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서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 통과돼야!

박명희ㅣ소비자와 함께 공동대표 동국대 명예교수

등록 : 2024-05-0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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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발진 피해가 연평균 60건 이상 발생하면서 입증책임을 소비자가 아닌 제조업체로 변환해달라는 요구가 늘고 있다. 사진은 2017년 급발진 사고를 당한 배우 손지창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현장 모습. 손지창 페이스북 갈무리

최근 자동차 급발진 사고가 전국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자동차 급발진 사고는 징조도 없이 무작위로 일어나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의 시민은 무방비로 어디에서나 위험에 노출돼 있다.

손녀를 태운 차량 ‘공포의 질주’ “급발진 의심”, 자동차 급발진 의심되는 사고로 카페를 들이받아 카페에서 차를 마시던 시민들이 피해를 입음, 아파트에서 대리로 차를 옮기던 경비 아저씨가 급발진으로 자동차 12대가 충돌했는데 브레이크 ‘빨간색 등’이 들어왔는데 일어난 사고로 “급발진 가능성”.

이런 기사들이 매주 올라와 소비자는 언제나 불안하다. 대한민국에서 소비자 안전 권리는 보장되고 있는가?

2년 전 강원도 강릉에서 60대가 몰던 차가 앞차와 부딪힌 뒤 700미터 넘게 더 달리다 아래로 추락해 12살 손자 이도현군이 숨지고 운전자가 크게 다친 급발진 의심사고에서 블랙박스에 나타난 동영상을 보면 급발진으로 의심되는 부분이 분명함에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사고 분석 결과는 여전히 운전자 과실이라고 결과가 나왔다. 지난 10년 동안 급발진 의심사고가 발생한 경우가 600건을 넘어 연평균 60건 정도 발생하나 급발진으로 인정된 사고는 0건이다.

그 이유는 급발진의 차량 결함을 증명하는 입증책임이 소비자에게 있어 제조사에서 영업비밀로 제공하지 않는 정보 없이 소비자가 입증하기 불가능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이는 소비자와 기업의 분쟁이기 때문이다.

제조물 책임법에서 입증책임을 소비자가 아닌 제조업체로 변환해달라는 요구는 2002년 제조물 책임법이 만들어진 초기부터 소비자단체들이 주장해온 오래된 이슈이다. 제조물 책임법이 만들어질 당시 기업들의 로비와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 수출산업 보호를 이유로 지연돼왔던 제조물 책임법의 소비자 입증책임은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대로이다.

급발진 자동차 사고가 날 경우 피해자들은 억울하게 사고를 당했으니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 상상하겠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국과수는 관련 사건을 조사할 때 블랙박스가 아닌 사고기록장치(EDR)에 저장된 운행정보만으로 판정하는데, 국과수의 차량검사시 EDR 마지막 5초 분석을 통한 급발진 의심사고 감정에서는 차량 결함이 있었다는 기록은 한 건도 없어 급발진 인정 사례가 0건이다. 지금보다 깊이 있는 분석을 위해서는 EDR 분석을 국과수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민간영역에서 교차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근 들어 일부 전문가는 이시유(ECU· Electronic Control Unit: 차량의 엔진이나 자동변속기, 자동제동제어시스템 등을 컴퓨터로 제어하는 전자제어장치)의 과부하로 인한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높고, 급발진 원인 역시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사고사를 당한 유가족 소비자들은 급발진을 주장하며 자동차 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냈으나 이때 급발진 가능성에 대한 입증은 오롯이 소비자가 해야 한다. 사고를 당한 도현군 아버지는 엄청난 비용과 조건을 감수하고 실험한 결과 EDR의 신뢰성이 상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실험 결과가 나왔으나 아직 결과가 확정되지는 않은 상태이다.

이도현군의 아버지는 차량결함의 입증책임을 소비자에게 책임지우는 것이 아닌 제조사가 입증책임을 지도록 하는 이른바 ‘도현이법’을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켜달라고 호소하고 있다(물론 5만 명의 소비자가 청원을 한 상태다).

소비자 보호 업무의 소관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소비자 피해를 보호할 법안 마련을 위해 앞장서야 할 기관임에도 제조물 책임법 운용 실태조사 연구용역 결과 뒤 보겠다는 미온적 태도를 보이며 작년 말까지 마무리하겠다고 했으나 아직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다.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은 유일하게 여당과 야당이 무리 없이 합의한 민생법안이므로 이제 개정을 미루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박명희ㅣ소비자와 함께 공동대표 동국대 명예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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