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고비고비 떡맛에 담긴 상징과 의미 배우는 곳

서울의 작은 박물관 ⑲ 종로구 와룡동 떡박물관

등록 : 2019-12-19 14:41
찹쌀·팥으로 부부 궁합 기원 봉치떡

백 사람과 나눠야 오래 산다는 백일떡

연말 먹는 ‘묵은 재료’로 만든 온시루떡

할 일과 갈 길을 제시해온 떡 이야기

태어난 지 백일 되는 날 해먹는 ‘백일떡’, 첫 생일맞이 ‘돌떡’, 책례(책거리. 책 한 권을 다 배웠을 때 하던 의식)에 쓰이는 떡, 결혼식 날 볼 수 있는 ‘폐백떡’, 회갑 잔치에 올리는 떡, 제사상에 올리고 나누어 먹던 떡 등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떡은 우리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그 계절이 돌아오면 해먹던 떡은 계절의 상징이 되고, 특정한 절기와 명절을 보내는 음식에도 떡은 빠지지 않는다. 그뿐이랴, 식구들 밥상 걱정에 장보러 나선 사람들의 시장 골목 주전부리 중 하나가 떡이다. 오래전부터 우리 곁에 있는 떡을 새롭고 깊게 볼 수 있는 종로구 와룡동 떡박물관에 다녀왔다.

떡박물관은 2002년에 떡·부엌살림박물관으로 개관했다. 2008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전통 음식 연구에 매진하는 윤숙자 관장이 1980년 무렵부터 수집한 3100여점의 유물 중 250~30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윤 관장이 떡박물관의 문을 열게 된 계기는 1999년 ‘이야기가 있는 옛 부엌살림’전이었다. 당시 우리의 옛 생활문화를 볼 수 있는 곳이 생겼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박물관을 만들 생각을 했다.



인생을 건너는 노둣돌

박물관 2층 상설전시실부터 돌아봤다. 통과의례 때 쓰이던 떡과 음식들, 계절이나 특정한 절기에 해먹던 떡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전시실에 들어가면 초례청 앞에 선 신랑신부가 눈에 들어온다. 개성 지방 전통 혼례의 한 장면이다. 신부가 머리에 쓰고 있는 크고 화려한 화관궤계가 눈에 띈다. 사람이 살면서 겪는 통과의례 중 혼례(결혼식)가 전시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다.

함 아래 붉은 보자기를 덮은 게 봉치떡을 담은 시루다.

혼례의 여러 과정 중 함을 주고받는 의례가 있는데 그때 봉치떡을 했다. 찹쌀과 팥으로 만든 떡인데, 팥은 좋지 않은 기운을 막는 의미이고 두 켜로 쌓은 찹쌀 부분은 신랑과 신부의 좋은 궁합을 기원하는 것이다. 그 위에 올리는 대추와 잣은 자손의 번창을 의미한다.

두 번째 통과의례로 전시한 것은 ‘백일상’이다. 혼례를 마친 부부가 아기를 낳아 백일이 되는 날 차렸던 ‘백일상’에 흰밥, 미역국과 함께 순수와 청렴을 상징하는 백설기, 수수팥경단, 오색송편을 올렸다. 백일떡은 이웃에 돌려 함께 나누어 먹었다. 백일떡은 백 사람에게 나누어 줘야 아이가 오래 산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돌상. 원래는 음식을 차린 돌상과 돌잡이 상을 따로 차려 나란히 놓았는데 전시 장소가 좁아 한 상에 올려놓았다.

그다음은 태어나서 처음 맞는 생일인 돌이다. 돌에는 돌잡이 상과 음식을 차린 돌상 등 두 상을 나란히 차렸다. 돌잡이 상에는 천자문, 먹, 벼루, 종이, 붓, 활, 엽전, 실타래 등을 올렸다. 돌상에는 사과, 배, 감, 쌀, 대추, 국수 등과 함께 송편, 무지개떡, 수수팥경단, 백설기 등의 떡을 차렸다. 무지개떡은 7색으로 만든 게 아니라 오방색을 뜻하는 다섯 가지 색으로 만들었다. 조화를 이루며 잘 살라는 의미다. 송편은 소가 있는 것과 없는 것 두 가지를 만들었다. 소가 있는 것은 속이 꽉 찬 사람이 되라는 기원이고, 소가 없는 것은 속이 넓은 사람이 되라는 기원이라고 한다.

책례 상에 올랐던 녹두편과 오색송편, 오색경단

책례할 때 차리는 상에는 국수장국과 함께 오색경단, 오색송편, 녹두편을 올렸다.

