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길 잃음도 성장과 발전임을 깨닫는 곳, 문래동

손관승의 공감재생 골목여행 ⑰ 제자리 도는 '링반데룽'의 거리 문래동 골목길

등록 : 2020-08-13 15:35
철공소-창작촌-카페 중첩돼 있는 곳

변방에서 트렌드 최첨단으로 우뚝 서

코로나는 ‘빙빙 도는 문래 골목’ 같지만

이제 방향감 찾고 탈출구로 나아갈까?

폭우가 쏟아져도, 코로나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려도 삶은 계속된다. 그 엄중한 기간에도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세상을 떠났으며, 결혼식을 앞둔 가족들은 노심초사해야 했다. 정말이지 인생은 알 수 없는 것들의 연속이다.

“나이 들어가는 것은 선형(Linear)으로 진행되지만, 우리네 삶의 본질은 오히려 비선형(Nonlinear)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요즘 비대면 동영상 강의를 녹화하고 디지털 편집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주 해보는 생각이다. 예상치 못한 것들이 갑자기 비집고 들어와 뒤죽박죽 만들어 버리기도 하지만, 가장 뒷자리에 있던 것들이 맨 앞에 서기도 한다. 비선형 시대는 분명 우리에게 낯설지만, 그것에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비선형은 디지털 시대의 특징이면서 동시에 팬데믹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이며, 복잡성과 비예측성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이다.


문래동 골목을 걷기로 하였다. 가장 아날로그적인 작업 방식이 이뤄지는 곳이면서도 동시에 디지털의 선형작업 방식으로 새로운 것들이 창조되고 있는 동네다. 오랫동안 낙후되었던 변방 지역이 어느 날 변화와 유행의 최첨단에 우뚝 서 있다. 문래동이 바로 그런 곳이다.

지하철 문래역 5번 출구에서 나오니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문래먹자문화’거리, 원래는 ‘문래동 로데오거리’라 불리며 패션 쇼핑몰이었지만 매출 부진으로 대부분 사라지고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뒤 먹자골목으로 환골탈태한 곳이다. ‘월화고기’를 비롯해 몇몇 음식점은 늘 손님들로 붐빈다.

문래먹자골목. 로데오 거리에서 바뀌었다.

먹자골목을 한 바퀴 돌아나와 당산로 길을 따라 걷는다. 7번 출구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다 보면 공유 자전거들이 세워져 있는 길가에 철제 조형물이 보인다. 이 동네의 첫 공공예술작품인 ‘기린’이다. 길을 건너기 전 ‘문래창작촌’이라는 안내 간판이 서 있지만, 유심히 보지 않으면 눈에 뜨이지 않는다. 정면의 ‘대왕곱창’이라는 상호를 바라보고 건널목을 건너기 전, 좌회전하면 다시 두 개의 창작품이 서 있다. 하나는 ‘용접면’ 그리고 그 뒤로 ‘못? 빼는 망치’라는 이름의 거대한 망치 조형물이다.

못? 빼는 망치

이곳은 도림로128길과 당산로2길이 갈라지는 작은 삼각지이며, 문래동의 얼굴을 바꿔놓은 골든 트라이앵글이다. 쇳소리가 요란한 철공소와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촌 그리고 상업지역이 만나는 황금의 삼각형 지점이라는 뜻이다. 문래동은 1930년대 일제강점기 방직 공장이 들어서면서 형성됐고, 해방 이후 방적 기계인 ‘물레’에서 동네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철강 공장과 철재상들이 넘쳐나 호황을 누렸지만, 철강 산업이 점차 기계화되고 중국산 부품이 몰려오면서 문래동은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그 빈 곳을 찾아온 사람들이 예술가들. 천장이 높고 임대료가 저렴하며 서울 시내와 멀지 않아서 작업실로 매력적이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은 문래예술공장 같은 공공기관도 들어오면서 더 활기를 찾게 되었다.

이 골목에는 오랫동안 철공소에서 삶의 터전을 잡고 잔뼈가 굵은 사람들, 새로 작업실을 얻어 입주한 젊은 예술가들, 그리고 관광객 등 크게 세 부류 사람이 혼재돼 있다. 미로처럼 얽혀 있는 골목을 구경하다 창작촌 동네의 제일 끝 즈음에 기업은행이 나온다. 그 골목길 앞에 또 하나의 조형물이 있는데, 이를 놓치면 안 된다. 머리에는 붉은색 고깔을 썼으며 양철로 만든 꽃을 손에 쥔 양철로봇, 문래창작촌의 마스코트처럼 인기 높은 예술품이다.

문래창작촌의 마스 코트 양철로봇

연일 퍼붓던 폭우가 잠시 멈춘 어느 날 새벽, 사진을 찍기 위해 그곳으로 달려갔더니 골목길에 중년 남자 몇 명이 손에 종이컵을 들고 모여 있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300원짜리 밀크커피와 생강차를 뽑아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었다. 옆의 상점에서는 아메리카노 1천원, 콩나물라면 2500원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구경꾼이 아닌 진정한 이 동네 사람들이었다. 날이 갈수록 오르는 임대료에 밀려 언제 밀려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어두운 단면이다.

낮의 문래동과 밤의 문래동은 확연히 다르다. 낮에는 철공소와 예술가들의 동네라면 밤에는 방문자들과 카페, 먹거리문화의 얼굴로 바뀐다. 그 중심은 문래공원사거리에서 도림로를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진 좁은 골목들이다.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 맥줏집이 골목골목 숨어 있다. 젊은층에 피자가 맛있기로 소문난 ‘양키스버거피자’, 인테리어가 멋있는 ‘올드문래’, ‘갤러리문래’ 같은 곳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어떤 면에서 서울은 카페 공화국, 자고 나면 새로운 카페와 커피숍이 생겼다가 사라지는데 이 골목이 바로 그렇다.

올드문래 풍경

문래동 골목길 투어의 포인트는 간판이다. 금속, 판금, 절단, 빠우, 정밀, 커팅 같은 이 동네 특유의 용어들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걷는 묘미가 있다. 과거의 철공소 이름을 그대로 유지한 상점도 적지 않으며, 건물 옥상을 루프톱으로 활용한 카페도 눈에 뜨인다. 모퉁이를 돌아서면 어디선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벽화, 그 언저리 가게 앞에서 일명 ‘가맥’이라는 이름의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유튜브에 올리기 위해서 촬영 장비를 가져온 커플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이다. 동네가 살아나려면 젊은이가 유입돼야 하는데, 문래동 밤의 골목길은 완전히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골목에는 옥상 개조한 루프톱

벽화, 간판, 카페 그리고 촬영하는 사람들

문래동 골목길은 좁고 복잡하여 걷다 보면 제자리로 오기 쉽다. 산이나 사막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제자리를 빙빙 도는 ‘링반데룽’ 현상과 비슷하다. 팬데믹 시대 많은 이가 링반데룽의 악몽을 꾸고 있다. 자신이 링반데룽에 빠졌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중요하다고 조난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제 방향 감각을 회복했으니 서서히 탈출구를 향해 나가볼까?

글·사진 손관승 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