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공유
지난 25일 낮 38도 폭염 속에 서울지하철 서대문역에서 출발해 종로구 행촌동 언덕마을 이면도로를 올라오는 ‘종로 05번’ 마을버스.
“날도 더운데 운전면허증을 반납했으니 먹을 것을 어떻게 사오나?” “병원 가서 약도 타야 하는데.” “늙으니까 서러운 일이 자꾸 늘어.” “당장은 마을버스 요금이 오르더라도 운행은 계속하겠지만 적자 노선은 배차 간격이 길어지고 결국 운행 중단을 하게 되지 않겠냐.” 지난 7월25일 한낮 38도 폭염을 피해 종로구 행촌동 언덕마을 사랑방에 모인 어르신들의 얘기는 마을버스로 모아졌다. 서울시와 대립 중인 서울특별시 마을버스 운송사업조합(이하 마을버스조합)이 오는 9월1일 통합환승할인제에서 철수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걱정하며 한마디씩 했다.
마을버스가 좁은 이면도로에 불법주차된 승용차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언덕을 오르고 있다.
현재 서울 마을버스 업체 수는 140개로 이들이 운영하는 노선 수는 252개, 운영 중인 버스는 약 1600대, 운전기사는 3천여 명에 이른다. 시내버스의 경우 2004년 서울시 통합환승할인제 실시에 따라 준공영제로 전환한 사업자는 현재 64개로 이들은 버스 약 7400대, 노선 수 389개를 운영 중이다. 마을버스와 시내버스를 합치면 하루 약 9천 대가 서울시민의 발이 돼 도로를 누비고 있다.
마을버스조합 관계자는 서울시와의 갈등에 대해 “과거 서울시는 마을버스 요금을 2~3년에 한 번씩 올려줬는데 2004년 통합환승요금제 시행 이후에는 요금인상 주기가 평균 5~6년으로 늘어지다가 2015년 1천원으로 인상한 후 8년이 지난 2023년에야 200원 올려줬고, 그사이 대부분의 업체가 누적된 적자로 빚이 늘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서울시는 그간의 물가나 임금인상률 등 조례에서 정한 원가항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지 지난해 인상폭이 컸다는 이유만으로 매년 연초에 결정하던 재정지원 기준액(운송원가에서 이윤을 제외한 금액)을 올해는 아직 결정하지 않고 전년도 기준액인 48만6098원을 적용해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참고로 경기도는 52만7681원(2023년 기준)이고 부산은 51만2708원(2024년 기준)이다. 지난해 운송원가(45만7040원)가 2019년 대비 6.3% 인상된 반면 시내버스는 20% 넘게 인상된 것으로 안다. 마을버스의 경우 수익금에서 운송원가 손실분을 전액 지원하는 것도 아니다. ‘재정지원한도액’이란 걸 둬 최대 23만원까지만 지원한다. 이는 마을버스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고 했다.
대림3동 서울특별시 마을버스 운송사업조합을 경유하는 ‘영등포 04번’ 마을버스 내부 모습.
서울시의 생각은 다르다. 서울시 관계자는 “2019년 일평균 마을버스 운행 횟수는 128회였는데 192억원을 지원했고, 올해는 97회로 운행이 24% 축소됐음에도 지난해보다 51억원 늘어난 412억원을 지원할 계획이었다”고 밝혔다. 시는 마을버스 운송수입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음에도 지원금을 더 올려달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이어 “마을버스조합은 마을버스 업체의 경영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2024년도 외부회계감사 결과를 보면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는 “2023년 8월 요금인상으로 전체 140개사 중 105개 업체가 외부회계감사를 받았는데 이 중 67곳이 이익이 난 것으로 확인됐고, 마을버스 운송수입도 2022년 1738억원, 2023년 1925억원, 2024년 2343억원으로 증가 추세에 있는 것으로 보아 회계감사 자료를 제출하지 않은 업체 35곳 중 상당수도 이익을 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나타난 여러 문제를 포함해 곧 마을버스 정책 전반을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마을버스조합은 지난해 회계감사를 받지 않은 35개 업체가 재정지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신청하지 않은 것이지 흑자를 냈기 때문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마을버스조합 관계자는 “2023년 회계연도에 회계감사를 받지 않은 업체 35곳 중 적자 업체는 15곳이었다”며 “당기순이익을 낸 67개사도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회사가 28곳, 부채비율이 200% 이상이거나 자본잠식으로 부채비율 산정이 불가능한 회사가 45곳, 유동비율이 100% 미만인 업체가 37곳에 이를 정도로 대부분 재정 여건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또 “현재 업체들은 평균 15억원의 부채를 안고 있으며 지난해 말 기준 평균 부채비율은 736%로, 대출을 받기 위해 사장이 직접 운전하고 가족이 무급으로 경리를 보는 등 극도로 비용을 줄여 겨우 흑자로 만들었는데 이를 두고 진정한 의미의 ‘흑자기업’이라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동작구가 전국 최초로 선보인 자율주행 마을버스.