61번째 생일인 회갑례 상에는 여러 과일과 약과·다식·식혜·약식·편육·산적·국수 등을 올렸다.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담겼다. 통과의례의 마지막으로 상을 치르는 상례와 제사를 지내는 제례를 소개하고 있다.


세월을 잇는 오작교

해의 마지막 달 마지막 날에 해먹던 온시루떡.

발걸음은 계절과 특정한 절기에 차리던 상과 음식을 소개하는 시절음식 쪽으로 이어진다. 한 해의 마지막 달 마지막 날에 해먹던 온시루떡이 눈에 띈다. 집에 있는 묵은 재료를 넣어 만든 게 온시루떡이다. 묵은해를 그렇게 정리하고 새해를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하려는 기원이 음식에 담긴 것이다. 그리고 새해 첫날에는 가래떡을 만들어 떡국을 해먹었다. 정월대보름 상에는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소를 넣고 경단 모양으로 빚어 삶아 꿀물에 넣은 원소병을 올렸다.

가을에 먹던 떡은 도토리송편, 밤단자, 오색송편, 국화전 등이 있다. 특히 추석에는 햅쌀로 만든 송편을 상에 올렸다.

음력 6월 유두날에는 상화병과 증편을 만들어 먹었다. 삼복더위가 지나가고 칠월칠석날에 먹던 음식 중에는 밀전병이 있었다. 여름에 먹던 떡 중에는 장미 잎을 올려 지진 장미화전도 있다.

음력 2월 초하루인 중화절에는 고된 농사일이 시작되기 전에 머슴들을 격려하기 위해 송편을 만들어서 대접했다. 그 송편 이름이 노비송편이다. 음력 3월3일 삼짇날이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날이며 봄이 무르익는 때이기도 했다. 그날은 찹쌀가루 반죽에 진달래꽃을 올려 만든 진달래 화전을 해먹었다. 사월 초파일에 느티나무 어린순을 따서 멥쌀가루와 섞어 팥고물을 켜켜로 넣어 찐 느티떡을 했다.

통과의례와 시절음식을 다 훑어본 뒤 전시실 가운데 전시된 농기구와 단오 때 풍속을 재현한 작은 모형을 감상하고 3층 특별전시실로 발길을 옮겼다.


떡 이야기

3층 특별전시관.

3층 특별전시실에 ‘옛이야기 떡 보따리: 떡의 기원으로부터’라는 주제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모여 살기 시작한 때부터 떡을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 삼국시대에는 철로 만든 농기구를 사용하면서 곡식을 더 많이 수확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떡이 일반화될 수 있었다는 이야기로 우리나라 떡의 기원에 대해 설명을 시작한다.

삼국사기 이야기 중 신라시대 박혁거세가 왕위를 물려줄 때 떡을 깨물어 떡에 찍힌 잇자국이 많은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줬다는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당시에는 이가 많은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설이 있었다고 한다.) 명절에 마을 사람들이 떡을 다 해먹는데 가난한 백결 선생은 떡을 해먹을 수 없어서 거문고를 타서 떡방아 찧는 소리를 냈다는 이야기, 떡시루가 명확하게 보이는 고구려의 벽화도 삼국시대에 떡이 일반화됐다는 증거다.

고려시대에 차 문화가 성행하면서 한과와 떡을 곁들이는 문화가 발달했다는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조선시대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고려에서는 상사일(음력 3월3일)에 청애병(쑥떡)을 으뜸가는 음식으로 삼았다는 기록, 조선시대 한치윤의 <해동역사>에 실린 고려 사람들이 밤설기(율고)를 잘 만든다는 내용을 소개하는 안내 글도 보인다.

율고, 차수수전병, 쑥단자, 기름떡과 찰기장을 넣어 만든 찰기장 송편인 점서, 찹쌀가루 반죽에 재료를 넣고 빚어 기름에 지진 떡인 개성주악 등 여러 떡의 모형이 옛사람들이 만들어 먹던 떡의 이해를 돕는다.

조선시대 인조 임금이 맛있다고 칭찬하며 떡의 이름을 물었을 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 임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내서 임금에게 말하니 인조는 그 떡을 ‘임절미’라고 부르게 했으며 세월이 흐르며 ‘인절미’가 됐다는 이야기도 재밌다.

조선시대 정조 임금은 신하들과 함께 음력 3월 활을 쏘고 시를 지으며 화전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진달래꽃을 올려 지져 만든 떡이 화전이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