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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종로구 청운효자동 신년인사회에서 정문헌 종로구청장이 주민들에게 구정 운영방향과 정책사업을 설명한 뒤 ‘종로모던’ 개념 이해를 돕는 특강을 하고 있다. 종로구 제공
동굴 안에 죄수들이 묶여 있다. 등 뒤 모닥불이 동굴 벽에 던지는 온갖 그림자만이 죄수들의 눈을 차지한다. 그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들의 흑백 스크린을 세상의 모든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한 사람이 몸부림쳐 결박을 풀어내고 탈출에 성공한다. 그는 마침내 동굴 밖에서 온갖 색채가 가득한 세상의 참모습을 발견한다. 지금까지 알던 동굴 벽의 흑백 화면은 전부 허상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플라톤이 그의 저서 <국가>에서 소개하는 ‘동굴의 비유’다. 플라톤은 동굴을 벗어난 사람이 발견한 세상의 본모습을 ‘이데아’(Idea)라고 정의했다. 이 단어는 플라톤 철학의 핵심 개념으로 그리스어로 ‘보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파생됐다. 하지만 플라톤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 이성으로 보는 것이 마음과 정신의 눈을 통해 깨닫는 영원불변의 형상임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이데아는 오로지 지성으로만 알 수 있는 관념 속 원형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상황의 본질, 즉 이데아를 파악하지 못하고 허상에만 매달리면 근본적 해결이 불가능하다. 잘해야 임시방편에 그칠 뿐이다. 지금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봐야 우리는 미래를 여는 열쇠를 얻을 수 있다. ‘대한민국 서울의 중심’ 종로의 내일을 바라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한강의 기적’을 이끌던 종로의 현재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무엇이 종로를 제대로 만들 수 있는지, 어떤 열쇠가 필요한지 사유하게 된다. 그저 아파트를 더 짓고 화려한 상권을 형성하는 것이 답이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동굴 벽에 비친 허상’의 제일 흔한 사례다. 한때 흥했던 ‘핫플레이스’들이 지역 부흥을 이끌던 주역들을 몰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겪고 다시 쇠락하는 것도 이 같은 경우다. 눈에 보이는 그럴듯한 가치를 좇는 게 아니라 종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로드맵을 그려야 한다.
종로의 핵심 키는 바로 문화에 있다. ‘K’ 접두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문화예술은 어느새 세계적 보편성을 갖추며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 시대 또한 문화코드가 바탕에 있어야 새로운 기술을 제대로 활용하며 성장 엔진을 지속해서 가동할 수 있다.
종로는 또 한 번 절호의 기회가 왔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다. 이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어디에도 없는 종로 고유의 문화 자산을 최대한 살려, 고도 현대화를 구현하는 것이 지금 종로가 가야 할 길이다. 그게 바로 ‘종로 모던’이다. 그 어느 때보다 살기 좋은 종로, 모두가 행복한 종로의 실현인 것이다.
종로에는 전통 유산부터 컨템포러리 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다.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등 우리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평창동·삼청동 갤러리, 대학로 공연예술거리까지 도시 전체가 시너지를 발휘해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해 가게 될 것이다. 종로의 역사, 미래를 위한 잠재력이 합쳐져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면서 진정한 종로의 ‘이데아’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종로 모던이 전혀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시도를 펼치는 것도 아니다. 수도 700년 종로가 지나온 모든 시간에서 보여주듯 종로 모던 또한 이미 깊은 역사적 뿌리를 지니고 있다. 300년 전, 탑골공원의 원각사지 십층석탑 근처에는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등 ‘북학파’라 불리는 한 그룹의 실학사상가들이 활발한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이전 시대의 틀에 갇힌 사고에서 벗어난 실용적 근대화를 주장하며 조선 중흥기의 커다란 에너지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나 바로 이 자리에서 선포된 기미 독립선언서에서 사상 최초로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는 선언이 이뤄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제의 침략, 냉전, 서구문물의 급격한 유입 등 20세기 격랑으로 우리 역사의 자생적 시민사회가 태동 단계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두꺼운 지층 아래로 밀려 내려갔다. 종로 모던은 이것을 새로이 지상으로 끌어올려 우리가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의 본(本), 즉 패러다임을 창출해가는 것이다. 고도 현대화의 출발점에 다시 섰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될 종로, 세계를 이끌 종로 모던이 시작됐다.
종로 모던이 전혀 해본 적 없는 새로운 시도를 펼치는 것도 아니다. 수도 700년 종로가 지나온 모든 시간에서 보여주듯 종로 모던 또한 이미 깊은 역사적 뿌리를 지니고 있다. 300년 전, 탑골공원의 원각사지 십층석탑 근처에는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 등 ‘북학파’라 불리는 한 그룹의 실학사상가들이 활발한 토론을 펼치고 있었다. 이전 시대의 틀에 갇힌 사고에서 벗어난 실용적 근대화를 주장하며 조선 중흥기의 커다란 에너지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200년이 지나 바로 이 자리에서 선포된 기미 독립선언서에서 사상 최초로 우리나라가 민주공화국이라는 선언이 이뤄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제의 침략, 냉전, 서구문물의 급격한 유입 등 20세기 격랑으로 우리 역사의 자생적 시민사회가 태동 단계도 제대로 누리지 못한 채 두꺼운 지층 아래로 밀려 내려갔다. 종로 모던은 이것을 새로이 지상으로 끌어올려 우리가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의 본(本), 즉 패러다임을 창출해가는 것이다. 고도 현대화의 출발점에 다시 섰다.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될 종로, 세계를 이끌 종로 모던이 시작됐다.
정문헌ㅣ종로구청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