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어지러울 때, 집중의 화살을 날린다

국궁 배우기 좋은 서울 화살 터, 남산 석호정·종로 황학정

등록 : 2017-04-20 15:13 수정 : 2017-04-2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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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정
“어깨가 올라갔잖아. 힘을 빼야지.” 지난 주말 남산에 있는 석호정 국궁장에 올랐다. 앳된 청년들이 모여 활을 다루고 있었다. 숭실대 국궁동아리 ‘명사’ 회원들이었다. 회장 강주윤(24)씨가 부지런히 신입회원들의 자세를 돌봤다. 새내기 회원 이수빈(20)씨는 “아빠가 ‘활 잡는 사람 치고 허리 굽은 이가 없다’고 하셔서 동아리에 들어왔다”며 흡족해했다. 회원들은 ‘곧 중간고사’라면서도, 넉넉한 표정으로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석호정
화살이 날아가는 곳이 내 마음이다

국궁은 한국의 전통무술이다. 활을 쏘아 표적을 맞혀 승부를 겨룬다. 현재 서울에는 7개의 국궁장이 있다. 서울 도심에서 접근이 쉬운 남산 석호정이나 종로구 황학정을 참관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수련자들의 환한 얼굴이다.

모두가 화평하다. 산세 따라 봄꽃이 흐드러진 날은 정취가 좋아서라고 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도, 바람 부는 날에도, 심지어 미세먼지 예보가 있는 날에도, 서로 “많이 맞히시라” 덕담하고 배려한다. 구경하는 내 몸도 여유가 생긴다.

석호정의 최종식 사범은 “국궁은 낯빛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 사범의 말에 따르면 국궁을 배운다는 건 체력 단련을 넘어 ‘심안’을 여는 일이다. 심안은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과녁 보는 법을 말한다. 얼굴과 마음이 편안해야 활이 잘 나간다는 말이다.

국궁이 양궁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점수를 매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정 사거리도 90m인 양궁보다 멀어 145m나 된다. 과녁판 크기는 폭 2m, 높이 2.67m로, 어디든 화살이 맞으면 명중으로 인정한다. 결국 점수보다 인성이 중요하다. 국궁은 무술이면서 마음을 닦는 학문이다.

활 쥐는 법을 설명해주는 사범
호랑이 꼬리를 당기듯 활시위를 당겨라


석호정에서 직접 활을 잡아보기로 했다. 기초예절을 익힌 뒤, 사범의 지도 아래 먼저 몸에 맞는 연습용 활을 골라 쥐었다. 두 발을 땅에 딛고 단전에 힘을 모았다. 최대한 편안한 표정도 지었다. 깍지손(검지)과 줌손(엄지)으로 활을 쥐는 것까지는 얼추 비슷하게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시위를 당기는 순간이었다. 줄을 잡아당기자 “흐윽!” 소리에 맞춰 팔뚝이 춤을 췄다. 물 밖으로 튀어오른 힘 좋은 잉어를 잡은 기분이었다. 5초를 못 버텼다. 사수의 원칙인 ‘집궁 팔 원칙’에 따르면 ‘호랑이 꼬리를 당기듯’ 해야 한다. 그만큼 탄성이 강하다.

최 사범은 “호흡과 눈빛도 훈련해야 해요. 최소 2~3개월 수련해야 활을 낼 수 있어요. 국궁은 4계절 스포츠라 언제든 찾아와 꾸준히 훈련하기 좋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대한궁술협회에서는 ‘국궁 9계훈’을 정해 활을 잡는 이들이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법을 안내하고 있다.

석호정은 하루 평균 50여명, 주말에는 70여명 정도가 찾아온다. 고등학생부터 팔순의 어르신까지 연령과 성별이 다양하다. 주말 홀로 석호정에 나왔다는 한 시민은 “우리 궁술은 즐길수록 묘한 매력이 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중심을 찾기 쉽다”고 설명했다.

황학정 국궁전시관에 전시된 ‘신기전’
황학정 국궁전시관 ‘활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
전통 활부터 ‘신기전’까지…‘황학정 국궁전시관’

예부터 ‘동이족’(동쪽의 큰 활을 잘 쏘는 민족)이라 했던 만큼 활과 우리 민족의 연관은 깊다. 그 이야기를 살짝 보려면 종로구 ‘황학정 국궁전시관’에 가면 된다.

사직동 사직단에서 인왕산 기슭을 따라 올라가면 서울유형문화재 제25호인 황학정이 있다. 서울에 유일하게 남은 조선 시대 국궁연습장이다. 바로 옆에 자리한 황학정 국궁전시관에서 우리나라의 국궁 역사를 아우르는 유물을 전시한다. 작은 공간이지만, 김홍도가 그린 <국궁> 등 옛 그림 복제품부터 조선 시대 로켓추진화살 ‘신기전’까지, 볼거리가 쏠쏠하다. 단체관람 때 예약하면 ‘활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에도 참여할 수 있다. (문의: 02-722-1600)

서울 국궁장 도움말

어떻게 배우나

가까운 국궁장을 찾아 “활 배우러 왔습니다”라고 하면, 그 정(亭)의 대표인 사두나 사범이 상세히 가르쳐준다. 남산 석호정에서는 8주짜리 정기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서울시 누리집(yeyak.seoul.go.kr)에서 예약을 받는다. 종로구 사직동 주민센터에서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장비와 비용

장비는 활과 화살, 궁대, 깍지가 필요하다. 입문자용 개량궁의 경우 활 가격은 20만~25만원, 화살은 개당 1만원, 깍지는 3만원 선이다. 화살은 15발을 기본으로 하는데, 부러질 경우를 대비해 보통 20여발을 준비한다. 각 정에 연습용 장비가 있어 입문자는 처음부터 장비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

서울 국궁장

황학정 종로구 사직동 산1(02-738-5784)

석호정 중구 장충동2가 산14-21(02-2266-0665)

관악정 관악구 신림10동 산72(02-887-7971)

공항정 강서구 화곡5동 산60-1(02-2698-0507)

영학정양천구 목1동 409-74(010-8549-9974)

수락정 노원구 상계4동 산155-1(02-939-5154)

화랑정 노원구 공릉동 81-1 육군사관학교(02-2197-6125)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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