운행 여건도 열악하다. 한 구청 관계자는 “시내버스에 비해 노선 길이가 상대적으로 짧지만 운전하기 어려운 언덕길, 좁은 이면도로가 대부분이고 탑승객도 고령층이 많아 운전의 어려움과 사고 위험성이 크다”고 설명하며 “반면 시내버스 기사 평균 급여 수준에 훨씬 못 미치는 낮은 급여와 복지로 젊은이들이 지원을 꺼리고 대우가 좋은 시내버스를 선호하는 바람에 마을버스 운전사는 대부분 60~70대이고 그마저도 지원자가 적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누리집에 공개한 지난해 말 기준 대중교통 이용자 수는 10년 전인 2014년 대비 14% 줄어든 942만 명이다. 지하철 이용자는 6%, 시내버스 이용자는 18%, 마을버스 이용자는 무려 31%가 줄었다. 지난해 시내버스 이용자는 373만 명, 마을버스 이용자는 84만 명으로 집계됐다.
“사장이 직접 운전, 가족이 무급 경리 보며 낸 ‘흑자’”
급여 낮고 근무 여건 열악해
젊은 기사 시내버스로 몰려
젊은 기사 시내버스로 몰려
마을버스 이용자 10명 중 6명은 시내버스나 지하철 환승자다. 환승 비율이 높은데 마을버스 기본요금은 시내버스와 지하철보다 300~350원 적은 1200원으로, 1500~1550원 받는 통합환승요금을 지하철, 버스, 마을버스의 요금 비율로 정산받게 돼 마을버스의 수입이 가장 적다.(2면 표 참조)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시내버스는 마을버스보다 2배 이상 장거리를 운행하며 차량도 마을버스보다 대부분 대형임을 고려해 요금이 차등 설정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해마다 등장하는 마을버스 손실지원금 논란의 근본 원인은 지원 구조에 있다. 통합환승할인에 참여하는 지하철과 시내버스는 환승손실금을 시로부터 보장받는 반면 마을버스는 민간 부문이면서도 시의 통제로 환승손실금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요금도 마음대로 올리지 못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마을버스 조합 관계자는 “2007년 서울-경기 통합환승할인제 시행 때 ‘버스 간 환승손실금은 관할 지자체가, 경기버스와 수도권 전철 간 환승손실금은 경기도가 보전한다’고 명시한 것처럼 서울 마을버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9년 제정된 ‘서울특별시 마을버스 재정지원 및 안전 운행기준 등에 관한 조례’는 ‘시장은 예산의 범위 내에서 운송수입금 등이 재정지원기준액에 미달하는 사업자에게 그 부족분을 지급할 수 있다’(조례 제3조 4항)고 규정했을 뿐 지원여부와 규모는 서울시 판단에 따르도록 함으로써 매번 서울시와 마을버스 조합이 재정지원기준액을 두고 소모적인 대결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자치구들은 마을버스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금천구는 마을버스 업체의 운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운전기사에게 월 30만원의 처우개선비를 지급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말 131명이던 마을버스 운전기사가 현재 152명으로 늘었고 운행 대수도 58대에서 67대로 늘어났다. 성북구는 고지대 거주 어르신을 위해 11인승 승합차를 개조한 차량을 마을버스로 운행 중이다. 동작구는 전국 최초로 이달부터 자율주행 마을버스를 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관련기사 6면) 자치구들은 또 노후차량 교체를 지원하거나 공영차고지를 무상으로 제공하기도 한다.
국가든 기업이든 가정이든 돈을 지출하는 방법은 운영 철학에 따르기 마련이다. 지난 7월17일 국회에서 열린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최기상 의원(서울 금천구)은 이렇게 말했다.
“작년 기재부가 국회에 낸 세법개정안에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인하, 기업상속공제확대 내용이 있었다. 대한민국 기재부 공무원들이 누구를 만나고 다니길래 국회에 와서 이런 거 해야 한다고 하는지 황당했다. 이거 하면 세수가 20조 감소한다더라. (반면)장애인에게 절실한 특별교통수단 차량 관련해서 271억원을 요청했는데 이건 무산시켰다. 이동권은 거주권과 함께 ‘자유 중의 자유’ 아닌가?”
글·사진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