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제 역세권 개발이익 주민에게 돌아가야”

초점& 유진상가·인왕시장 일대 55년 만에 개발, 서대문구가 사업시행자로 나서

등록 : 2025-05-08 14:21 수정 : 2025-05-0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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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홍제역 역세권 활성화 사업 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유진상가(왼쪽 사진)·인왕시장(오른쪽) 일대가 재개발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서울 홍제동에 50층 주상복합 건립추진’. 17년 전 기사 제목 중 하나다. 지하철 3호선 홍제역 인근 유진상가(유진맨션)·인왕시장 지역은 차로 광화문 10여 분 거리의 도심 인접 주거·상업지역이지만 시설 낙후와 안전문제로 주민들이 불안을 호소해온 지 오래다. 지은 지 55년 된 유진상가와 인왕시장 주변은 2003년 균형발전 촉진지구 지정 후 2010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됐으나 진전이 없다가 2017년 지정 해제를 거치는 등 개발이 지연됐다.

유진상가는 1970년에 지어졌다. 홍제천을 덮어 그 위에 세운 ‘유진맨숀’은 종로의 세운상가, 인사동 낙원상가와 함께 당시 신개념 건축인 ‘주상복합 아파트’의 원조로 1~2층은 상가로, 3~5층은 중대형 아파트로 지어졌으며 고위공직자와 연예인 등 유명인들이 주로 거주했다고 한다. 현재 상가에는 청과물, 의류, 떡집, 식당 등 60여 개 점포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인왕시장은 조선시대 중국으로 가는 의주로 홍제교 주변의 떡집거리가 1960년대부터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발전했으며 현재 100여 개 점포가 운영 중이다.

유진상가·인왕시장 일대 개발이 다시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2022년 6월 이성헌 구청장(국민의힘)이 당선되면서다. 후보 시절부터 유진상가 개발 필요성을 역설해온 이 구청장은 당선 직후부터 적극 주민과의 소통에 나섰고 주민 동의율 74.1%로 이 일대를 ‘서울시 역세권 활성화 사업’ 후보지로 선정되도록 견인했다. 이런 노력 끝에 서대문구는 지난달 제6차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로부터 홍제동 298-9번지 일대(4만2515㎡)에 대한 ‘홍제역 역세권 활성화 사업 정비구역 지정 및 정비계획(안)’을 승인받고 사업 추진의 첫발을 뗐다. 2003년 균형발전 촉진지구 지정 22년, 2010년 재정비촉진지구 지정 15년 만이다. 유진상가와 인왕시장 일대가 개발되면 수변과 상업·업무, 복지를 아우르는 도심 속 복합공간이 될 전망이다.

구 관계자는 “이번 정비계획에 홍제천 복원으로 친환경 수변도시 조성, 지상 최고 49층 규모의 주상복합단지 건립, 문화·복지·업무시설 유치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았다”며 “용적률 700% 이하, 최고 높이 170m 이하의 건축이 가능해 총 1121가구 공동주택(임대 141가구 포함)이 들어설 예정이며, 지하 1층~지상 4층에는 상업·문화·복지시설이 조성된다”고 설명했다. 또 개발에 따른 공공기여를 통해 그동안 서대문구가 역점사업으로 내세운 ‘인생케어센터’도 포함했다. 모든 주민에게 생애주기에 따른 맞춤 복지지원을 하겠다는 목표로 모자건강증진센터, 서울형키즈센터, 노인복지관, 노인일자리 작업장, 중장년 학습일 연계센터, 창업지원센터, 공공산후조리원, 다목적 체육관, 공공도서관 등을 한데 모아 주민 대표 커뮤니티센터가 되도록 할 계획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이 사업이 주민이 주도하는 조합 방식이 아니라 서대문구가 사업시행자로 나선 공공 방식으로 추진된다는 점이다. 이상배 구 정책자문위원은 “시장 상인, 유진상가 소유자, 세입자 모두 입장이 다르다. 생업이 중단될까 우려하거나 기대보다 낮은 보상에 실망하는 경우도 있다. 조합 방식은 주민 간 의견 대립이 커질 수밖에 없고, 신탁 방식은 리스크가 크기에 결국 공공이 주도하는 방식이 적합하다”며 “조만간 도시정비법 제47조에 따라 5명에서 25명까지 소유주 과반 동의로 주민대표회의가 꾸려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공 방식에서는 주민 요청에 따라 시·구 또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공공기관이 사업시행자로 나서 사업을 총괄하고 자금을 조달한다. 주민들은 주민대표회의를 구성해 철거, 이주, 보상, 사업비 협의, 임대주택 공급, 시공사 추천, 관리처분계획 수립 등 협의에 참여한다.

정비구역 지정 소식에 유진상가에서 40년 넘게 살며 과일 상점을 운영하는 70대 상인은 “예전엔 이곳이 가장 번화한 곳이었는데 무악재에서 불광동까지 통일로변이 개발돼 깔끔해지는 동안 이곳만 유난히 오랜 기간 소외돼왔다. 이제라도 재개발하게 돼 다행”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다른 목소리를 내는 상인들도 있었다. 인왕시장에서 곰장어, 칼국수 등을 파는 80대 노부부는 “여기 상인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아 재개발 뒤에도 장사를 계속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재개발에 별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구역 지정으로 곧 시장이 문을 닫을 거라는 생각에 오히려 손님이 더 줄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양념과 새우젓을 판매하는 89살 상인도 “보상이나 잘 받고 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장사는 이젠 그만해야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한 상인은 “유진상가 대부분을 롯데그룹 자회사인 시에스(CS)유통이 소유 중이고, 인왕시장도 1인이 지분 대부분을 가지고 있다는데 이곳을 개발하면 그들만 큰 이익을 보게 되니 ‘랜드마크’ 뭐 이런 말들이 남의 이야기로 들린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서호성 서대문구의회 민주당 원내대표는 “거대한 개발 프로젝트로 소유자, 상인, 세입자 등 이해관계자가 많다. 구역 지정이 됐으니 향후 재개발 절차와 예산 집행 상황을 면밀히 확인하겠다”라며 “특히 파격적인 용적률 혜택과 공공자금 투입, 규제 완화에 따른 대규모 개발이익이 예상되는 만큼 혜택이 지역과 주민들에게 상당 부분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이성헌 구청장은 “최근 홍제천인공폭포가 외국인들의 핫플레이스로 인기다. 안산황톳길, 허브원과 함께 홍제폭포로 이어지는 힐링코스는 사계절 다양한 행사와 문화콘텐츠로 채워지고 있다. 이번 홍제역 역세권 활성화 사업 정비계획안 통과로 세검정에서부터 한강까지 이어진 홍제천변은 온전한 수변감성도시 실현에 한발 더 다가섰다. 향후 강북횡단선 유치와 함께 홍제·홍은동 일대는 서울 서북권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고 지역 미래 성장동력이 될 수 있도록 구의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이동구 기자 donggu@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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