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넘버원, 가락시장

서울, 이곳 l 송파구

등록 : 2025-04-24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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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몰. 3호선과 8호선 가락시장역과 바로 이어졌다.

예전엔 외국에 여행을 가도 내리 현지식만 먹었는데, 언젠가부터 현지식만 연달아 먹으면 꼭 탈이 나고 만다. 가벼우면 소화 장애, 심하면 토사곽란까지. 그 병은 한국에와서 잡곡밥에 두부 썰어 넣은 된장국, 나물 반찬에 김치로 소박하게 차린 한식을 먹어야 낫는다. 20대엔 한두 끼니 걸러도 끄떡 없었는데, 이제는 먹어야만 기운이 난다. 식약동원(食藥同源)이고, 밥이 힘의 원천이다. 오늘 소개할 곳은 서울과 수도권의 먹거리 유통을 책임지는 곳, 가락시장이다.

서울살이 20년이 넘었어도 그동안 가락시장 와볼 생각을 못했다. 평소 재래시장 구경을 좋아하지만, 가락시장은 도매시장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고작 네 식구 살림에 가락시장까지 갈 일이 있겠냐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친한 언니를 따라 이른 아침 가락시장을 방문한 이후로 나는 가락시장에 완전히 반해버렸다. 가격이 마트에는 비할 바가 아니고, 다른 재래시장들과 비교해도 더 저렴한 곳을 찾기 어렵다. 가장 큰 장점은 싱싱함과 구색의 다양함이다. 가락시장에 없으면 다른 곳에도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 그대로 대한민국 넘버원, 시장 중의 시장이다.

지하 1층에선 채소와 과일을 살 수 있다.

가락시장은 채소나 과일, 수산물 등의 경매가 이뤄지는 ‘경매장’과 ‘가락몰’로 구성돼 있다. 경매장에선 저녁이 되면 전국 산지에서 온갖 농수산물이 모여들기 시작해 품목별로 새벽까지 경매가 이뤄진다. 물량이 적게 출하된 날은 가격이 오르기도 하고, 같은 원리로 가격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 농수산물의 새로운 가격이 이곳에서 형성된다.

낙찰받은 중도매인들은 각각의 상회로 물건을 가져가 소매상이나 최종 소비자에게 판매하는데, ‘가락몰’이 그런 곳이다. 경매가 이뤄진 농수산물이 차례로 입고되면 소매상과 소비자들이 싱싱한 물건을 이곳에서 산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 가락시장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이 시간대엔 나처럼 한 봉지씩 사가는 일반 소비자에겐 물건을 팔지 않는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도 대량으로 물건을 구매할 때 는 가락시장을 이용하면 좋다. 싱싱한 농축수산물을 확실히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소비자는 아침 7~8시에 시장을 방문할 것을 추천한다. 낮에도 문을 연 가게들이 있지만 아침에 가야 훨씬 더 다양한 농수산물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3층 전문식당가로 기본상차림 비용으로 먹을 수 있다.


내가 산 품목은 제주산 취나물과 오이, 대저토마토. 냉이된장국을 좋아해서 냉이를 사고 싶었는데, 냉이는 이제 뻣뻣해져서 못 먹는다고 한다. 나는 냉이 대신 흙달래를 샀다. 잘 씻어 냉동실에 넣어두고 달래된장국을 끓여 먹을 것이다. 이 밥을 먹고 식구들이 각자의 터전에서 힘내서 다닐 걸 생각하면 뿌듯하다. 시장에서 채소를 사보니 값도 싸지만 무엇보다 양이 푸짐하다. 마트에서 저울에 달아 조금씩 판매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예전에 우리 어렸을 때는 반찬을 만들어 이웃이랑 나눠 먹기도 했는데 언제부터 그런 문화가 사라졌나 생각해보니 마트나 인터넷으로 장을 본 뒤부터가 아닌가 싶다. 조금씩 사서 겨우 가족들 한 끼니 먹는 규모로는 이웃과 나눠 먹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처럼 시장에서 푸짐하게 사다 반찬을 만들어 먹어야 인심도 쓸 수 있지 않겠는가?

수산물 동에서 회와 다양한 생선을 살 수 있다.

가락시장은 3호선과 8호선 가락시장역에 바로 붙어 있어 교통이 좋아 지하철로 갔는데, 만약 차를 몰고 갔더라면 아마 보는 족족 샀을 것이다. 들고 올 자신이 없어 욕심껏 구매하지 못했으니 분명 조만간 다시 들르게 될 것 같다. 다음에는 수산물 시장을 공략할 생각이다. 특히 회는 참돔과 광어 조합으로 큰 접시 하나가 2만원이었는데, 가격을 들으면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래서 수산물 시장을 가리켜 한 번도 와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오는 사람은 없다고들 말하나보다.

대저토마토 2.5㎏ 한 상자를 1만6천원에 샀는데, 판매하시던 할머니 말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싸게 주고 싶어도 사람이 와야 싸게 주지!” 불경기 한파는 이렇게 큰 시장도 피할 수 없나보다. 날짜로는 봄의 한 가운데를 지나고 있는데 날씨가 여전히 변덕스럽다. 부디 변덕스러운 봄 날씨도, 시장에 부는 찬바람도 이제는 그만 꺾였으면 좋겠다.

글·사진 강현정 작가(전 방송인) sabbuni@naver.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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