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의 노들섬, 치수(治水)에서 이수(利水)로

송하엽ㅣ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등록 : 2023-06-01 14:55

크게 작게

서울시는 지난 5월 노들섬 디자인 기획 공모에 출품된 작품을 시민이 관람할 수 있도록 서울시청, 서울도시건 축전시관, 노들섬 노들서가, 열린송현녹지광장 등에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사진은 서울시청에 설치된 전시물 을 둘러보는 시민들 모습. 서울시 제공

아시아의 적도 부근 따뜻한 도시에는 야시장이 형성됐다. 기원전 800년 주나라에서 시작한 야시장은 당나라 시인 두목(803~852)의 시 ‘박진회’에서도 언급됐으며, 송나라 시기 항저우에는 강가에 야시장이 크게 번창했다.

반면에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수변에 상업공간이 지속되지 못했다. 특히 장마철에 물이 급격히 불기 때문에, 한강 주변은 ‘치수’(治水), 즉 수리시설을 잘해 홍수나 가뭄의 피해를 막는 쪽으로만 발달해왔으며 ‘이수’(利水), 즉 수변을 야시장같이 이용하는 방법은 시도되지 않았다.

한강을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생각은 1981년 서울올림픽 유치가 확정되면서 진행된 제2차 한강종합개발사업(1982~1986)에서 비롯됐다. 제2차 한강종합개발사업은 한강 연안의 홍수 피해를 최소화함과 동시에 한강을 다목적으로 만들어 서울을 국제적 도시로 변화시키자는 것이었다. 사업의 주요 내용은 저수로 정비, 시민공원 조성, 올림픽대로 건설, 분류하수관로 공사 등 크게 네 가지로 나뉘었으며, 이 중 한강시민공원은 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여가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동시에 진행된 올림픽대로 건설은 한강시민공원의 접근성을 제약했을 뿐만 아니라 서울을 친환경도시로 만드는 데도 방해가 됐다. 찻길과 사람길이 확연하게 나뉜 것이다. 한강 야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주말 등 특정 기간에 임시로 찻길을 막아 축제 형식을 빌려 제한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축제가 끝나면 한강에서 갓 피어오른 문화는 정착하지 못한 채 신기루와 같이 사라져버리길 반복했다.

현재 노들섬의 과제는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로 인한 단절을 넘어 시민들이 보행하며 그 땅을 지속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무리한 생각이지만 도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반포 둔치에서 연결되는 세빛섬이 잠수교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이 가능할까? 홍수에 의해 세빛섬과 다리가 부딪칠 위험은 있겠지만 세빛섬이 강남과 강북의 중간에 있다는 의미는 강남북 균형개발의 의미로 보행을 유발할 수 있다.

노들섬은 스스로 강남북의 중간에 있으니 최대한 소음을 피한 보행 접근이 요구된다. 용산에서 출발하면 노들섬은 10차선 이촌로의 한강교차로를 힘겹게 건너 5차선 한강대교의 도로 옆을 보행해야 다다를 수 있다. 보행길의 폭은 한강 다리 중에 제일 넓지만 자동차의 시끄러움은 떨칠 수 없다. 2019년에 제안된 공중보행다리인 백년다리는 한강대교 아치의 높은 부분에 설치돼 조망은 좋으나 강북에서의 접근성은 고려되지 않았다. 노들섬의 둔치로 접근하기에는 한강대교보다 낮은 높이의 보행교가 적절할 것이다.

강남북으로 보행교가 연결되면 지금의 노들섬은 용산의 가능성을 한강 남쪽의 동네와 대학들로 연결할 것이다. 강 아래의 젊은이들이 강북의 일터와 서울의 중심부로 가는 중간에 있는 노들섬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려들어 문화를 만들어가는 장소가 될 것이다.


이에 더해 치수를 위해 만들어졌던 타원형의 콘크리트 호안이 돌과 자갈로 어우러진 자연 호안으로 재탄생하게 된다면, 노들섬은 문화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케이(K)컬처를 이끌어갈 만한 잠재력을 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2019년 준공된 노들섬문화공간도 본격적으로 물과 자연, 섬을 매개로 창조력을 발휘하여 ‘타미’(TAMI, 기술(Technology)·광고(Advertising)·미디어(Media)·정보(Information)) 기업 중 광고(A)와 미디어(M)에 해당하는 문화생성의 핫스폿으로 작동할 수 있다.

노들섬 혁신디자인 방안을 통해 새롭게 생성할 노들 글로벌 예술섬 공간도 재자연화와 더불어 문화생성 프로그램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상상 속 노들섬의 21세기형 야시장은 신기루 같은 축제가 아닌 자연과 문화로 가득 찬 일상을 선사하는 공간이 될 것이다.

송하엽ㅣ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