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이 사람

“임대료 억제 상생협약, 주민 공감대 넓히는 소득 커”

전국 첫 ‘젠트리피케이션 조례’ 만들고 아카데미 기획한 이진영 성동구 상호협력팀장

등록 : 2017-06-22 15:57 수정 : 2017-06-22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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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오후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 책거리에서 이진영 성동구 상호협력팀장이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상생 공동체 아카데미‘ 수강생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마포구 연남동 ‘경의선 숲길’은 섭씨 30도까지 올라간 날씨 때문인지 의외로 한적했다. 2015년 6월 버려진 철길에서 공원으로 재탄생한 뒤, 뉴욕의 도심 속 공원인 센트럴파크처럼 아름답다는 의미에서 ‘연트럴파크’란 별명을 얻으며 핫 플레이스로 자리 잡았다.

조용한 경의선 숲길을 거닐던 20여명이 한마디씩 했다. “폐철길이 멋지게 바뀌었네요.” “골목길 안에도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많아요.” “제가 사는 마장동에도 철길이 있는데 이렇게 바꾸면 좋겠네요.” 대체로 긍정적 평가가 오가는 중에 “근처에 친구가 살아서 밤에 와봤는데 사람이 엄청 많았어요. 길에는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고, 몇몇은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는 등 난장판이었어요”라며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성동구가 지난 8일 처음 개설한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상생공동체 아카데미' 수강생들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등 다른 구민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 성동구민이었다. 신옥분(59)씨는 서울숲 바로 옆인 성수동에서 30년 동안 살고 있다. 최근 예술가와 사회적기업 등이 모여들어 이른바 ‘뜨는 동네'로 주목받으면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됐다. “평범한 주택가였는데 새로 이사 온 주민들이 상가로 재건축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하는데, 좋게 바뀌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주민 60%가 바뀔 정도로 이웃이 많이 떠나 마음이 싱숭생숭해요. 기대 반 걱정 반입니다.”

아카데미를 기획한 이진영 성동구 지속발전과 상호협력팀장은 “임대료가 급상승해 상권 형성에 기여했던 기존 세입자가 밀려나는 것도 문제지만, 쓰레기와 소음 문제로 주민이 피해를 겪는 것도 큰 문제다. 성수동도 관광객이 주택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사진을 찍는 바람에 사생활 침해 민원이 많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지난해 3월9일치 <서울&> 창간호에서 서울의 25개 자치구청장들이 도입하고 싶은 으뜸 정책으로 뽑은 성동구의 ‘지역공동체 상호협력과 지속가능발전구역 지정에 관한 조례’(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만든 당사자이다.

그러나 2015년 초 조정기획단으로 발령받을 때까지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었다. 성수동에서 임대료가 급격히 오르자 정원오 구청장이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할 수 있으니 먼저 대책을 세워보라”고 지시해 알게 되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과 대학로 문화지구, 전북 전주 한옥마을 등의 사례와 규정을 조사하면서 조례안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지만, 국내에서 첫 시도라 큰 어려움을 겪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먼저 간다는 게 정답도 없고, 생각하는 것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아 답답할 때도 많아요. 그때마다 단장님과 과장님이 ‘아무도 안 해봤는데 답이 어디 있어. 우리가 하면 정답이지’라며 북돋워주셔서 기운을 얻곤 했습니다.”

2015년 9월 조례를 제정한 뒤에는 건물주와 임차인끼리 ‘상생협약’을 체결하도록 주선했다. 단어도 낯선 젠트리피케이션을 이해시키고 ‘임대료 상승을 자제하겠다’는 내용의 협약에 서명하도록 건물주를 설득하는 작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에 가까웠다. ‘관에서 내 재산권에 왜 관여하느냐’며 반발하는 건물주가 더 많았지만 날마다 방문하고 전화를 걸었다. 처음 통화에서는 마치 해줄 것처럼 답해놓고 다음에 전화를 걸면 수신 거부로 등록해둔 건물주도 있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지 맙시다’ ‘건물주와 임차인이 함께 상생하고 공존해야 합니다’라고 쓴 유인물을 길에서 나눠줄 때는 잡상인 대우도 받았다. 그는 “상생협약은 인센티브도 강제력도 없는 상징적인 내용에 불과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잘한 일이었던 것 같다. 그때 (상생협약 과정에서) 주민들과 공감대를 넓게 형성했기에 여러 정책을 차곡차곡 얹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팀장은 지난해 초 젠트리피케이션 전담 부서인 지속발전과가 새로 만들어지면서 상호협력팀장으로 부임했다. 지속가능정책팀, 발전구역지원팀 등 다른 팀과 유기적으로 협력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지방정부협의회 구성, 상가건물 상생 임대차 표준계약서 제작·배포,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위한 공공임대상가 매입, 프랜차이즈 업종의 신규 입점을 제한하는 서울숲길 지구단위계획 결정 등을 선도했다. 성동구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정책은 지난 5월 초 국민대통합위원회가 주관한 2017년도 ‘국민통합 우수사례 발굴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또 성동구가 앞서 주장했던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특별법 제정이 최근 대통령 공약 사항에 포함되면서 직원들도 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젠트리피케이션은 관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사람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막을 수 없는 문제다. 이 팀장이 아카데미를 기획한 취지도 같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려면 지역공동체의 역량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주민이 계속 공부하고 토의하면서 좋은 방향으로 지역을 바꿔나가는 수밖에 다른 해법은 없어요.”

원낙연 기자 yanni@hani.co.kr

사진 성동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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