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빚는 화음, ‘함께’ 연주하다

초점& 성북구립장애청소년합주단이 음악으로 만들어가는 ‘더불어 사는 세상’

등록 : 2025-06-19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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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서울 동선동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 강당에서 성북구립장애청소년합주단이 연습하고 있다. 성북구 제공

지난 9일 오후 서울 동선동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 4층 강당은 다양한 악기들이 제각각 조율하는 소리로 가득했다. 강당은 매주 월요일 성북구(구청장 이승로)가 운영 중인 성북구립장애청소년합주단 단원들의 연습장이 된다. 잠시 뒤 정하진 지휘자가 등장해 단원들과 잘 지냈느냐는 인사를 나눴다.

이어 지휘자의 지휘가 시작되자 잠시의 정적을 깨고 모든 악기가 저마다의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베이스의 현악기와 플루트, 클라리넷의 관악기, 그리고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다. 일부 단원은 악보 없이 눈을 감은 채 연주에 몰두했고 다른 일부 단원은 악보와 지휘자를 번갈아 보며 연주했다.

단원들의 악기와 연주 모습은 달랐지만 모두가 하나로 완성된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진 성북구립장애청소년합주단은 음악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음악으로 ‘장애인 인식 개선'에 나서다
성북구립장애청소년합주단은 2009년 비장애인과 장애인들이 함께 활동함으로써 장애인 인식을 개선하려는 목표로 시작됐다. 한때 25명까지 늘었던 단원은 코로나19를 겪으며 줄어들어 현재 18명인데, 이 중 비장애인 단원은 9명이다. 장애인 단원들은 시각장애인인데 발달장애 등 다른 장애를 동시에 가진 경우도 있다. 단원들의 연령대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다양한데 비장애인 단원의 경우 24살까지 활동할 수 있다. 음악을 전공하려는 단원도 있고 음악이 좋아 취미로 즐기려는 단원도 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하나같이 높아 보였다. 피아노를 전공해 2021년 서울대 작곡과에 시각장애인 최초로 입학해 화제가 된 유지민씨도 이곳 창단 멤버로 지금까지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9일 서울 동선동 성북시각장애인복지관 강당에서 성북구립장애청소년합주단 정하진 지휘자가 지휘하고 있다. 성북구 제공

우연에서 필연으로…지휘자의 특별한 사명
정하진 지휘자는 8년째 이 합주단을 이끌고 있다. 그의 음악 여정은 프랑스 유학에서 6년간 비올라와 지휘 전공을 마치고 귀국하며 시작됐다. 장애인과 아무런 인연이 없던 그는 친구 권유로 발달장애인 오케스트라를 3년간 지도하며 장애 청소년과 첫 인연을 맺은 뒤 2017년 성북구의 장애청소년합주단 지휘자 채용공고를 보고 선뜻 지원했다.


“친구 권유로 우연히 시작됐지만 이제 저에게는 장애인 음악 지도가 ‘사명이자 필연'이 됐습니다.” 그는 단원들은 물론, 부모들과도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며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이 더욱 남달라졌다고 밝혔다. 그는 “음악이라는 언어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기쁘다”며 아이들을 보면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니 “문제 될 게 전혀 없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연습하고 연주하는 과정에 어려움은 없을까. 여러 명의 단원에게 물어봤지만 모두 한목소리로 “문제 될 게 전혀 없다”고 답했다. 바이올린 연주자 강윤서 학생은 비장애인 짝 언니가 함께 걸을 때 걸음이 빨라 “좀 천천히 가줘”라고 말했더니 그다음부터는 걸음에 맞추더라며 서로 조금씩 맞추고 배려하는 것을 배워나간다고 말했다.

정하진 지휘자는 “발달장애를 가진 단원 중에는 가끔 상동 행동(반복 행동)을 하거나 소리에 예민한 경우가 있는데 비장애 친구들은 처음에만 놀랄 뿐이지 점차 익숙해지면서 친구들을 기다려주고 이해하게 됩니다. ‘서로 조금 다를 뿐’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8년간 경험이 녹아 있는 설명이다.

걸음을 맞춰 함께 무대에 오르는 단원들
무대에 오를 때 장애 단원들은 도움이 필요하다. 턱이나 계단, 전기선 등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비장애인 친구들이 짝이 돼 시각장애 단원과 함께 걸음을 맞춰 무대에 오른다. 정 지휘자는 이 순간이 단원들의 끈끈함을 더하고 서로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클라리넷 연주자인 이연진 학생은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비장애인 친구가 연주회 때나 무대 이동할 때 항상 같이 가주니 너무 고맙다”고 했다.

단원들은 도움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키워나가고 있다. 정 지휘자는 “비장애인 단원의 부모가 자녀의 배려심과 정서적 안정감 등이 높아진 것에 만족해 비장애인 동생도 함께 단원 활동을 하게 된 경우도 여럿”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악보를 외우고 암전 공연에도 도전
매년 한 차례 열리는 정기연주회는 합주단에 가장 크고 중요한 행사다. 올해로 16회째인데 오는 11월25일 성북꿈빛극장에서 열린다. 이에 앞서 7월 강원도 홍천 석화초등학교, 10월 정릉교회 등 초청연주회도 예정돼 있다. 또 구청이나 관내 행사 초청 연주, 매년 4월 지하철 성신여대입구역에서 열리는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연주 등 다양한 활동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정기연주회에서 10여 곡을 연주하는데, 장애 단원들은 악보를 통째로 외워야 한다. 악보뿐만 아니라 본인의 연주 동작, 호흡, 지휘자의 예비박 구령 등까지 포함해서다.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단원들은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 한계를 뛰어넘고 있다.

지난 2023년 정기연주회에서 이들은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할 때 무대 조명을 모두 끈 채 ‘암전 연주'를 했다. 비장애 단원과 관객들까지 잠시나마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느끼며 그들과 공감하려는 시도였다.

서울 자치구에서 문화 예술 분야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활동하는 경우는 이 합주단이 처음이다. “음악뿐 아니라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활동이 확산돼 장애인의 참여 기회가 늘어난다면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쳐 장애인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공존의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합주단원들은 바람을 나타냈다. 성북구립장애청소년합주단 활동은 ‘함께’의 가치를 실천하는 작지만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하변길 기자 seoul0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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