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쿵쿵따다’ 타악 소리, 어르신 마음 문 열어

마을 주민 네트워크 중심된 종로구 교남동 음악심리치료 프로그램 ‘소리울림’

등록 : 2019-07-04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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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어르신 등 20여 명 참여

그냥 두드리기만 해도 스트레스 해소

외로움 달래고 우울증·고독사 해결

운동·지각 능력 유지하는 데도 한몫

6월11일 종로구 교남동주민센터 2층에서 열린 타악 앙상블 ‘소리울림’의 마지막 수업에서 김상락 음악치료사의 지휘에 맞춰 어르신들이 신나게 타악기 연주를 하고 있다.

김상락(33) 가족사랑음악치료센터 음악치료사가 큰 소리로 “따다다 따다다다닥 쿵쿵” 하며 박자를 입으로 소리 내 시범을 보이자, 어르신들이 열심히 박자에 맞춰 악기를 두드렸다.

음악 소리가 어쩐지 무겁게 느껴졌다. 분위기가 너무 딱딱했던지 김 음악치료사가 어르신들에게 ‘툭’ 한마디 던졌다. “표정이 비장해요.” 김 음악치료사의 말에 무안해하면서도 재밌다는 듯 어르신들이 웃었다. 김 음악치료사는 가끔 어르신들의 표정이 굳어 있으면 이렇게 긴장을 풀어주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정해진 박자를 어르신 한분 한분에게 연주하게 하기도 했다. 제대로 박자를 지켜낸 한 어르신이 “성공이야” 하자, 주변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르신들은 수업 내내 제대로 해내도 웃고, 틀려도 웃었다.

김 음악치료사는 “마지막이니 집중하세요!” “파이팅 한번 할까요?”라며 활력을 불어넣었다. 기본 박자 연습이 끝나고 드디어 전체 연주가 시작됐다. 김 음악치료사의 지휘에 따라서 악기 소리가 하나둘씩 늘어나더니 어느새 20여 명 모두 자기가 맡은 악기를 연주하며 신나는 타악 음악을 만들어냈다. 어르신들은 이날이 마지막 시간이라 아쉬웠는지 더 열심히 악기를 두드렸다.


6월11일 오후 2시, 나이 지긋한 어르신 20여 명이 종로구 교남동주민센터 2층에 모였다. 노인들의 우울증을 예방하기 위한 음악심리치료 프로그램인 타악 앙상블 ‘소리울림’의 연주를 하기 위해서였다. 소리울림은 교남동주민센터가 지난해 서울시의 복지사업에 지원해 선정된 프로그램으로,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석 달 동안 매주 화요일 오후 2시, 동주민센터 강당에서 해왔다.

교남동 저소득 가구의 38%가량이 1인 가구 노인이다. 대부분 경제적인 문제와 만성질환을 앓고 있고, 이웃과 교류도 활발하지 않아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어 우울감 지수가 높다.

박선민 종로구 교남동주민센터 마을복지팀장은 “어르신들의 외로움을 달래고 우울증 극복과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해 음악심리치료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한다. 음악심리치료는 음악으로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함께 음악을 듣거나 연주하면서 긍정적 심리 변화를 이끌어낸다.

소리울림을 통해 어르신뿐만 아니라 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회원들도 함께 악기를 연주하며 협동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등 든든한 이웃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다. 소리울림은 지난 5월11일에는 ‘교남동 돗자리 음악회’에서 첫 연주회를 열어 관객에게 큰 박수를 받았다.

아고고벨을 연주하는 이상금(67)씨는 “동네 어르신들이 스트레스도 풀고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 시작했다”고 말했다. 아고고벨은 브라질에서 삼바 춤을 출 때 연주하는 악기로 ‘띠잉또옹’ 하며 맑은 소리를 내는 악기다. 최헌영(80)씨는 “젊어지는 것 같아 좋고, 연주할 때마다 기쁘고 즐겁다”고 했다. 박명화(64)씨도 “매주 와서 악기를 두드리니 너무 즐겁고 젊어지는 기분이다. 앞으로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성자(62) 교남동 주민자치위원장은 “소리울림 프로그램을 하고 난 뒤 주민들이 자주 만나 소통하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내년에도 꼭 이 프로그램을 할 수 있기를 원했다.

소리울림에 참여하는 어르신 대부분은 악기를 다뤄본 적이 없다. 타악기는 기타처럼 코드를 외워 잡을 필요도 없고, 피아노처럼 음계마다 다른 건반을 두드리지 않아도 돼 비교적 쉽게 연주할 수 있다. 노인들이 다루기 편하고 함께하면서 어울릴 수 있어 거저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이날 연주에 사용된 악기는 젬베, 우드블럭, 귀로, 수르도, 아고고벨, 탬버린, 카바사, 마라카스, 투바노 드럼으로 모두 9가지다.

소리울림은 다 같이 즐기는 게 목적이다.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외로움 대신 삶의 활력을 불어넣고, 친구도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김 음악치료사는 “소리울림은 노인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고, 몸과 마음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어르신들이 처음에는 팔이 아파 못하겠다고 하시더니 나중에는 거뜬히 해내는 게 뿌듯했다”고 했다. 그는 “무엇보다 점점 퇴화되는 운동 능력이나 지각 능력을 유지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했다.

“악기를 두드리며 마음의 문을 열면 고독사도 없을 거다.”

박선민 팀장은 “지역사회협의체 활성화와 고독사 방지를 위해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며 “대문을 두드리면 문이 열리는 것처럼, 악기를 두드리다보면 마음의 문을 열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글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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