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쏙 과학

악당 미세먼지, 햇빛과 결합하면 아름다운 노을 만들어

⑳ 미세먼지와 오존의 정교한 대기 튜닝

등록 : 2021-11-04 15:32
9월29일 중구 회현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바라본 노을.

분홍빛, 푸른빛, 황금빛 멋진 노을빛

미세먼지가 햇빛 반사해서 만든 작품

미세먼지, 비 내리는 데도 결정적 역할

‘인공 미세먼지’, 호흡기 등엔 큰 상처

오존, 사람에 반복 노출되면 폐에 피해

지구 기온 높아질수록 더 많이 발생해

단 성층권선 자외선 막아 생‘ 명에 필수’


‘약 될지 독 될지’ 인간의 역할이 중요해

“저거 좀 봐! 노을이 핑크야!”

아홉 살 딸이 가리키는 저녁 하늘엔 분홍빛으로 물든 구름이 떠 있었다. 그 며칠 전, 서울 노을은 청보라로 분홍 구름을 감쌌다. 마치 다른 행성 같은 풍경이었다. 그 풍경을 보며 붉은 파스텔 위에 황금빛 가루를 뿌려놓은 듯했던 지난겨울의 노을빛이 떠올랐다. 왜 서울의 노을빛은 날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걸까? 인디언핑크빛 제주 노을과 파란 물감을 뿌린 듯한 서울 하늘의 사진을 보여주며 이미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가 말했다.

“아름다운 노을과 파란 하늘은 미세입자, 그리고 질소와 산소 분자가 태양 빛과 상호작용해서 만들어내는 과학의 작품입니다.”

서울시립과학관이 연 토요과학강연에서 이미혜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지난 10월30일 서울시립과학관과 한국연구재단이 함께 연 토요과학강연. 이 교수는 ‘미세먼지 생성: 지구 대기의 정교한 화학 튜닝’을 주제로 강의하던 중, 날마다 다른 ‘작품’을 그려내는 에어로졸의 원리를 설명했다. 인체에 해로워 대기오염물질로 분류된 미세먼지와 오존이 지구 대기를 튜닝 즉 정교하게 조정해주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도 소개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용어부터 살펴보자. 미세입자, 미세먼지, 에어로졸은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는 용어다. ‘미세입자’는 지름 10μm 이하의 미세한 입자상 물질이다. 지름에 따라 PM10과 PM2.5 미세입자로 구분하는데, 크기에 따라 구성 성분과 기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한국에선 ‘미세먼지’라 부른다. 공기 중에는 고체 입자 혹은 액체 입자들이 떠다니는데 이를 기체 성분과 구분해서 모두 ‘에어로졸’이라 한다.

이 교수의 강연으로 돌아가자. 대기에는 질소(N₂), 산소(O₂) 같은 기체분자와 각종 액체·고체 입자들 즉 연무가 뒤섞여 있다. 태양 빛은 이들을 만나 사방팔방 흩어진다. 빛의 산란 현상이다. 이 교수는 “대기에 미세입자가 많으면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다”며 “이런 입자가 없는 깨끗한 날에는 기체 입자에 의한 산란만 일어나면서 파란 하늘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세먼지는 하늘 속 화가였던 셈이다.

미세먼지가 하는 더 중요한 일은 따로 있다. 빗물 제조자 노릇이다. 이 교수는 “작은 미세입자는 구름 만드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대기 중에 미세입자가 있어야 구름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만약 미세먼지가 대기 중에서 다 없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비가 오지 않게 돼요. 미세먼지가 없으면 상대 습도가 400%가 되어야 구름이 생깁니다. 습도 400%는 불가능해요, 일어날 수가 없어요. 미세입자가 대기 중에 있는 걸 인간은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지난 9월 세계보건기구(WHO)는 대기오염 기준을 강화하면서 지름 10μm 이하인 미세먼지와 2.5μm 이하인 초미세먼지를 가장 위험한 오염물질로 정의했다. 특히 초미세먼지는 혈류로 들어가 심혈관 계통과 호흡기, 장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감사해야 할 부분’은 뭘까. 이 교수는 “미세먼지는 대기에서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공정이 작동되고 있다는 증거”라며 “이들은 구름 응결핵이 되어 비를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미세먼지는 크게 자연이 만든 것과 인간이 만든 것으로 나뉜다. 사막 모래에서 나오는 토양 입자, 파도가 바위와 부딪힐 때 나오는 해염 입자, 화산 분진 같은 건 자연의 산물이 대기로 유입된 것이다. 이런 것은 대개 크기가 커서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이 적다.

하지만 매연처럼 연소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을 비롯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건 대개 크기가 작다. 유해성이 크다.

초미세먼지를 만들어내는 물질들은 또다른 인체유해물질도 만든다. 오존(O₃)이다. “반복노출 때 폐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환경부에서 관리하는 대기오염 물질 중 하나다. 나머지는 초미세먼지와 미세먼지, 이산화질소, 일산화탄소, 아황산가스,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그리고 중금속이다.

오존은 대기 중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과 질소산화물(NOx)이 자외선을 만나면 발생한다. 휘발성유기화합물은 자동차, 화학공정, 석유정제, 도로포장, 도장산업, 세탁소, 인쇄소 등 인간 활동에서 많이 배출된다. 그래서 복사기 근처에 가면 비릿한 오존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이런 인간 활동이 많아서일까. 서울의 오존 농도는 꾸준히 높아졌다. 연평균으로 보면 1995년 15ppbv였던 것이 지난해엔 25ppbv로 증가했다. 피피비브이(ppbv)는 전체 부피의 10억분의 1을 가리키는 단위로, 주로 대기 중 기체분자의 양을 표기할 때 쓰인다.

이 교수는 “오존의 연평균 농도뿐 아니라고농도 주의보 발령 횟수가 늘어난 게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오존은 특히 농작물생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사람은 주의보를 보고 실내로 대피할 수 있지만 식물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존은 지구온난화 유발 물질이기도 하다. 게다가 따뜻할수록 더욱 잘 만들어진다. 지표상에 오존이 늘어난다는 건 온난화의 악순환 고리가 하나 더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상 생명체에 오존은 꼭 필요한 물질이다. 오존 덕분에 생명체는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올 수 있었다. 육상식물은 5억4200만년 전, 캄브리아기 이후 지표면에 등장했다. 그전의 생명체는 바닷속에서 살았다. 죽지 않으려면 물속에서 태양의 자외선을 피해야 했다. 남세균, 남조류들이 광합성을 하며 내뿜은 산소가 대기로 올라가 지상8~18㎞ 높이의 성층권에서 태양광 중 자외선과 반응해 오존이 됐다.

성층권의 오존층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태양 자외선의 95~99%를 흡수하고 있다.

오존층이 없으면 자외선이 지상에 거의 그대로 도달해 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된다. 오존은 지표면에 과도하게 있을 때 생명체에 해로울 뿐, 성층권엔 많아야 이롭다.

이 교수는 “오존은 지구의 자외선 차단제이자 지구 대기의 세정제”라며 “대기권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화학 활동을 지속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남극의 성층권에서 오존 구멍이 발견되자 국제사회는 프레온가스 등 오존층 파괴 물질 생산과 사용을 규제하면서 오존층을 보호하고 있다.

해롭기만 한 줄 알았던 미세먼지와 오존이 실은 지구 대기의 화가이자 성분 조정자라니.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 할아버지를 능가하는 반전 캐릭터 아닌가. 그 과학원리를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서울시립과학관 유튜브에서 토요과학강연 녹화본으로 볼 수 있다.

글·사진 이경숙 과학스토리텔러

자문: 이미혜 고려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