구성돼 있다. 둥지 회의실에는 강좌나 영화 상영, 공연 등을 할 수 있는 시설도 갖췄다. 65평 내외의 실내 공간은 좀 좁다 싶지만, 움직일 수 있는 유리벽으로 보완했다. 회의실과 카페는 유리벽을 열면 하나의 공간으로 통합된다.
200여명이 넘는 주민이 참여한 7월20일 개소식 때에도 유리벽을 열어 행사를 치렀다. 11평 내외의 야외 테라스도 비좁은 실내를 보완하고 야외 계단과 함께 주민들의 접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이러한 공간 설계는 주민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200여명이 넘는 주민이 참여한 7월20일 개소식 때에도 유리벽을 열어 행사를 치렀다. 11평 내외의 야외 테라스도 비좁은 실내를 보완하고 야외 계단과 함께 주민들의 접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이러한 공간 설계는 주민들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것이다.
학둥지 운영위원들의 회의 모습.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것이 이들의 약속이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학둥지가 문을 열기까지는, 결정이 되고나서 1년여가 걸렸다. 주민과 동주민센터, 공유 공간 기획에 도움을 주는 전문가그룹은 2016년 8월 민관참여단을 꾸려 다른 마을활력소 견학과 주민회의 등을 통해 공간과 운영에 대한 아이디어를 모았다. 동주민센터는 주민설명회와 워크숍 등을 지원했다. 전문가그룹은 공유 공간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주민들은 마을활력소 공간의 기본골격을 결정하고 운영 주체인 운영위원회를 구성했다.
학둥지 운영은 주민자치위원회, 직능단체, 마을계획단, 일반 주민 등 32명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맡는다. 대관과 프로그램 운영, 주민동아리 모임 등 학둥지 공간 운영에 필요한 모든 사항은 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운영위원이 32명이나 되는 이유는 더 많은 주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더 많은 의견을 듣기 위해서다. 학둥지라는 마을활력소 이름도 주민 공모로 결정했다. 학을 형상화한 디자인은 주민자치위원회 간사로 활동하는 이승재씨 작품이다.
공간이 만들어지면 사람은 모인다.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 ‘청치마’ 행사가 열립니다. 자제분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 부탁드립니다.” 회의를 마칠 무렵 장승연 마을계획단 무지개분과장은 운영위원들에게 몇번이나 인사를 했다. 청치마는 ‘청년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마을공간 힐링 카페’의 줄임말이다. 행사를 준비하는 김형권 목사(이랑감리교회)는 “어린이와 여성,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는 많은데 청년들을 위한 복지는 부족하다”며 “청년들을 마을의 주체로 세우기 위한 행사”라고 청치마에 의미를 부여했다.
학둥지 운영위원회는 18일 영화 상영을 시작으로 7080 라이브 공연, 아빠와 함께하는 샌드위치 만들기, 학둥지 바자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 “학둥지는 마을의 주인인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강좌, 마을예술가가 참여하는 소박한 음악회 등이 열리는 공간이 될겁니다. 학둥지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따뜻한 마을 공동체의 플랫폼 몫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탤 예정입니다.” 회의를 통해 민주주의를 훈련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을을 만들어가겠다는 홍 위원장의 약속이다.
윤승일 기자 nagneyoon@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