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인쇄업체서 벤젠 6% 검출

초점& 발암물질 관리 사각지대 드러나…“동일 제품명도 성분 달라”

등록 : 2025-09-25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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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 5간담회의실에서 열린 서울 도심 제조업 중 하나인 인쇄업 발암물질 노출 위험 개선 토론회 모습.

2013년에도 동일 문제 확인
지자체 차원 관리체계 주장도

서울 도심 인쇄업체 밀집지역에서 사용하는 세척제에서 1급 발암물질인 벤젠이 최대 6% 검출되는 등 심각한 화학물질 관리 실태가 드러났다. 심지어 동일한 제품명을 가진 세척제임에도 사업장별로 전혀 다른 성분이 확인돼 관리 체계의 문제를 드러냈다.

정우철 이대서울병원 국가검진센터장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인쇄업 발암물질 노출 위험 개선 토론회'에서 서울노동권익센터, 서울근로자건강센터와 함께 2025년 서울지역 인쇄업체 26개 영세 사업장 종사자 대상 특수건강검진을 통해 확인한 생물학적 노출지표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벤젠이 체내에서 대사된 뒤 소변으로 배출되는 t-t뮤콘산이 15명 중 10명에게서 검출됐다. 기준치(500㎍)를 초과한 사례(524.42㎍)도 1명 확인됐으며, 100㎍을 넘는 고농도 검출자도 3명에 달했다.

정 센터장은 “벤젠을 사용한다고 신고한 사업장이 없었고 엠에스디에스(MSDS)에도 벤젠 성분이 표기되지 않았는데 뮤콘산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MSDS는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근로자에게 유해성과 위험성을 알리는 물질안전보건자료(Material Safety Data Sheet)를 의미한다.


조사에서는 전날 야간 인쇄작업을 한 근로자는 기준치를 초과하는 높은 수치가, 낮 작업자는 중간 정도, 관리직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가 나와 작업량과 노출 정도의 명확한 상관관계가 관찰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벌크시료 분석 결과다. 뮤콘산이 검출된 사업장에서 한 달 뒤 시행된 벌크시료 분석에서는 벤젠이 검출되지 않았던 반면, 다른 사업장에서는 벤젠이 6%나 검출됐다. 이에 대해 정 센터장은 “똑같은 제품명을 가진 세척제인데도 사업장별로 전혀 다른 성분이 나와, 마치 사과주스를 샀는데 어떤 곳에서는 양파즙이 들어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비유했다. 유기화합물에서 MSDS상 벤젠 성분명이 없는 경우 벤젠은 보통 1% 미만으로 관리되는데, 6%는 일부러 섞지 않으면 나오기 어려운 수치다.

현장 조사 결과 심각한 유통구조 문제점도 지적됐다. 재료상에서 말통(대용량통)으로 세척제를 배달하면서 제품명이나 성분 표시 없이 공급하는 경우가 많았다. 라벨이 있더라도 내용물과 일치하지 않는 사례도 확인됐다. 서울근로자건강센터 관계자는 “사업주들이 재료상에 ‘세척제 갖다달라'고 주문하면 뭐가 들어 있는지 모르고 갖다 쓰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토론회에서는 특수건강검진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됐다. 윤진하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는 “인쇄업 특수건강검진 수검률이 7%에 불과하다”며 “업무상 질병 판정위원회에서 인쇄업 벤젠 노출로 인한 백혈병을 인정해주지만, 많은 근로자가 이런 정보에 접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수건강검진은 유해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있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무적인 건강검진이지만 이 제도 자체를 모르거나 알더라도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한편, 현재순 건강과생명을지키는사람들 대표는 “이번 조사 결과는 2013년 조사 때와 똑같은 결과”라며 “10년 동안 정부가 적극 대응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2022년 경남 창원 두성산업과 김해 대흥알앤티에서 세척제로 인한 급성중독자가 대량 발생했을 때도 MSDS에는 해당 독성물질이 기입되지 않았다”며 “MSDS 허위 기재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영세 인쇄업체 관리를 개별 사업주에게만 맡기는 것의 한계도 지적됐다. 정우철 센터장은 “관리를 영세 사업장 사업주 개인에게 맡기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며 중앙 정부가 시군 단위까지 관리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금속노조 서울지부 소속의 한 참석자는 “중구, 종로구 등 도심 지역에 인쇄업체가 모여 있는 만큼 지자체가 책임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나아가 도심권서울시노동자종합지원센터 나경훈 센터장은 “현장 노동자나 사업주들이 화학 성분을 모르는 상황인데 사용자들이 알아서 잘 사용하라고 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세척제를 만드는 제조업체부터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고 정부도 유통 과정을 세세히 파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종일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기준과장은 “MSDS상에 없던 물질이 검출된 것은 유해인자 파악 단계부터 문제”라며 “유통과정에서 어느 단계에 문제가 생기는지 추적관찰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환경부 화학물질안전원 윤준헌 과장은 “올해 8월 화학물질관리법 개정으로 벤젠 함량 기준이 8% 이하에서 0.1%로 대폭 강화됐다”며 “2028년 1월부터 완전 적용되면 관리가 더 엄격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현행 유해인자별 특수건강검진을 업종별 검진으로 전환하고, 석면 등에 적용되는 건강관리수첩 제도를 인쇄업까지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정 센터장은 “영세 사업장에서는 작업환경측정이나 MSDS 확보가 어려운 만큼 업종별 특수건강검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승운 서울노동권익센터장은 “인쇄업 종사자에 대한 특수건강검진을 지원해왔는데 벤젠 노출 위험을 확인한 만큼 산업보건서비스가 실효성 있게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용우 의원(더불어민주당), 김위상 의원(국민의힘), 정혜경 의원(진보당)이 공동 주최했다.

글·사진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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